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월드컵이라는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정희준 /동아대학교 스포츠과학부 교수, 문화연대 체육문화위원회 위원장

4년전 파시즘이니 쇼비니즘이니 뭐 그런 걸 염려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주장을 이내 접었거나 아니면 매우 조심스레, 돌려서, 살살 이야기했다. 대중의 잠재력과 가능성도 간파하지 못한 오만한 지식인의 결벽증이라는 집중포화를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지나간 한 여름 밤의 추억이겠지 하며 잊었다. 오산이었다.

개최국도 아니고 대회 개막도 석 달 넘게 남은 지금의 대한민국에 월드컵이라는 유령이 다시 찾아왔다. 그 동안 무엇을 먹었는지 더욱 커지고 힘도 세졌으며 그 광폭함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그래도 그때는 우리를 좋게 말해 ‘통합’시키고서는 예의를 갖춰가며 우리의 단물을 빨아먹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하나됨을 느꼈고 어깨동무하며 즐거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사방에 싸움판이다. 월드컵은 우리 사회를 떠돌며 우리를 쪼개고 갈라놓고 있다.

크게 보아 KTF와 SKT(알파벳 순!)가 이끄는 양대 세력의 격돌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추잡하다. 우선 양 통신사는 서로 자기가 ‘원조’라고 우기는 낯 뜨거운 광고를 시리즈로 내보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SKT와 손잡은 윤도현은 ‘오 필승 코리아’라는 응원가를 놓고 KTF와 한편이 된 붉은악마와 분쟁을 벌이더니 여기서 실패한 윤도현은 록버전 애국가를, 붉은악마는 새 응원가 ‘레즈 고 투게더’를 내놓고는 서로 자기네 응원가가 ‘적자’라고 우기고 있다. 한참 윤도현을 ‘씹고’ 있던 붉은악마는 지난 달 27일 제대로 한 방 먹었다. 서울시가 SKT컨소시엄에게 시청 앞 광장 사용권을 주는 바람에 시청 앞에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SKT, 그리고 서울시장도 나서서 붉은악마의 시청 앞 광장 응원을 배려하겠다는 제의에 단호하게 ‘노’라도 선언한 붉은악마는 이후의 대회전을 준비하며 전의를 불태운다.

사흘 후인 3월 1일의 대 앙골라전에서 붉은악마가 ‘찍은’ 상대는 SKT의 모기업 SK였다. 정확히 한달 전 부천SK가 제주도로의 연고지 이전을 발표하면서 부천 서포터즈들에게는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아 ‘딱 걸린’ 것이었다. 이들은 연고지 이전 반대를 내세워 검은 옷에 근조를 표시하고 경기 내내 SK비난 구호를 외쳤다. 이는 상암경기장의 분할을 가져왔다. 대~한민국을 외치는 관중과 SK를 야유하는 붉은 악마로 나뉘더니 관중이 시작한 파도타기를 붉은악마가 끊어 버리고, 급기야 대한민국을 외치는 관중에게 붉은악마가 폭언과 협박을 하는,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또 이날의 ‘사건’은 경기장 밖의 싸움을 불러왔다. 기존 SK의 연고지인 부천과 새로 이전키로 한 제주도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싸움이 붙어 버렸다. 제주도분들이 온라인싸움에 익숙치 않아서인지, 아니면 성남과 붉은악마가 한편이 되어서인지 제주도분들이 밀리는 양상이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서로의 지역을 헐뜯는 통에 우리나라에는 새로운 지역대결 구도가 탄생하게 되었다.

슬픈 코메디에 또 다른 등장인물이 있다. 월드컵에 미쳐버린 지상파 방송 3사가 시청자의 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똑 같은 경기를 동시에 중계하는 당돌함을 보인 것이다. 그들은 시청률에 대한 탐욕에 월드컵이라는 가면을 씌워 애국의 길이 바로 축구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날이 어떤 날? 바로 삼일절! 삼일절 특집 프로그램은 온 데 간 데 없고 3사의 프로그램은 하루 종일 월드컵 관련 특집 프로그램을 틀어댔다. 염치도 없다. 모두가 미쳐버렸다.

