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1990년대 중반까지 사회가 불안할 때마다 우리는 군의 동향을 살폈다. 쿠데타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지금도 저개발국에서는 군부 쿠데타가 드물지 않거니와 우리는 경제 수준이 저개발국을 벗어난 후에도 한동안 쿠데타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서야 그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이제 우리 사회는 군부 쿠데타를 걱정할 수준은 완전히 넘어섰다. 그만큼 민주화됐다 하겠다.

그런데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촛불시위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큰 사건이 발생하면 ‘촛불’이 들고일어나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5월23일의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사건 이후 또다시 촛불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정부는 긴장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반민주적인 군부 쿠데타라는 저급한 수준을 넘어섰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난데없는 촛불시위가 민주적으로 구성된 정부를 마비시키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수준에 불과함을 확인하는 요즘은 서글플 따름이다.

촛불시위가 아니더라도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도심의 폭력시위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도 걱정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장례식 다음날인 5월30일 오후 덕수궁 대한문과 시청역 일대에서 민주노총 조합원과 대학생 등 400여명이 서울광장 인근 도로를 점거하고 밤늦게까지 거리시위를 벌였다.

민주노총이 서울역에서 열려던 ‘열사정신계승·민중생존권·민주주의 쟁취 범국민대회’가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자 집회 참가자 중 일부가 오후7시부터 밤10시까지 서소문과 태평로 일대 차도를 점거하고, ‘독재 타도’ ‘이명박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경찰의 해산에 저항했다. 5월16일 대전에서 민주노총 화물연대가 1000여개의 ‘죽창’으로 경찰에 무차별 폭력을 행사해 104명의 경찰이 부상하고 경찰버스 등 차량 99대가 파손된 지 2주일 만에 도심 폭력시위가 재연된 것이다.

이쯤 되면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수단이었던 시위가 이제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단이 되고 말았다고 하겠다. 헌법에 따라 민주적으로 성립한 정권을 폭력으로 부정하겠다면, 합법적인 정부를 전복 시키는 쿠데타와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이렇게 불법시위를 일삼는 세력은 집시법을 반민주적인 악법의 대명사쯤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현행 집시법은 민주화 이후인 1989년에 전문(全文) 개정돼 사실상 새로 만들어졌고, 시위에 관해 가장 관대했다는 노 정부에서 개정을 거듭한 법이다. 기본권은 타인의 기본권과 조화를 이뤄야 하고, 이러한 조화를 취해 법률로 만든 것이 현행 집시법이다. 그러니 헌법재판소가 5월28일 집시법의 집회 사전신고제를 합헌이라고 선언한 결정은 너무도 당연하다. 헌재는 집회신고제가 “평화적이고 효율적인 집회 및 공공질서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 목적이 정당하다”고 확인했다.

이번에 불법시위를 주동한 민주노총은 생존권을 부르짖지만 실상 그들의 생존권은 그 어느 집단보다 보장돼 있다. 그들이 생존권 보장을 외치면서 폭력시위를 할 때, 정작 생존권을 위협받는 사람들은 서민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폭력시위로 얻고자 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를 주저앉히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언제까지 걸핏하면 치켜드는 촛불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죽창을 휘두르는 폭력시위대에 언제까지 공권력이 유린돼야 하는지 이제 심각하게 물어야 할 때다. 사회질서가 지켜지지 않는 곳이라면 선진화는 고사하고, 사회의 존립이 위협받는다. 불법시위와 우리 사회가 함께 존재할 수는 없다. 사회적인 결단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