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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退溪) 이황(李滉)과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사이에 벌어진 사칠논변(四七論辨 : 사단(四端) · 칠정(七情)에 관한 논변)은 우리 사상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논변의 복잡한 곡절과 전개 과정을 이 자리에서 다 설명할 수는 없고, 오늘날 우리가 되새겨 보아야 할 중요한 의미 하나를 찾아내어 얘기하고자 한다.

  성리학에서는 대체로 인간의 마음을 본체인 성(性)과 작용인 정(情)으로 나누며, 다시 정에서 감정적인 측면을 가리켜 칠정(七情)이라 하고 이성적인 측면을 가리켜 사단(四端)이라 한다. 따라서 사단과 칠정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정이란 점에서 같고 원래 두 가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퇴계는 사단은 리(理)에 속하고 칠정은 기(氣)에 속한다고 보아 둘을 뚜렷이 나누었고, 고봉은 사단과 칠정은 본래 같은 것이니 둘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고 이를 반박하였다. 고봉의 생각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정이라 하고 칠정은 정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므로 사단은 칠정에 포함되는 부분집합이라 할 수 있으니 이 둘을 상대적인 개념으로 정의하여 둘로 나누어서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퇴계는 비유를 들어 설명하였다.

  옛사람은 사람이 말을 타고 출입하는 것을 가지고 리(理)가 기(氣)를 타고 움직이는 관계를 비유했는데, 이것이 매우 좋다. 사람은 말이 아니면 출입하지 못하고 말은 사람이 아니면 궤도를 잃으니, 사람과 말이 서로 붙어 다니고 분리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를 가리켜 말하는 자가 혹 사람이 말을 타고 가는 것을 범연히 가리켜 말할 경우에는 사람과 말이 모두 그 가운데 있으니, 사단 · 칠정을 뭉뚱그려 정(情)이라 하는 경우가 바로 이것이다. 혹 사람이 가는 것만 가리켜 말할 경우에는 굳이 말까지 아울러 말하지 않더라도 말이 가는 것은 그 가운데 있으니, 사단이 이것이다. 혹 말이 가는 것만 가리켜 말할 경우에는 굳이 사람까지 아울러 말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가는 것은 그 가운데 있으니, 칠정이 이것이다.
 
  
 
   
   퇴계의 견해는 사단과 칠정을 각각 나누어 말하지만 본래 사단과 칠정이 하나의 정이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전제되어 있으므로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래 성리학에서는 리(理)와 기(氣)의 관계를 ‘一而二 二而一’, 즉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관계로 정의한다. 위 비유에서 사람은 리에 해당하고 말은 기에 해당한다. 사람과 말을 뭉뚱그려 말할 경우 리와 기가 하나가 되며, 사람과 말을 각각 가리켜 말할 경우 리와 기가 둘로 나뉜다. 성리학 용어로, 리와 기를 하나로 합하는 것을 혼륜(渾淪)이라 하고 둘로 나누는 것을 분개(分開)라 하는데, 이 논변에서 퇴계는 분개에 의지하고 고봉은 혼륜에 의지하여 논리를 편다. 퇴계와 고봉은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면서도 각자 내세우는 자신의 논리의 근거는 똑같이 ‘나아가 말한 바가 다르다[所就而言之者不同]’는 것이다. 퇴계는 사단과 칠정은 하나의 정(情)이지만 ‘나아가 말한 바가 다르기’ 때문에 그 개념과 의미가 다르므로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고봉은 ‘나아가 말한 바가 다를’ 뿐 그 실상은 같은 것이므로 구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기실 사단은 칠정의 선일변(善一邊), 즉 순수한 이성적 측면만을 가리켜 말한 것이므로 칠정의 한 측면 또는 부분집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내용만 놓고 말한다면 고봉의 주장이 더 분명하다. 그렇지만 퇴계의 견해가 실상의 같음을 전제하고 개념의 다름을 변별한 데서 나온 것임을 모르고 단순히 같음만 주장했다는 점에서 고봉은 퇴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봉이 혼륜에 의해 “사단과 칠정이 그 근원에서는 원래 둘이 아니다.”고 한 데 대해 분개에 의해 “이 둘은 그 근원에서부터 리(理) · 기(氣)의 구분이 있다.” 고 한 퇴계의 견해도 문제가 있다. 퇴계는 사단과 칠정이 본래 하나의 정(情)을 전제한 둘임을 누누이 강조했지만, 여기서는 사단과 칠정을 사실상 근본적으로 둘일 따름인 것으로 만들고 말았다. 혼륜에 의한 고봉의 논리를 반박하다가 분개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착오를 일으키고 만 것이다.