소박했던 축구

원래 축구는 열정적이면서도 순진했고 또 모두가 함께 했다.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70년대, 축구를 같이 하던 친구 중엔 고기에 쏘세지 반찬 싸오는 애도 있었고 김치밖에 없는 도시락을 말없이 먹던 아이도 있었다. 어렸지만 어렴풋 느끼던 우리간의 차이, 축구할 때는 없었다. 홉스봄은 축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문화양식 중 가장 대중적이라고 했다. 사회가 아무리 파편화되고 아무리 양극화 될 지라도 온 세계가 열광하는 것이 바로 축구다. 야구나 농구가 아무리 인기가 있고 돈이 넘쳐난다 해도 축구에 비할 바 아니다. 비틀즈가 아무리 자기네가 예수님보다도 더 유명하다고 떠들어 봐야 무하마드 알리의 전지구적 인기를 따라갈 수 없었던 것처럼.

배고팠지만 순박했던 시절 축구는 국기였다. 1970년대 비록 이웃의 삼류 국가대표팀들을 불러 우리 안방에서 두들겨 패던 삼류대회였지만 ‘박스컵’은 우리에게 당시 몇 안 되는 쾌감과 볼거리를 제공했다. “♩우리들은 대한건아, 늠름하고 용감하다 ♬ 기른 힘과 닦은 기술, 최후까지 떨쳐보세 ♪ 조국의 영광 안고 온 세계에 내 닫는다 ♪ 이기자~ 이기자~, 이겨야 한다...” 우리는 박스컵 기간 이 힘찬 ‘이기자 대한건아’ 합창과 함께 텔레비전에 둘씩 등장하는 선수들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우리 국가대표팀의 승리를 간절히 소망했다. 흑백 화면 구석의 득점상황엔 ‘대한민국’이 아닌 ‘한국’이었던 시절, 변변한 응원가도 구호도 없었고 집어던질 휴지도 없었지만 우리는 우리 대표팀이 골을 넣을 때 열광했고 골을 먹으면 땅을 쳤다.

국가와 자본의 등장

사실 축구는 국가가 지원했다. 세계에 내 보일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던 시절, 연이은 독재정권들은 축구와 올림픽과 프로권투를 뒷받침해 나라 이름을 알리고 국민으로 하여금 고된 세상사를 잊게 했다. 물론 교과서적이라 할 만큼 정치적으로도 잘 이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스포츠이벤트는 왜곡된 국가주의를 불러왔다. 마이클 브린은 〈한국인을 말한다〉에서 88올림픽은 나치올림픽보다도 더 심했다고 했다. 국가는 국민의 희생과 봉사를 강요했고 당시 질문을 던질 능력을 상실했던 우리는 한국이 후진국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돌격 앞으로’ 정신으로 해치웠다.

2002월드컵도 매한가지였다. 어찌 보면 더 심했다. 사실 별 것도 아닌 공차기(?)를 국가간, 민족간의 ‘운명을 건’ 대결로 포장해 국가는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며 국민을 훈육했다. ‘한발 앞으로’ 다가서라며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는 4강까지 오르자 우리만의 잔치로 만들어버렸다. 온 국민의 붉은악마화는 섬찟했고 국수적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어령이 ‘닫힌 우리’의 모습이었다고 꼬집었고 어느 외국 언론으로부터는 “월드컵에 월드는 없고 코리아만 있었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로버트 팩스턴은 〈파시즘〉에서 파시즘은 국민들에게 거대한 집단적 창조 행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흥분을 육감적으로 경험하게 해 준다고 쓰고 있다. 그 책에는 1936베를린올림픽 경기장에 입장하는 히틀러에게 경례(하일 히틀러!)를 하는 군중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사진이 있는데 흑백이지만 너무나도 익숙했다. 아니, 똑 같았다. 기립한 수만 관중, 앞으로 쭉 뻗은 팔들. 한 팔과 양 팔의 차이만 빼고 말이다.

