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참나무
- 작성일
- 12-03-18 12:46
러시아의 어느 학교에서 매일같이 지각하는 아이를 담임선생님이 불렀다.
"넌 어째 하루도 안 빠지고 지각을 하니? 너희 집이 어디니?"
"요양원 근처인데요."
"거기까진 40분이면 되는데 이상하구나."
그래도 아이의 지각은 계속되었고 선생님은 마침내 아이와 함께 아이의 집을 방문해보기로 했다.
어머니를 만나서 얘기를 좀 해야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갔다.
아이는 도중에 샛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가면 지름길이라고.
샛길은 숲길이었다. 숲길을 따라 걷노라면 군데군데 짐승의 발자국을 보였고 아름드리 나무도
눈길을 끌었다. 아이가 소리친다.
"선생님 저것 좀 보세요. 저건 큰 사슴 발자국이에요."
"넌 큰 사슴을 봤니?"
"아뇨 아직 보진 못했어요. 하지만 저건 큰 사슴 발자국이 맞아요."
"무섭진 않니?"
"하나도 안 무서워요. 큰 사슴은 사람을 물지 않거든요."
갑자기 선생님은 하늘을 본다.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이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었다.
발에 차이는 이름 모를 들꽃도 탄성을 지르게 했고, 눈앞에 아름드리 참나무도 안아보지 않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모처럼만에 느껴보는 따스한 동심이었다.
꾸짖고만 싶었던 아이 앞에서 선생님은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선생님은 이제껏 자신은 한 번도 숲길을 다녀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매일 같이 차를
타고 최대한 빨리 가는 것만 생각해왔던 자신의 모습이 왜 그런지 자꾸만 부끄럽게 느껴졌다.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자연에서의 시간은 도심과는 또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잠시 후, 선생님은 아이를 불렀다. 그리고 두 팔 가득 아이를 안아주며
이렇게 속삭였다.
"넌 앞으로 계속 이 길로 다니거라."
러시아의 소설가 '유리 나비긴'의 소설<겨울 참나무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