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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믿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참 어려운 일입니다만 저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절대적 대상을 무조건적으로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종교적 믿음이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과학적 견지에서 종교적 믿음은 극복해야할 대상이지만, 결코 극복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과학에서 시작할까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과학의 눈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모든 사실들은 이성적 사고에 의해 종교적 믿음을 걷어나가며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합니다. 이런 생각은 과학을 넘어 세상 곧곧의 학문 영역에 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a.k.a '과학혁명'의 놀라운 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과학적 원리에 대한 비판을 겸한 두 가지 과학적 혹은 철학적 원리는 우리가 세상을 제대로 인지할 수 조차 없다고 말합니다. 먼저 하이델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입니다. 복잡한 건 조금 제쳐두고 간단하게 이 말을 설명하면 움직이는 물체의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할수록 운동량은 더 불확실해지고, 반대로 운동량이 정확하게 측정할수록 위치는 불확실해지는 겁니다.

결국 물리학자들은 어떤 운동을 계산할 때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는 등의 이상적 상황을 가정합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그것이 옳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 다면 궁극적인 레벨에 가서는 그 누구도 'Yes'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과학에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없는 사실에 대한 미세한 종교적 믿음이 들어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이제 수학으로 넘어가 봅시다. 1902년 힐베르트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공리적 기초를 확립하고, 이러한 공리적 기초를 확장시킨다면 수학과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의 전 분야에 대한 확고한 공리적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수학의 전체 영역을 일련의 약속을 통해 엄밀하고 통일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지요. 그런데 쿠르트 괴델은 힐베르트의 작업을 돕는 연구를 하다 충격적 발견을 합니다. 아무리 정교한 수학 체계라도 무모순적일 수 없다는 '불완전성의 정리'를 세운 것입니다. 아무리 완벽한 수학체계라고 할지라도 그 체계 내의 공리만으로는 논증할 수도 없고 반박할 수도 없는 명제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글에 맞게 조금 내용을 바꾼다면 수학이라고 할지라도, 서로 믿어야만 하는 명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논쟁이 이 두 원리 위를 휘감고 있지만, 비유적 차원에서 위 두 원리가 말하는 시사점은 명백합니다. 인간의 인식은 어느 정도 불확실 면이 있으며, 인간이 세운 원리는 어느 정도 불완전한 면이 있다는 겁니다. 결국 이런 불확실한 면과 불완전한 면을 채우는 것은 '믿음'입니다. 과학에서는 '가정'이라고 말하며, 수학에서는 '공리'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소개할 것이 있습니다. 세이핀과 세퍼는 30여년 전 '리바이어던과 에어펌프'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토마스 홉스와 로버트 보일 사이에 있던 '과학'적 논쟁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지금에서야 로버트 보일이 주장한 공기의 압력과 부피에 관한 이론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 당시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보일은 자신의 이론을 설득하기 위해 유명한 인사를 실험에 참관하게 끔 했습니다. 많은 청중이 들어와 보일의 실험을 지켜봤고, 보일의 실험은 주관적 사실에서 객관적 사실로 바뀌었습니다. 다시 말해 권위있고 신뢰할만한 평가자의 검증을 통과해 과학적, 객관적 사실로 변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까지도 피어 리뷰와 전문가 심사 제도 등으로 과학계에 남아 있습니다.

홉스는 보일의 실험을 꼼꼼하게 살펴보며 과학적으로 논박하기도 했습니다만, 사실이 합의되는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전문가와 동료 심사에 의해 주관적 사실이 객관화되는 보일의 방식이 그때까지의 절대권력을 통해서만 인정받을 수 있던 사실의 객관화 방식을 뒤엎을 수 있다는 우려때문이었습니다. 실험적 사실에 대한 합의는 홉스가 보기엔 아주 취약하고, 언제나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기반 위에 서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홉스-보일 논쟁이 아니니 불충분한 설명은 이쯤하고, 정리해보겠습니다. 다시 말해 현대의 과학적 사실들은 불편부당한 절대적 원리를 바탕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홉스의 우려대로 과학자들의 합의를 통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합의는 아주 오래됐고, 수많은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에 상당히 높은 수준의 객관성을 보입니다. 그러나 결코 이렇게 도출된 과학적 사실과 이론이 완벽하다는 것을 말해주진 않습니다. 결국 사람이 한 것이니까요.

과학에서도 어느 정도 종교적 믿음이라는 것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대상이 절대적 '신'이 아닐 뿐입니다. 그 믿음의 대상이 전문가가 될 수 도 있으며, 동료가 될 수도 있으며, 혹은 자신의 이론에 대한 강한 신념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종교적 믿음을 가진 것에 대한 부당한 한 마디 글을 봤습니다. 과학뿐만 아니라 정치적 영역에서도 일정 정도 종교적 믿음은 필요합니다. 위에서 주욱 썼듣이 사람은 주변의 것을 제대로 인식할 수가 없으며, 그런 인식의 기초조차 합의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인간의 한계에 관한 이야기며, 우리에게 주어진 정치적 조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치적 문제에 있어 먼저 고려해야할 것은 정치행위의 주체와 대상이 모두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불확실하게 인식하며 불완전하게 행동하는 인간의 정치를 이야기할 때 인간이 아닌 대상을 이상적으로 가정해 생각해선 안될 것입니다. 자신조차 벗어날 수 없는 그런 틀을 말입니다.

딱 위에서 끝내면 깔끔하겠지만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인간세상 더럽고, 추잡하고, 비이성적인 것이 주어진 정치적 환경의 한 면일 뿐입니다. 이런 거 생각 안하고 정치평론할 생각이라면 그거야 말로 세속과 분리된 종교적 마인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