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이해하기 쉽게 정치를 축구에 비유를 해 보자.

두 팀이 경기를 하는데, 한 팀은 소위 '보수'팀이고(물론 보수가 아닌 수구세력이다), 다른 한 팀은 '진보'팀(보수가 수구다 보니 사실 진보는 진짜보수+진보의 연합팀이라 봐야 한다)이다.

----여기서 잠깐, 팀명 자체가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하게 이야기하기로 하고, 어쨌거나 두 팀을 '보수'와 '진보'라고 일단 인정하자.----

이 두 팀이 경기를 하는데 이상하게도 '심판'은 늘 보수에게는 관대한 룰을 적용하고, 진보에게는 엄격한 룰을 적용한다. 그러다 보니 보수는 마구 테클을 해도 기껏해야 주의 정도를 받는데, 진보는 살짝만 몸싸움을 해도 옐로우 카드를 받거나, 심지어는 퇴장 조치를 당한다.

당연히 이 게임에서 진보가 이길 확률은 매우 낮아진다. 아주 가끔 진보측 선수 중에 메시같은 인물이 포함되어 있을 때에만 아주 간신히 승리를 할 뿐이다. 하지만 메시 같은 선수는 그야말로 100년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가 아니던가? 더구나 보수팀은 진보의 메시를 향해 10명이 모두 스파이크 바닥을 드러내며 살인적인 테클을 날려댄다. 설사 진보가 경기에서 이겼더라도 메시는 다시는 선수 생활을 못할 만큼 만신창이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다. 한 두 번이야 '메시'를 보는 맛에 사람들이 이런 엉터리 경기를 봐줄지 몰라도 나머지 경기에서는 '축구란 건 더러운 것'이라며 고개를 돌려 버린다. 경기장에도 오지 않고 TV에서 중계를 해도 채널을 돌려 버린다. 일종의 '축구 불신 주의'가 만연해 지게 되고, 그럴 수록 심판은 더욱 부담없이(?) 마구 편파 판정을 날린다.

이미 다들 눈치 챘겠지만 이러한 상황이 바로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도덕성을 비대칭적으로 적용하다 보니, 진보는 만날 보수에게 지거나 아주 우연히, 그리고 간신히 이길 수 밖에 없다. 또한 정치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이 만연해 진다.

당연히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면 그러한 '심판'을 내쫓고 공정한 룰을 적용할 심판에게 경기를 맡겨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대단히 큰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여론 정치'로 이루어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1차적으로 '언론'이 심판의 역할을 하는데, 다들 잘 아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언론중에 가장 힘이 센 심판이 다름 아닌 조중동이다. 불공정한 판정에 대해 아무리 항의해도 전혀 게의치 않는다. 오히려 '진보라면 보수보다 더 페어플레이를 해야지!'라고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억지를 부린다.

아니 어디 정치만 그럴까? 노사 관계에서도 사측에 비해 노조측은 훨씬 더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 받는다. 사측은 좀 더러워도 "뭐 원래 걔네들이 그렇지..."라며 대충 넘어가는 반면, 노조측에서 잘못을 하면 "아니! 어떻게 선명해야 할 노조가 그러한 잘못을!!!"이라며 난리가 난다.

허나 사측에게 노측보다 도덕성에서 더 관대해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아무런 논리적 근거도, 심지어는 인지상정류의 상황논리조차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말도 안되는 비대칭적 적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크게 반발하지 않는 것일까? 왜 진보 진영은 여기에 대해 항의하기는 커녕 오히려 스스로 더 잘 지키려고 애를 쓰는 것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심판'에 아무리 항의를 해봤자 결코 그 심판이 공정한 룰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자포자기를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말해도 안 듣고, 그렇다고 힘으로 이길 수도 없는 상대. 그러한 상대 앞에서 할 수 있는 현실적 선택이 바로 '포기'다. 만약 그 심판이 어느 정도라도 말을 들어먹는다면 도덕성의 비대칭적 적용에 대해 아마 많은 이들이 항의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수구언론은 말을 듣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편파 판정을 해버린다. '초인'이 아니라면 이 상황에서 포기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한다. 포기하고 나니 정말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그냥 계속 편파판정 받으면서 경기를 하면 계속 질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메시'와 같은 예외 케이스를 만들자니 힘에 붙인다. 즉 출구가 전혀 없는 막다른 길에 갇혀 버린 셈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어차피 '이길 수 없는' 게임에서 그나마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맞다. 어차피 '실리'를 얻을 수 없다면 최소한 '명분'이라도 얻어야 한다는 게 인지상정이다. 어차피 '도덕성'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비대칭적으로 적용을 받는다면, 차라리 '도덕성'이라고 하는 가치라도 진보가 소유를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게 된다. 더구나 늘 편파판정을 하는 심판이라는 것은 모든 국민이 아는 사실 아닌가? 진보는 그러한 편파판정마저도 감내했다!...라고 말함으로써 '정정당당한 페이플레이어'로서 명분을 얻는 게 그나마 얻을 수 있는 최선이 된다.

