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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작년 이 맘때 부터였네요.

옛날부터 읽어야지.. 생각만하고 손에 잡지 못했던 <토지>라는 시리즈를 나름 큰 결심(^^;)끝에 읽기 시작한게... ^^;


하루에 책읽는데 투자하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전 21권 다 읽는데 8개월정도 걸린거 같네요. --;
(1부, 2부 등 각 부가 끝날때마다 나름 하프타임이라며.. 다른 책도 한 두권씩 읽어준 것도 오래 걸린 이유라능... 눼... 핑계입니다. 저 사실 책 많이 안읽어요... ^^;)


여튼.. <토지>를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토지>와 비슷한 세대에서 삶을 사셨던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어떤 삶을 사셨을까?


사실 <토지>에 등장하며 격동의 일제치하를 겪으셨던 세대가 그리 먼 세대도 아니죠.

소설속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중 하나인 <유인실> 정도면, 아직 살아계신 저희 외할머니 또래... 는 아니겠구나. 울 외할머니가 몇살 어리시겠구나... --a


<토지>의 주인공인 최서희가 1894년생... 돌아가신 저의 친할아버지가 1901년생이시던가... --a

역시 주요인물중 하나인 <이홍>은 역시 돌아가신 저희 외할아버지와 또래일듯 싶고..


여튼...

소설을 읽는 내내 저의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이 계속해서 나더군요.


아마.. 가난한 농사꾼의 집안에서 태어나셨다던 제가 너무나 사랑했던 저의 친할머니.. 학교라는 곳에는 근처에도 못가보셨던... 돌아가실때까지 한글을 전혀 못읽으셨던 완전 '까막눈'이셨죠.

우리 할머니는 평사리에서 살던 농사꾼 아낙들과 같은 삶을 사셨을까?


일제시대... 이화여전을 다니셨던 저희 외할머니...

예전에 정동 근처 지나갈때... 할머니 학교 다니실적에 지금의 연대생들을 '연전뽀이들'이라 불렀다면서 그 시절 추억하시던거.. 울 할머니도 그런 시절이 있었누나 싶어서 참 재밌게 들었었는데...

외할머니는 소설에 나오는 <명희>나 <인실>과 같은 소위 '신여성'의 삶을 사셨을까?



그러다가.. 예전부터 지금까지도 끊임없는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는 '친일인명사전' 관련 기사들을 읽으면서...

사전 편찬에 대해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공격하는 일부 人들을 보면서 분개하며.. '저런 친일파놈들!'하면서도 불현듯 드는 생각...


과연 저의 할아버지는 일제시대때 '친일'에 자유로우실 수 있으실까?

저의 친할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시던 분이었는지.. 또 일찍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어떤 일을 하시던 분이었는지 아는게 거의 없어서 더 궁금해지더군요.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대해 일부러 말씀을 안하신걸까?

아니면, 내가 묻지 않아 말씀해주실 기회가 없으셨던 것일까?



그래서 지난 추석때 가족들이 모였을때 한 번 여쭤봤었죠.

우리 할아버지는 일제시대때 어떻게 사셨었는지...



저희 할아버지는 일제시대때 대서소같은걸 하셨다 하더군요.

아버님말로는.. 요즘으로 치면 법무사 비슷한 일이었다 하던데...

당시 문맹률이 높던 시절에 대신 편지같은거 써주는 일도 하시고...

소송이라던가 뭐 이런 관청이나 법원에 필요한 문서같은 것도 만들어 주시고...


그런데.. 그 일을 하시면서 돈을 참 많이 버셨다 하더군요.
(그게 당시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a)

그래서 이 얘기 들으면서 기분이 좀 묘해지더군요.



그 돈이 어떻게 번 돈이었을까?



계속 이어지는 아버지의 말씀...

돈 버셔서 땅도 꽤 많이 사셨다.
(아니 그런데 왜 우리아버지는 어릴때 가난으로 고생하신거지? --;)


곧 그 궁금증을 풀어주시더군요.

