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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시작된 퀴즈. “김유정의 소설 <봄봄>에서 <봄봄>은 무슨 뜻일까요?” 퀴즈에는 정답이 있지만 ‘당연하게도’ 이 퀴즈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게 이건 퀴즈가 아니라 질문처럼 느껴졌습니다. 정답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을 중시하는 질문.

고등학교 국어 시간 때 읽었던 소설을 다시 찾아 읽으면서 <봄봄>의 제목에 대한 해석을 여러 개 제시해봅니다.

1. 동일음의 반복으로 작품의 해학성을 표현

이 단편 소설의 제목은 <봄>이 아니라 <봄봄>입니다. 제목을 <봄>이라고 했을 때보다 <봄봄>이라고 했을 때의 느낌은 훨씬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게 들립니다. 동일음의 반복이 ‘봄’이라고 했을 때보다 약동하는 힘을 전해줍니다. 이 소설을 다시 읽어보니 김유정이 동일음의 반복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빙빙, 펄펄, 갑갑, 푹푹, 쑥쑥, 끙끙, 뚝뚝, 척척, 땅땅, 붕붕, 툽툽, 괄괄, 벙벙, 쿡쿡과 같은 의성어 위주의 이음절 반복어 외에 파릇파릇, 철벙철벙, 엉금엉금, 물컥물컥, 울렁울렁, 으쓱으쓱, 으적으적, 서글서글, 빨리빨리, 수군수군, 부랴부랴와 같이 주로 의태어로 된 4음절 반복어도 엄청나게 등장합니다.

소설 <봄봄>은 주인공 ‘나’가 전해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마름인 봉필의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와서 일을 해주고 있는 3년 7개월째 무보수로 일하고 있는 무지랭이입니다. 김유정은 시골의 노총각(그의 나이는 당시 나이로는 혼기가 지난 스물여섯)이 논두렁에 앉아 신세한탄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나 봅니다. <봄봄>에서 많은 음의 반복이 나오는 것은 살아있는 듯한 리듬감을 독자에게 전해주려는 의도겠지요. 김유정의 소설의 특징을 흔히 해학성이라고 했을 때 이런 해학성은 판소리와 마찬가지로 민중의 언어을 오롯이 차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판소리는 동일음의 반복을 통해 리듬감을 꾀하지요) 제가 과문한지는 몰라도 춘원이나 심훈의 소설에서 위와 같은 음의 반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봄봄>이라는 제목은 민중의 소리와 해학성을 표현한 제목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봄을 본다는 의미

<봄봄>을 ‘봄을 본다’라고 했을 때 뒤의 ‘봄’은 ‘바라보다’의 의미입니다. 이때 ‘봄을 바라본다는 의미’는 ‘즐겨 구경한다’는 완상(玩賞)의 의미가 아닙니다. 화자의 일인칭 시점이 강조된 <봄봄>은 시각적인 느낌보다 청각적인 느낌이 강한 소설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처한 상황도 ‘봄을 완상’할 분위기가 아닙니다.

이때 ‘봄을 본다’에서 ‘본다’는 바라볼 ‘망’(望)자의 의미입니다. 그것은 아직 오직 않는 것을 바라보기에 ‘바라다’, ‘희망하다’의 의미로 쓰이지요. 따라서 이때 <봄봄>은 춘망(春望), ‘봄을 갈구하다’의 뜻이 됩니다. 주인공 ‘나’는 자신의 인생에 ‘봄’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해석대로 하면 ‘인생의 봄을 갈구함’이 됩니다.

3. 봄의 에로틱한 면을 강조한 제목

휴식과 죽음의 계절인 겨울이 지나고 들판에 싹이 돋아날 때 사계절 중 가장 에로틱한 계절인 봄이 기지개를 폅니다. 보티첼리는 <프리마베라>에서 봄의 이런 속성을 회화로 표현했습니다. 한자문화권에도 봄을 섹슈얼리티와 연관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춘정(春情), 춘화(春畵), 매춘(賣春)과 같은 것이 용례이지요.

