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생각하기에 따라 스포일러가 있을수도 있겠네요)


<황해>라는 제목은 지리상의 '서해'를 의미한다기 보다는 '황천길'을 의미한다는 면에서 신화적인 제목입니다.
영화의 내용 또한 죽은 아내를 찾아 저승으로 찾아가는 오르페우스의 신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도박빚으로 시달리는 연변의 구남(하정우)은 오르페우스이고 그의 아내가 돈을 벌러간 한국은 지옥입니다.
그에게 살인 청부하는 개장수 면정학(김윤석)는 하데스입니다(하데스가 머리가 셋달린 개를 지옥견을 데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개장수의 설정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심지어 구남이 연변으로 돌아가기 위해 타는 통통배의 노인도 아케론강의 어부 카론을 연상케합니다.

이 영화는 지옥을 찾아온 한 남자와 어둠의 세계를 지배하는 신과의 대결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구남이 지도 한장을 펴고 산맥을 따라 헤매는 장면이나 소뼈다귀로 사람을 죽이는 면정학의 모습에서 현실적인 리얼리티 보다는 신화적 상징이 읽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지옥으로 묘사된 대한민국은 폐허가 된 집으로 보여집니다. 그것은 연변교포들이 머무는 빈집, 장식장 하나 보이지 않는 여인숙, 사람이 거의 방문하지 않을 것 같은 횟집과 같이 직접적인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하고 불륜 때문에 붕괴된 가족 관계를 통해서 표현되기도 합니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교포'에 착안한다면, 붕괴된 가족 관계는 연변과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독해가 가능합니다. 이 영화에서 한국 사람들은 연변 교포들에 대해 대놓고 반말을 찌껄이는 등 멸시를 합니다. 한국말이 통하는 외국인처럼 대하고 있지요.

황해가 아니라 혈해라고 불려도 될만큼 영화 내내 피가 넘실거리는데 그 피의 원인은 어이없게도 '바람'입니다. 구남이 아내를 찾고자 하는 것은 사랑때문이라기 보다는 섹스때문입니다.구남의 꿈과 상상을 통해 반복되는 아내의 섹스 장면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아내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할까 두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김태원 사장은 자신의 정부가 친구인 김승현과 섹스를 한 것 때문에 살인을 합니다. 김승현은 아내를 두고 친구의 정부와 섹스를 하다가 죽음에 이릅니다. 김승현의 아내와 은행과장 김정환은 불륜관계가 들킬까 두려워 김승현을 청부살인합니다. 심지어 곁다리처럼 나오는 수산물 유통업자도 불륜관계 때문에 치정살인을 저지릅니다. 이 모두가 '이웃집 아내를 탐한 죄' 때문입니다.

연변 청년이 한국에 와서 경험하게 되는 지옥의 모습을 영화로 담는다고 하면 보통 타락한 타락한 자본주의 모습을 그릴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저 불륜때문에 풍비박산난 집구석만 비춥니다. <추격자>에서도 내내 꺼림직했던 것이 그 영화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죽어야만 했던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해 쉽게 가정을 버리고 유흥업소에 취직했기 때문입니다. <추격자>나 <황해>에는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는 여성에 대한 반감과 두려움이 묘하게 도사리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면에서 이 영화의 액션씬은 상당히 잘찍혀 있습니다. 야간 추격씬을 찍을 때 조명이나 동선을 맞추기가 무척 힘들었을텐데 스피드와 박력이 넘칩니다. 하지만 부산 6부두 추격씬을 자세히 보면 숏과 숏 사이에 감도가 안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이 옥에 티입니다.
'택시운전수', '살인자', '조선족', '황해'의 4챕터로 구성된 부분 중에서 저는 앞의 두 챕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구남의 심리상태를 대사에 의존하지 않고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할려고 한 점이 돋보입니다.
뒤로 갈수록 영화는 스토리가 헐거워집니다. 가장 나빴던 부분은 김태원 사장이 죽어가면서 자신의 살인 이유를 독백으로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156분의 생각보다 시간이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열정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나홍진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 대해 항간에 안좋은 소문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런 '똘끼'가 없다면 절대 만들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많은 살육 씬을 줄이고 인물이 처하게 되는 사회 상황에 대한 살을 더 붙였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