돈을 엄청 버셨었는데.. 그 돈.. 금광에 투자해서 몽땅 날리셨다고... --;


마치.. <토지>에서 '조준구의 광맥사업'이 연상되는... --;

혹시.. 그 돈들이 부끄러운 돈들은 아니었을까?



외가쪽에 대해서도 우연히 지난 추석때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죠.

난데없이 울산시청인가에서 날아온 '외증조할아버지 소유하신 땅이 이번에 도로가 놓이는 곳에 있으니 확인하고 보상받으라고...'

큰외삼촌이 확인해보시니 싯가로 무려 300만원이나 되는 땅 덕분에... (--;) 큰외삼촌이 들려주시던 외증조할아버지 얘기를 잠깐 들을 수 있었죠.


외증조할아버지는 구한말 지방에서 말단벼슬하시던 분이셨다고... --;

외할아버지 서울로 유학가서 경성제대 다니셨다고 하니.. 일제시대해도 갑부는 아니지만 여유있게 사셨다고...


그러자.. 구한말 벼슬 + 일제시대에도 넉넉하게 사셨다는 얘기에 저보다 5살 어린 사촌동생이 큰외삼촌께 과감히 여쭤보더군요.

<외할아버지는.. 외증조할아버지는 친일파셨나요?> 하구요.


갑작스러운 그 질문에 대해 여러 의미가 담긴 '껄껄껄'하는 웃음과 함께 돌아온 큰외삼촌의 대답은 '소극적 친일이라고 할 수 있을 수도 있다' 라는 애매한 대답...


그 얘기에 충격받은듯...

또다시 이어지는 사촌동생의 질문...

<그럼 외증조할아버지도 친일사전에 올라가나요?>

그러자.. 큰외삼촌, 화들짝 아니라고 하시며... <일제시대.. 적극적으로 나서신건 없고, 그렇다고 독립운동 지원하신것도 아니셨으니.. 뭐... 그냥 동조했다 할 수 있을까?>라 하시더군요.



예전에 옆집에서 자신의 할아버지께서 친일사전에 등록되신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충격받으셨다는 분이 올리신 글을 봤던 기억이 있는데...

어찌보면 일제시대때 큰 돈(그게 혹시 부끄럽게 버신 돈이었다면...)을 버셨다는 친할아버지.. 일제시대때 '소극적 친일'하셨다는 외증조할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저도 '역사'에 대해 과연 '떳떳하다' 말할 수 있는지... 아니.. 친일파의 후손으로 그 때 벌어놓은 돈으로 지금까지 호위호식하는 무리들을 보면서 비난할 자격은 있는 것일지...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일제 시대때 좀 사는 집안이었다는 친가와 외가의 혜택을 저희 아버지나 어머님은 전혀 받지 못하셨다는 거? --;

6남매중 막내셨던 저희 아버지는 태어나셨을 때가 이미 할아버지가 광산으로 전재산을 날리신 이후여서... --; 저희 아버지는 소시적에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시다가 뒤늦게 야간대학에 들어가셨다 하더군요. 그시절.. 하루 세끼를 모두 라면만 드시고 사셔서... 지금도 '라면'이라면 끔찍하게 싫어하신다는...

역시 6남매중 5째셨던 저희 어머님은.. 외할아버지께서 625때 북한군에게 잡혀 고초를 당하신 후유증으로 625가 끝나고 몇년 뒤에 돌아가셨다는데... 그게 저희 어머니는 초등학생 시절 얘기. 덕분에 그때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서... 당시 대학생이셨던 저희 큰외삼촌 둘째 외삼촌은 어떻게 해서든 대학공부는 마칠 수 있었는데... 저희 셋째 외삼촌부터는 돈이없어 학교에 못보냈다고...



여튼.. 어제 오늘 '친일인명사전' 얘기를 보면서.. 그 후손들이 어째저째 반대시위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 한켠에서는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이의 후손으로써 깊이 사죄하는 분들의 기사도 보면서...

불현듯 '과연 우리집안도 떳떳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이런 저런 잡생각에 재미도 없는 장황한 개인적인 가족 얘기를 두서도 없이 썼네요. --;



애고... 애국하며 살아야 할텐데...

애라도 하나 더 낳아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