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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라디오의 한 시사프로에서 중산층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얘기하는 걸 들었다. 그러면서 예를 든 것이 '카르테 드비' 다. 프랑스의 퐁피두 전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다는 이른바 중산층이 가져야 할 '삶의 질 (카르테 드비)' 은 이렇다. 첫째,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둘째,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고. 셋째,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며, 넷째. 남들과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하고, 다섯째, '공분' 에 의연히 참여할 것 등이다. 폭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이해하기 위해 외국어 하나쯤은 제대로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정서적인 여유를 위해 악기 하나 정도는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건 사람들과 나누고 돕는 생활을 하되 그 행위가 지속적이고 규칙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뿐만 아니다. 영국이나 미국의 공립학교는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 하며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것을 중산층의 조건으로 정하고 가르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은 어떨까. 아직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에 대한 명확한 조건이 제시된 바는 없지만 우리식으로 중산층을 나누는 기준을 만들어 볼 수 있다면 4년제 대학을 나와 한 직장에 10년 정도 다니고 있고 가구당 월 평균 수입이 300만원은 넘어야 하고 30평이 넘는 아파트에 살면서 2000CC 이상의 중형차를 굴려야만 한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흔히 우리나라에서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이나 인식이 이 정도가 된다고 봐도 딱히 틀린 말도 아닌 듯싶다.

단번에 봐도 프랑스와 우리의 중산층은 차이가 있다. 프랑스가 중산층의 조건을 정신적인 것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에 우선을 둔 반면에 우리나라는 좀 더 물질적인 것에 가치를 두고 있다. 실제 정부나 민간 연구소의 관련 조사 통계도 소득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일례로 올해 한 교수가 발표한 중산층의 조건은 '도시근로자 가구 소득의 90% 이상, 자가 20평, 전, 월세 30평 이상의 집을 갖고 있는 전문대졸 이상' 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가 중산층을 가르는 기준은 재산이 얼마나 많고 적으냐의 차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물질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성장이라는 목표하에 급격하게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돈만 많이 벌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진 것은 그만큼 우리가 얼마나 가난에 시달려 왔는가를 절실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잘 살아 보겠다는 열망은 도를 넘어 집착에 이른 듯 보인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높은 교육률은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한 도구로만 쓰일 뿐이고 돈이면 다라는 인식 앞에 온갖 부정과 불법은 탁월한 처세와 능력이 된다. 뻔히 보이는 편법을 마다하는 사람은 무능력하거나 바보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혼자만 잘 살면 그만이다.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차별한다는 신문 기사에 씁쓸해하면서도 특정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것도, 당장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집값이 떨어지면 못 참는 것도 현실이다.

흔히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해지면 정신적으로 여유를 찾게 된다지만 대체 먹고 살 만 하다는 것이 어느 선에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행여 물질적인 풍요를 이루고 난다해도 그 후의 공허함은 어디서 위안을 찾아야 할 것인가. 신문과 방송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렇게 따라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하면서도 그 이상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려 하지 않는다. 모두 부자가 되고 싶어하지만 따르는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즐길 줄 모르고 나눌 줄 모르는 분위기는 더욱 세상을 팍팍하게 만든다. 정신적으로 편안함을 찾고 무언가를 나누고 즐기는 것은 습관이다. 그런 여유는 하루아침에 몸에 베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배와 머리에 기름이 낀 돼지는 또 다른 먹을거리를 찾아 나서거나 뒤에서 못된 짓만 할 뿐이다. 

언제까지 먹고 사는 타령만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회의 여러 가능성을 먹고 사는 것이란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희생하기를 강요하는 것도 답답한 일이다. 당장 혼자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니 분배보다는 성장이 우선시 되어야 하고 국방비 지출이 겨우 세계 8위인 주제에 전시 작전 통제권 환수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부동산 투기를 사회악으로 생각하면서도 여건만 되면 같은 방법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사람이 많은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친일 반역자를 비롯한 개발 독재와 군사 독재의 잔당들이 아직도 떵떵거리고 활개를 치는 것도 그 잘난 먹고 사는 것의 환상 덕택이다.

정신과 물질의 풍요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은가를 판단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지도 모른다. 또, 프랑스를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이 우리 보다 훨씬 빨리 물질의 풍요를 이룬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지나치게 물질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중산층은 자기기만에 가깝다. 미국식의 자본주의가 그 많은 폐단을 안고 있음에도 그나마 최소한의 건강성이라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다. 불황으로 인해 점점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고 하지만 애초부터 우리에게는 중산층 같은 건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