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항상 이 맘때면 좋은 영화가 집중되느라 자칫 게으름을 피우면 스크린에서 못보는 영화가 많습니다.
외화들 위주로 따라가다보니 한국영화들을 미루어뒀네요.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변영주 감독의 <화차>를 봤습니다.
원작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만약 여러분이 원작을 보지 않았거나 볼 생각이 없으면, 지난 번에 소개해드린 일본 TV판 <화차>를 한번 보고 보셔도 좋습니다. 일본판은 원작에 아주 충실하니깐 어떻게 어떤식으로 변형되었는지 비교해서 보면 재미가 솔솔할 겁니다.

일본 TV판은 1990년대 버블 경제 붕괴이후의 실상을 군데 군데 보여줍니다. 원작에도 나오는 '야구 경기장 안의 집'이 상징하는 바는 굉장히 큰 것이었습니다. 경제 악화로 프로야구구단이 팔리고 그 경기장이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자 야구장이 모델 하우스 전시장으로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비롯해서 일본판에는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사회공간을 슬쩍 슬쩍 보여줍니다. 원작이 말하고자 하는 사회비판적 성격을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지요.

하지만 변영주 감독의 <화차>는 상대적으로 그런 것이 적습니다. 영화는 필요 이상으로 고급스럽게 만들어져있습니다. 주인공도 원작과 달리 두 명을 설정했고 여자 주인공의 역할을 원작과 달리 구체화시킵니다. 한마디로 사회비판보다는 배우들의 캐릭터에 집중시키고 있죠.

결과는? 각자 판단하실 문제이지만 일본판은 사회 구조의 모순을 강하게 부각시킨다면, 한국판은 여주인공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감성적인 측면이 더 강합니다.
변영주 감독은 아주 오래 전에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다큐를 만든 감독입니다.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다룬 대단히 중요한 다큐지요. 이제 변영주 감독은 극영화, 그것도 웰메이드화되고 유명배우들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영화를 만듭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도 왠지 그녀가 젊은 시절에 품고 있었던 생각들이 가늘게나마 약간씩 비칩니다. 일본 버블경제 붕괴 이후의 여성의 삶, IMF붕괴 이후 한국 여성의 삶.. 어쩌면 그녀는 극영화로 만든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을 찍은 건지도 모릅니다.


-------

전계수 감독의 <러브 픽션>은 대단히 독창적인 영화입니다. <삼거리 극장>때부터 심상치 않은 감각을 보여주었던 감독이기에 내심 기대를 했는데 기대 이상의 작품이었습니다.

어떤 식의 영화라고 할까요? 우디 앨런이 충무로에서 영화를 찍은 것같은 느낌입니다. 쉴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대사는 지적이고 유머러스합니다. 그냥 대놓고 깔깔대는 식이 아니라 피식 피식하면서 계속 웃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M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등장시켜 주인공 하정우와 대화하는 방식도 우디 앨런의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을 닮았지요. 스토리는 평범합니다. 그냥 그렇고 그런 연애담이예요. 하지만 스토리보다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것은 영화의 형식입니다. 하지만 전계수 감독의 이런 방식이 모두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저는 배를 잡고 신나게 깔깔대고 웃으면서 봤는데 영화관에 불이 켜지고 나니 저 혼자더군요..
아직 장담은 못하겠지만 연말에 2012년 한국영화 BEST를 꼽으면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 수 있을 것 같은 영화입니다.

단, 혼자서 보세요. 유머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하고 갔다가 그 사람 눈치 보느라 영화에 집중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