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교수: 소우. 디스 이즈 더 모스트 임포튼 컨셉 인 디스 렉쳐 투데이. 에니 퀘스쳔?

학생들: ...

교수: 우리말로 해도 좋으니 질문해 보세요.

학생1: 근데 저 위에서요...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원래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은 갑자기 그리고 한순간에 일어나니까 말이다. 평생을 죽도록 공부하고도 영어 한마디 못하는 모습이 한심했을까? 아니면 외국인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주눅 드는 것이 한(恨)이 되었을까? 영어를 잘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우리 모두를 사로잡았다. 영어 유치원은 자리가 없어서 못 들어가고, 초등학생도 “하우 아 유?”에 “아임 파인. 땡큐”가 튀어 나온다. 영어에 대한 이런 범국민적 몰입과 ‘오렌지’가 아니라 ‘아륀지’가 옳다는 정책이 결합하여 역사상 유래가 없는 영어지상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대학도 영어의 쓰나미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많은 강의를 영어로 하는 것은 이미 상식이고 모든 강의를 영어로 하는 대학도 있으며, 외국인 교수가 없는 대학은 촌스러운 학교가 되었다. 몇 퍼센트의 강의가 영어로 진행되는지, 외국국적 교수가 몇 명인지 하는 것들이 이른바 ‘국제화’라는 이름으로 점수화되어 대학 평가의 중요한 잣대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제는 우리가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영어로 유창하게 강의할 수 있는 교수가 실제로 그리 많지 않은 탓에, 많은 대학에서 영어 강의는 신임교수들만의 몫이다. 영어강의를 하는 조건으로 대학이 교수를 채용하기 때문에 신임교수들은 좋던 싫던 영어강의를 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어가 아무리 유창하다고 한들 모국어가 아닌 이상 우리말로 하는 것보다 강의의 질이 떨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학생의 경우는 문제가 더욱 심각한데, 우리말로 해도 알아들을까 말까한 내용을 콩글리시로 듣고 있자니 이해는커녕 흥미마저 잃어버린다. 내국인이 진행하는 영어강의의 공통점은 농담이 없다는 것인데, 준비 없이 영어로 농담을 하기도 어렵거니와 설사 농담을 해도 알아듣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을 위한 영어인가? 양자역학을 영어로 강의하라는 것은 양자역학과 영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의도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리석은 아이디어다. 우리말로 차근차근 설명하고, 수많은 예를 들어가며 그 철학적 함의를 설명해도 이해하기 힘든 것이 양자역학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것을 영어로 가르치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더구나 영어공부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결국 영어 비전문가가 영어를 가르치는 셈이다. 물리학과 교수에게 중고생 자녀의 영어 과외를 맡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시간 강의로 영어와 양자를 한번에! 이거야말로 교육을 비즈니스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이 시대의 어리석은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물리학자에게 영어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어를 잘 하기위해 물리를 희생해야 한다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거다. 비타민이 건강에 좋다고 밥 대신 비타민만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브라질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미국인이었던 파인만은 영어가 아닌 포르투갈어로 강의를 한다. 다음은 그가 설명하는 이유다.

“처음에는 강의를 영어로 하려고 했지만, 곧 뭔가를 깨달았다. 학생들이 나에게 포르투갈어로 설명을 하면 내가 어느 정도 포르투갈어를 아는데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 그러나 그들이 영어로 더듬대며 말할 때는, 발음이 엉망이고 문법이 엉터리여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을 하거나 가르치려면 엉터리라도 포르투갈어를 쓰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들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리처드 파인만,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 중에서)

2011년 대한민국 어느 대학의 강의실.
학생, 교수 모두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토종 한국인이다. 하지만 수업은 영어로 진행된다. 강의실에 질문은 원래부터 없었지만, 이제 웃음마저 사라졌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대학은 이렇게 바벨탑을 쌓고 있다.

김 상욱 교수는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카이스트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포스텍과 카이스트에서 박사후 연구원 생할을 하고,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방문연구원, 서울대학교 연구조교수를 거쳐, 2004년부터 부산대학교 물리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9년 일본 JSPS 초청 동경대학교 방문교수, 2010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양자정보 및 양자광학연구소 방문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양자과학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고 있으며,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라는 대중과학서적을 출간하고, 국제신문, 국민일보 등에 과학칼럼을 연재하는 등 과학대중화 운동에도 관심이 많다.             
swkim0412@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