  이 두 학자의 논변은 사실의 옳고 그름을 놓고 싸운 것이 아니라 혼륜과 분개란 관점의 차이에서 생겨난 논리 싸움이었으니, 상대방의 주장을 아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관점의 치우침을 지적한 것이었다. 고봉은 퇴계가 분개에 치우쳐 본래 하나인 것을 아주 둘로 만들고 말까 우려했고, 퇴계는 고봉이 혼륜에 치우쳐 개념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 이학(理學)의 의미를 잃을까 우려했다. 이와 같이 양자가 서로의 치우침을 경계하는 과정을 통하여 각자의 착오를 깨닫고 마침내 중정(中正)한 결론에 이른다. 고봉은 퇴계가 사단과 칠정의 개념을 나눈 정밀한 뜻을 자기가 이해하지 못했음을 시인하였고 퇴계는 고봉의 견해를 수용하여 사단과 칠정의 근원이 하나임을 인정하였다.

  이 논쟁의 힐항(頡頏)을 고봉은 한 필의 말에 짐을 싣고 두 사람이 양 쪽에서 말을 몰고 가는 것으로 비유하였다. 즉 길을 가다 보면 말 등에 실은 짐이 한 쪽으로 기울지 않을 수 없는데 짐이 기우는 쪽 사람이 상대편 쪽으로 짐을 들어 넘기면 상대편도 그렇게 하여, 서로 상대편 쪽으로 짐을 넘기기를 반복하므로 짐이 평정해질 수 없게 된다고 했다. 고봉의 이 비유를 퇴계는 다시 시로 읊었다.

    두 사람이 짐을 싣고 경중을 다투는데 / 兩人駄物重輕爭
    헤아려 보니 높낮이가 이미 고르거늘 / 商度低昻亦已平
    다시 을의 짐을 갑에게 죄다 떠넘기니 / 更剋乙邊歸盡甲
    어느 때에 짐 형세가 균평하게 될거나 / 幾時駄勢得勻停
 
  
 
   
 
   동양학에서는 체(體)와 용(用), 일(一)과 다(多), 전체성과 변별성, 어느 쪽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학문의 성격이 결정된다. 크게는 불교의 선종(禪宗)과 교종(敎宗), 유학의 주자학과 양명학, 내지 이학(理學)과 심학(心學)의 논쟁이 각각 이러한 개념들의 어느 한 쪽에 섬으로써 벌어진다.

  이 담론에서 퇴계는 다(多), 고봉은 일(一) 쪽에 서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양자는 모두 상대방이 선 자리를 긍정한 바탕 위에서 상대방의 치우침을 경계했을 뿐이다. 퇴계는 일(一)만을 주장하면 사물의 변별성을 드러낼 수 없어 사물의 이치를 밝히는 이학(理學)의 참된 의미가 없어진다고 우려하였고, 고봉은 그렇다고 하여 다(多)만 강조하면 일(一)를 본체로 삼은 다(多)를 각개로 만들어 전체의 실상을 보지 못한다고 반박하였던 것이다.

  1566년에 두 사람의 논변이 끝났고, 1569년 퇴계가 68세의 나이로 당시의 임금인 선조(宣祖)에게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올렸는데, 이 중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중도(中圖)에서 사단과 칠정을 하나의 정(情) 속에 넣어서 고봉의 주장을 수용하고, 하도(下圖)에 가서는 사단과 칠정을 구분하였다. 여기서 중도는 하나를 전제하고 하도는 둘로 구분하여 사단과 칠정의 전체성과 변별성을 원만히 융회(融會)할 수 있게 된다.

 
 사단과 칠정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도 혼륜과 분개 두 관점을 겸할 때 온전히 파악된다. 즉 분개의 다(多)는 혼륜의 일(一)을 전제한 다(多)이어야 개체만 보고 전체를 망각하는 착각에 빠지지 않을 수 있으며, 혼륜의 일(一)은 분개의 다(多)를 전제한 일(一)이어야 사물의 다양한 곡절을 몰각(沒却)한 채 관념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의 마음 자체가 늘 혼륜과 분개를 반복한다. 즉 혼륜하여 전체를 보고 분개하여 각각의 사물을 안다. 혼륜하여 인식하는 전체성을 떠나서 분개하여 파악할 개체성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예컨대 한 폭의 풍경을 볼 때 우리는 풍경 전체를 먼저 인식한 다음 풍경 속의 나무, 집, 사람 등을 각각 파악하는 것이니, 전체는 보지 않고 부분만 알거나 부분은 알지 않고 전체만 보지는 않는다.

