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유니폼을 입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야
- 작성일
- 11-11-10 16:20
밑에 용산성인님 글 보고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3314
켄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2000년)는 고단한 청소 용역 이주노동자의 현실과 투쟁을 그린 영화다. 멕시코 처녀 마야가 미국으로 밀입국한 것은 오로지 살기 위해서였다. 막상 ‘기회의 땅’에 발을 들여 놓았다고는 하나 여자에, 멕시칸이며, 가진 것 하나 없는 무산자 마야가 그나마 비정규직 노동자로 빌딩 청소를 하게 된 것도 알고 보니 언니 로사가 성 상납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도 첫 월급은 중간관리자에게 떼이고 아무런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는데다가, 수시로 해고 위협에 시달린다.
‘빵과 장미’라는 제목은 1908년 3월 8일 미국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면서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라며 생존권 뿐 아니라 인간답게 살 권리를 요구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구호에서 비롯되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21세기에도 여전히 청소 노동자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저임금과 노동 착취, 해고의 위기와 공포 속에서 시달리고 있다.
이런 팍팍한 현실에서도 불법체류자 신분의 청소일을 하는 마야 역시 ‘빵’만을 원하지 않는다. 20세기 초반 미국 이주노동자들의 절절한 외침처럼 ‘빵과 장미’를 함께 원하는 건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라는 걸 놓치지 않는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팍팍할 것 같은 이 영화가 경쾌하고 따스한 것도 이 때문이다. 빵만 꾸역꾸역 삼킬 때의 목 메이는 현실을 장미의 향기와 아름다움, 그리고 날카로운 가시로 숨통 트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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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빵과 장미' | ||
주연 배우 샘 역을 맡은 배우 애드리언 브로디는 <빵과 장미>를 찍기 위해 직접 노동조합에 위장 가입했다. 그러다가 한 시위현장에서 그를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과 맞닥뜨리리는 해프닝도 겪었지만 “직접 뛰어드는 경험이 없이는 도저히 이 영화를 찍을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말하는 이 진솔한 배우는 LA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우리는 빵뿐 아니라 장미도 원한다’고 외치는 조직원이 되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 것이다.
<빵과 장미> 촬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LA의 청소부들과 호텔 노동자들은 거리시위에 나서 3년간 25%의 임금인상을 이끌어 냈다. 82년 시간당 임금 8.5달러였고 의료보험, 치과보험 모두 가입이 됐던 청소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99년에는 시간당 임금 5.75달러에 아무런 보험혜택도 없이 더 나빠졌던 상황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거둔 결실이었다. 영화에 출연했던 실제 청소노동자이자 노조 간부 마이론 파예스는 영화가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연예인, 변호사와 펀드매니저들이 입주해 있는 빌딩에서 파티가 열리던 날, 화려한 파티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동료 청소부가 마야에게 말한다. “우리가 유니폼을 입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야”라고. 영화 안에서 청소를 하는 사람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지나치는 사람들은 미국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7급 공무원>(2009년, 신태라 감독)에서 화장실에서 일보는 남자들 주위를 젊은 여성정보원이 얼씬거려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청소부로 위장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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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대 청소노동자들이 농성중인 본관 1층 로비에 전시된 청소노동자를 형상화한 작품. 이치열 기자 truth710@ | ||
청소 노동자들이 보이지 않는 체하는 것은 미국만이 아니다. 월급 75만원에 점심값 300원짜리 일자리조차 함부로 없애버리는 것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한국의 가장 오랜 사상, 홍익(弘益)의 정신을 재단 이름에 갖다 붙인 학교가 저지르는 행태다. 눈 똑바로 뜨고 보자. ‘빵과 장미’는 이 땅에서도 필요한 구호라는 것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