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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은,
로맨스에 잘 어울린다.

오래 전 어느 비오는 늦여름이었다.
나도 설레이던 로맨스를 하던 때다.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나의 로맨스도,
여름이 끝나가면서 종으로 치닫고 있었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
헤어짐이 못내 아쉬워,

한 잔 더 할까?

를 반복하여 둘 다 술에 감긴 모습이다.


마지막이란 것을 직감했는지,
서로 맞잡은 손을 꼬옥 놓치 않고,
서로의 로맨스를 보내기 위한 배웅을 나갔다.

안녕.

떠나가는 뒷모습,
못내 아쉬워 손을 뻗어보지만,
잡을 수 없다.
파르르 손이 떨리며 우산을 놓친다.

비를 맞으며 우두커니 골목길에 서있는다.
비인지 눈물인지 눈 밑으로 뚝뚝 떨어진다.

그래, 어차피 젖은 거 흠뻑 젖어버리자.

망부석처럼 한참을 서있는데,
거짓말 같이 그녀가 내 앞에 서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부둥켜 안는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을 끌어안았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지금은 결코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진 않다.
나에게 했던 거짓말, 나를 괴롭혔던 희망고문, 치가 떨리는 배신,
잊고 싶다, 아니 잊어야 한다.
나를 위해서.

하지만 그때 나의 마음만은 다시 만나고 싶다.
비에 쓸려내려간 지난 여름의 땀처럼 사라진,
나의 애뜻한 순수함은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