  나아가서 나의 마음 자체가 사물과 하나가 되기도 하고 둘이 되기도 하니, 혼륜과 분개의 관점에 의하면 본래 둘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사물을 내 의식 속에서 인식할 수 있고 본래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사물을 타자(他者)로 설정하여 인식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마음은 사물을 지각하는 순간 의식 속에 그 사물을 담아서 혼륜하고, 그 혼륜한 바탕 위에서 분개하여 다시 나와 사물의 관계를 나누어 인식한다. 만약 먼저 혼륜하지 않는다면 사물은 밖에서 사물로만 따로 존재하여 나와는 무관할 것이며, 분개하지 않으면 나와 구별할 수 있는 타자로서의 사물을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와 남, 세계와 사물, 각각의 사물 모든 것이 하나이면서 둘이요 다(多)이면서 일(一)이다.

  또한 사물은 하나가 여러 가지 개념을 포함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가 하나의 의미로 수렴되기도 하며, 작은 개체끼리 모여 큰 개체를 이루기도 하니, 복잡하게 착종(錯綜)하는 사물을 보면서 혼륜과 분개 두 관점의 균형을 잃지 않아야 사물의 본질을 잊지도 않고 다양한 현상의 의미를 놓치지도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의식은 줄곧 전체만을 잡고 있어서도 안 되며, 또한 개체를 떼어내어 따로 인식하고 전체를 잊어서도 안 된다. 전체성과 개체성, 이 양자를 보는 시각의 균형을 잃지 않고 시의(時宜)에 따라 혼륜과 분개를 원활히 전환하지 못한다면, 현실을 명징(明澄)하게 볼 수 없어, 편견에 빠지고 관념에 떨어져, 흐르지 않는 물처럼 의식이 고체(固滯)하고 말 것이다. 전체를 보지 못한 채 개체만 보면 자기가 한 쪽에 서 있음으로 해서 생기는 착시, 착각을 영영 벗어나지 못할 수 있으며, 다양한 개체의 곡절을 살피지 못한 채 전체의 목표와 이익만 주장하면 공허한 관념에 빠지기 쉽다.

  우리 사회는 다름의 싸움이 유달리 잦았던 역사를 거쳐 온 터라 다름을 인식하는 데 아주 익숙해져 있다. 지금도 보수 · 진보의 이념 싸움, 지역감정, 노사분규 등 극한 대립과 분열로 나라 안이 늘 시끄럽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당장 대선(大選)이라도 치를 모양새이다.

  개체의 다름이 인정되지 않고 전체의 같음만 주장하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며, 또한 개체끼리의 비교와 경쟁은 외려 개인과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지만 오랜 악연과 습성에서 생겨난 대립과 분열이라면, 그것은 무턱대고 상대방을 거부하고 반대하는 맹목적인 독선과 아집일 뿐이다. 자기가 어느 한 쪽에서 섬으로써 생겨난 착시는 선 자리를 옮기면 고쳐지겠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분열은 의식이 굳어져 다른 것은 일절 보고 듣기를 거부하는 일종의 병리현상이다. 일부는 아예 고황(膏肓)에 든 고질이다.

  퇴계와 고봉의 논변에서 보듯이 같음을 알 때는 같음을 알고 다름을 볼 때는 다름을 보아야겠지만 같음과 다름, 어느 한 쪽에 치우치면 시각의 균형을 잃어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한다. 따라서 먼저 자기가 속한 사회의 공통의 정체성과 이익을 명확히 인식한 바탕 위에서 자기가 선 지점이 어디인지 분명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개체의 다양한 지향이 소모적인 대립과 충돌을 벗어나 발전적인 쪽으로 갈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개체의 다름은 전체의 같음을 바탕한 다름이고 전체의 같음은 개체의 다름이 모인 같음임을 망각한 채 일변(一邊)에 서서 일변만 보고 일변인(一邊人)의 말만 듣고 끝없이 같은 주장만 되뇌고 있지는 않은가. 자기도 모를 말로 확대 재생산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나 자신을 망각한 채 관념에 빠진 채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지는 않은가. 지루한 소모적인 싸움판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지는 않은가.

글쓴이 / 이상하

*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교수
* 주요저서
   한주 이진상의 주리론 연구, 경인문화사(2007)
   유학적 사유와 한국문화, 다운샘(2007) 등
* 주요역저
   읍취헌유고, 월사집, 용재집,아계유고, 석주집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