<봄봄>은 춘정입니다. 주인공 ‘나’가 그토록 원하는 것은 점순이와 결혼하는 것이지요. 스물 여섯해 동안 억제된 욕정을 결혼을 통해 해소하고 싶은 것입니다. 따라서 ‘봄을 바라다’라는 두 번째 해석과 이것을 연관시켜 보면 <봄봄>은 ‘결혼을 바라다’내지는 ‘섹스를 갈망하다’라는 뜻이 됩니다.

4. 짝지기의 의미로서 <봄봄>

세 번째 해석을 더 확대해 보겠습니다. <봄봄>은 짝짓기 소설입니다. 약동하는 계절에 ‘나’는 춘정을 느낍니다. 소설 중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그 전날 내가 새고 개맞은 봉우리 화전 밭을 혼자 갈고 있지 않았느냐. 발가생이로 돌 적마다 야릇한 꽃내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고 머리 위에서 벌들은 붕,붕 소리를 친다. 바위 틈에서 샘물 소리 밖에 안들리는 산골짜기니까 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끄는 것 같다. 나는 몸이 나른하고 몸살이 날려구 그러는지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이랬다”

바야흐로 짝짓기의 계절인 봄이 온 것을 김유정은 위와 같은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봄>이 아니라 <봄봄>이라고 봄을 두개 겹쳐 놓은 것은 봄날의 짝짓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봄봄은 한자의 쌍'희'자와 유사합니다. 이렇게 쓰지요---> 囍 기쁠 '희'자(喜)를 두개 겹쳐 놓은 모양이지요.

囍자는 남녀간의 만남이나 결혼을 의미할 때 주로 쓰는 글자로 북송의 왕안석이 장인으로부터 아내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낸 글자입니다(이러한 해석이 무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김유정은 보통학교 진학하기 전까지 한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는 한글과 한문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천재였습니다)

암튼 '봄봄'은 김유정이 봄날의 에로틱한 짝짓기 과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제목인 것 같습니다.

5. 봄 ․ 봄 : 짝짓기의 단절

이쯤 되면 반론이 나올 때가 되었습니다. <봄봄>의 원제목이 <봄․봄>이라는 것이죠. 봄과 봄 사이에 점이 들어가 있으니 위와 같은 해석은 엉터리라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조광>에 연재될 당시의 제목에 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아직 확인을 안해봤지만 저는 제목 중간의 저 점을 보고 재미난 생각이 들었습니다. <봄봄>에서 ‘나’와 ‘점순이’를 단절시키고 있는 것은 장인인 봉필입니다. 즉 <봄봄>을 ‘짝짓기’의 의미로 해석했을 때 제목 봄과 봄을 단절시키는 ‘점’은 바로 장인입니다. 이 소설은 짝을 맺으려는 프로타고니스트(주연)와 그것을 방해 또는 이용하려는 안타고니스트(악역)의 대립으로 읽어야 합니다. ‘짝짓기’를 갈망하는 프로타고니스트의 행위만 보고 미소를 짓는다면 이 소설은 단순한 해학 소설에 머물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 ‘점’에 주목할 때, 우리는 실재를 바라보게 됩니다. 저 점은 어쩌면 실재의 흔적인 것입니다. 이 문제는 여섯 번째 해석과 연관될 수 있습니다.

6. 봄의 하염없는 반복, 지연되는 봄

두 번째 해석에서 <봄봄>을 ‘인생의 봄을 희망한다’라 해놓고 이 해석을 잠시 유보시켜 놓았습니다. 대신 ‘짝짓기에 대한 갈구’로 논의를 바꾸었죠. 여기서는 이 두 해석이 공존할 수 있음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봄에 춘정을 느끼는 한 남자와 그 남자를 이용하는 (예비)장인과의 해프닝으로 이 소설을 본다면 그건 너무 싱거운 해석입니다. 이것은 표면적 사건이고 그 아래에는 계급관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지도 않고 하염없이 노동력을 약탈당하는 ‘나’는 피지배 계급을 상징합니다. ‘나’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장인’은 지배계급을 의미하지요.