월드컵이 끝나고 그 기억을 어떠한 형태의 유산으로 간직할 것이냐를 두고 보이지 않는 암투가 있었다. 상당수는 월드컵의 경험에서 대중의 주체성과 역동성, 그리고 자발적 참여를 중시하며 이들의 문화적 창조력을 되살리고자 했다. 그러나 자본과 언론 등 기득권집단은 우리 기억에 희미해져가던 ‘우리는 할 수 있다’를 다시 내세워 프로파간다에 나섰다. 이들은 월드컵이 희미해져가던 ‘국가’와 ‘애국’을 다시 불러다 주니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했다. 국기에 대한 맹세, 국민교육헌장, 민방공훈련, 그리고 온 국민을 저녁 6시 동시에 차렷시키던 국기하강식이 사라진 상황에서 월드컵이 국가를 다시 데리고 들어오니 눈물겨울 뿐이었다. 사실 이들은 젊은이들이 태극기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몰려다니면서 괴성을 지르고 경적을 울려대는 것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광풍을 되돌릴 수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진로를 수정했다. 그들은 응원 후 싹 청소도 하고 애국가도 4절까지 부르는 젊은이들에게 우리의 새로운 미래라고 호들갑을 떨며 찬양하고 이들의 등을 두드리며 이제 다시 나아가자고 다독였다. 어디로? 경제 4강으로. 축구 4강을 경제 4강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참고로, 3천만 명 이상이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브라질은 월드컵 5회 우승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반성과 준비

축구는 축구 그 이상의 것이고 월드컵은 세계 최고의 이벤트다. 그러나 유럽에서나 남미에서나 자국 리그의 축구, 그들 지역팀의 축구는 정확하게 월드컵 축구만큼의 사랑을 받는다. 평소엔 축구에 관심도 없다가 유독 월드컵 때만 일사분란하게 광분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그리고 축구든, 농구든, 야구든, 그리고 유럽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응원하길 강요당하는 경우도 없고, 관중들이 붉은악마식의 일사분란한 군사주의적 응원을 하면서 국가이름을 외쳐대는 나라도 없다. 세계에서도 유래 없는, 동원과 통제에 의한 응원이다. 그 비근한 예는 평양에서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자본과 언론이 달려들어 서로 응원 주관하게다고 싸우는 경우도 보지 못했고, 정부(또는 도시)가 이들을 싸움 붙이고는 한쪽 재벌 손을 들어 ‘너희만 해라’ 하며 광장독점권을 주는 경우도 내 기억엔 없다. 이런 진흙탕 싸움판에 응원단과 가수가 끼어드는 것이나 3개 지상파가 동시에 같은 경기 중계하는 것은 더더욱 그렇고.

2002년 월드컵은 분명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었다는데 2006년 월드컵은 우리를 갈라놓고 찢어 놓기 시작했다.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비난하고 저주하는 가운데 이제 축구는 옛날의 그 축구가 아닌 괴물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또 다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것인가. 그 때 우리가 빨려 들어간 사이 대한민국에선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의 구속, 병원노조의 파업,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투쟁, ‘국제적 행사’ 때문에 단속, 철거당한 노점상과 철거민의 시위, 역대 최저 투표율(48.9%)을 기록한 6.13 지방선거, 서해교전 사태와 전사한 해군병사들에 대한 거국적 냉담함, 미군기지 고압선에 감전되어 사지가 잘리고 결국 사망한 전동록씨, 그리고 온 국민이 무시했던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 등등. 그리고 그 블랙홀에서 빠져나와 몽롱해진 우리는 무소속 국회의원으로 부잣집 아들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몰랐던 축구협회장을 이 나라의 영도자로 만들 뻔 했다. 이번엔 바짝 정신 차리고 단단히 붙들어 맬 일이다.


음..일단 이분에겐
순수한 스포츠란  전국체전정도 이겠네요..
일단 축빠라는 말은 자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