허나 이는 '패배를 전제로 한' 최선이다. 또한 '잘못된 심판을 인정하는' 최선이다. '정치 불신을 방조하는' 최선이기도 하다. 수구세력은 늘 이기고, 수구언론은 늘 심판노릇을 하고, 사람들은 늘 정치에 대해 불신하는 걸 본질적으로 '방기'하는 최선이라는 말이다.

우리사회의 많은 부조리, 그러니까 정치 영역 이외에도 존재하는 수많은 부조리는 바로 이와 유사한 시스템으로서 존재한다. 힘을 가진쪽과 힘이 없는 쪽에 다른 도덕적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힘이 없는 쪽에게 아주 작은 명분 하나를 선물해 주고, 나머지 현실적 실리는 모조리 힘 있는 쪽이 가져간다. 그러면 힘이 없는 쪽은 오로지 그 '명분'하나 붙잡고 아둥바둥하다가 스러져 간다.

그러다가 운 좋게 '메시'가 등장을 하면, 그 사람에게 모든 희망을 다 투사하고 열광하고 기대한다. 허나 그 메시는 이러한 불공정한 판에서는 상대방으로부터 무지막지한 살인테클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메시는 그라운드에서 다리가 부러져 쓰러지고, 사람들은 다시 좌절한다.

이는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내용과 유사하다. '시스템'은 끊임없이 새로운 '네오'(영웅)를 만들어 내어 시스템에 '도전'하도록 둔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네오에 모든 것을 건다. 하지만 결국 네오는 시스템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에 시스템과 타협하고 장렬히 전사한다. 그럼으로써 시스템은 그렇게 '안정적'으로 유지 된다. 혹시 다시 사람들의 불만이 과해지면 그 때 또 다른 네오를 잠시 허락했다가 다시 희생시키면 되는 것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조중동의 영향력이 '급감'했다는 점이다. 즉 편파판정을 일삼는 '주심'의 힘이 약해지고, 대신 부심이나 선심 같은(그나마 기계적 공정성이라도 적용하는 언론들)이들의 판정이 적용되면서 이러한 시스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아가 경기가 여전히 엉터리고 재미가 없긴 하지만 이러한 엉터리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입담으로 재밌게 중계하는 중계팀이 등장하여 어찌됐든 경기장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는 과거와 같이 단 한명의 영웅을 기다리는 상황, 단 한 번만의 예외적 승리를 바라는 상황과 달리, 정치라고 하는 시스템의 본질적 잘못에 대해 사람들이 인지하고, 성찰하고, 바꿔낼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가 찾아 온 것임을 의미한다. 비로소 '축구'(정치)다운 축구가 시작될 수 있는 아주 기초적인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허나 이것은 자동적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단순히 이번 경기의 승리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시각을 단지 누가 골을 넣느냐가 아니라, 경기 전체에 올바른 룰이 적용되고 있는가로 넓혀서 봐야만 가능하다. 편파 판정 일삼는 심판의 위력은 예전같지 않으니 어차피 요구해봤자 소용없다라고 생각할 필요는 '현실적'으로 전혀 없다.

물론 이러한 것은 많은 이들이 축구(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금방 효과가 드러나진 않는다. 허나 이는 바꿔 말해 많은 이들의 시각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바꾸어지면 그것을 다시 현재와 같은 왜곡된 상황으로 돌리기도 대단히 어렵다. 즉 바로 잡고자 하는 쪽이든, 왜곡하고자 하는 쪽이든 어차피 힘들기는 마찬가지란 말이다. 그러니 어느쪽이든 좀 더 '애쓰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서는 분명 바로 잡고자 하는 쪽이 매우 좋은 기회를 잡고 있다.

이번 총선과 대선에서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것보다 제대로 된 룰이 적용되는, 도덕성이 비대칭적이지 않고 대칭적으로 적용되는 정치 현실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총선의 승리를 통해 바로잡고자 하는 많은 것들 역시 사실은 여타 가치들의 '비대칭적 적용'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 것에 다름 아니기도 하다. 그것이 양극화라고 불리든,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든...도덕성의 비대칭적 적용과 유사한 '잘못된 룰의 적용'이라는 공통적 꼼수(?)에 기인한다는 말이다.

허나 전장에서 정신없이 싸우는 정치인들이 이러한 관념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해서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언론인이나 지식인들의 몫이라고 본다. 허접한 글임에도 굳이 내가 이렇게 길게 주절거린 이유다. 내 일이라고 보니까...

뱀발.

내가 원하는 세상은 '보수'(라고 칭하나 실제로 수구인)가 독재하는 세상도 '진보'가 독재하는 세상도 아니다. 보수와 진보가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세상이다. 그게 바로 '상식적인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식적인 세상에서, 공정한 룰로 치열하게 진보와 경쟁하는 '진짜 보수'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그래야 진보도 보수의 몫까지 떠앉지 않고 자유롭게 '진보'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