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우산
- 작성일
- 12-04-03 00:57
1. 대학생 때.
잠실에서 수원가는 막차를 기다리고 있던 중
다른 버스를 기다리는 처자와 기억이 안 나는 과정을 통해 한 내 우산을 같이 쓰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생각난 가방 속 또 다른 우산.
쓰던 우산을 그 처자에게 주고 난 가방에서 다른 우산을 꺼내 썼다.
괜히 뻘쭘해서 몇 발자국 떨어져서 서있다가 내 버스가 오자
그 처자에게 말도 못 하고 우르르 그 버스 인파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2. 지금은 사라진 씨네코아에서 영화를 보다가.
이터널 선샤인을 보다가 나오는 도넛 먹는 씬을 보고 영화 끝나고 바로 옆에 있던 던킨에 들어갔다.
아.. 들어가기 전에 담배 한대를 피우고 있었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것임.
내가 우산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본 던킨의 처자 알바는 지금 비오냐면서 걱정함.
쿨 하게 건네줌. 처자 알바는 도넛 몇 개 더 넣으며 무슨 요일 알바 하니까 그 때 찾으러 오라고 함.
나도 그때밖에 시간이 안 된다고 하고 그때 온다고 했음(요건 진짜루 나도 그때 밖에 시간이 안났었음!!)
도넛 받고 쿨 하게 나감. 이때까지는 좋았었음.
시간이 지나고 그 요일이 옴.
그 처자 알바가 없는 거임.
다른 알바에게 지난번에... 어쩌구 저쩌구.
그 알바가 안에 들어가더니 우산 가지고 나옴.
도넛 봉지랑 우산 들고 나왔음.
3. 아마도 대학생 때.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 계속 눈에 띄는 처자가 있었다.
우연히도 같은 곳에서 내림.
그 처자 먼저 내리고는 정거장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고
바로 뒤에 따라내렸는데
그 처자가 나한테 집 근처까지만 씌워달라고 했다.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ok 함.
역시 울집 방향으로 가다가 그 전 전 골목에서 우회전했고
몇 걸음 안 가서 그 처자는 갑자기 다왔다며 뛰쳐나감.
한참을 뛰어감.
멍하니 보다가 그냥 집에 들어왔음.
4. 대학 결정이 나고.
(이건 여기서 한 번 했던 얘기)
비 핑계로 학원에 안 가고 있다가 엄마한테 혼남.
본래는 오전 수업이었는데
같은 강의의 오후 수업에 억지로 쫓겨서 나감.
버스 정거장에 서있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크고 검은 우산에 반쯤 가린 한 처자의 뒷모습을 보게 됨.
식별 불가.
하지만 갑자기 심장이 멎을 것 같았음
확인해보기 위해 멀찍이 돌아서 그 처자 얼굴을 확인.
중학교때 잠깐 만났다 헤어지고 고등학교 내내 그리워했던 그친구.
심장이 기억한다는 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느꼈던 비오는 날 반쯤 가린 우산 속 그 친구의 뒷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