‘나’는 혼례도 못치르고 쇠경도 못받은 상황을 호소하러 ‘구장’을 찾아갑니다. ‘구장’은 처음에 ‘나’에 말에 귀를 기울이다 ‘장인’과 밀담을 나눈 뒤 다음과 같은 말로서 엄포를 놓지요.‘

“자네 말두 하기야 옳지, 암 나이찼으니까 아들이 급하다는 게 잘못된 말은 아니야. 허지만 농사가 한창 바쁜 때 일을 안 한다든가 집으로 달아난다든가 하면 손해죄루 그것두 징역을 가거든! (여기에 그만 정신이 번쩍 났다.) 왜 요전에 삼포말서 산에 불 좀 놓았다구 징역 간 거 못 봤나? 제 산에 불을 놓아도 징역을 가는 이땐데 남의 농사를 버려 주니 죄가 얼마나 더 중한가. 그리고 자넨 정장을(사경 받으러 정장 가겠다 했다) 간대지만 그러면 괜시리 죄를 들쓰고 들어가는 걸세. 또 결혼두 그렇지, 법률에 성년이란 게 있는데 스물하나가 돼야 비로소 결혼을 할 수 있는 걸세. 자넨 물론 아들이 늦을 걸 염려하지만 점순이루 말하면 이제 겨우 열여섯이 아닌가. 그렇지만 아까 빙장님의 말씀이 올 갈에는 열일을 제치고라두 성례를 시켜 주겠다 하니 좀 고마울 겐가. 빨리 가서 모 붓던 거나 마저 붓게, 군소리 말구 어서 가.

‘나’를 위협하는 ‘구장’ 또한 국가기관의 하수인으로서 지배층을 상징합니다.

이 소설의 절정은 ‘점순이’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기 위해 ‘나’가 ‘장인’과 싸우는 장면입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장인’에게 불알을 잡하지요. ‘나’ 또한 ‘장인’의 불알을 잡고 대들다가 믿었던 ‘점순’에게 후려 맞고 멍해지는게 소설의 끝입니다.

지배-피지배의 대립적 구도 하에 피지배 계급은 ‘욕망’마저도 지배계급에 종속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나’가 ‘장인’의 불알을 잡고 싸우는 부분에 나온 ‘나’의 독백입니다.

“그러나 이때는 그걸 모르고 장인님을 원수로만 여겨서 잔뜩 잡아당겼다”

이건 소설의 끝부분이 아닙니다. 앞서 말했지만 소설의 끝은 ‘점순이’의 배신에 당황한 ‘나’가 멍하니 ‘장인’으로부터 두들겨 맞는 부분에 갑자기 끝납니다.

위의 문장을 보면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현재의) ‘나’는 ‘장인’의 꾐에 다시 넘어가서 그의 밑에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때는 그걸 모르고’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봄봄>은 ‘짝짓기를 바라는 욕망’입니다. 하지만 그 욕망은 지배-피지배 계급의 구도하에서 보면 지배계급에 저당 잡혀 있습니다. 피지배 계급은 ‘희망의 봄을 원하고’있지만 그 봄은 끊임없이 지연됩니다.

그래서 <봄 ․ 봄>을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봄․봄․봄․봄․봄․봄․봄․․․․․․․․․․’
봄에 대한 기대만 있고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은채 끊임없이 지연되는 봄. 이때 ‘점’은 지연으로서의 ‘점’입니다. 그 점은 끊임없이 수평으로만 무한대로 확장되어 갑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짝짓기’ 욕망을 번번이 좌절시키는 자라지 않는 ‘점순이’의 점입니다. 점순이의 키는 김유정의 묘사에 의하면 ‘붙배기 키에 모로만 벌어지는 몸’이기 때문이지요.

나는 이렇게 <봄봄>의 제목을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