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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의 주제곡들은 어쩌면 일본의 대중음악들 가운데 가장 먼저 세계 시장에서 나름의 마니아를 형성한 (장르 아닌) 장르가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미국과도 당당히 겨룰 수 있을 정도의 세계적 파급력을 가진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고, 실제로 미국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을 수입해 방영할 때에 원판의 주제곡을 영어 버전으로 커버해 원곡의 멜로디를 그대로 들려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현재 40대에게는 어린 시절 ‘마징가Z’나 ‘달려라 번개호(원제 ‘마하고고고’) 등의 애니메이션을 AFKN을 통해 영어 더빙판으로 보았을 때 이런 버전을 들어본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넓게 그 멜로디가 세계에 퍼지는 점을 활용하여, 일본의 뮤지션들은 장르별로 다양하게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를 위한 ‘애니 송 커버 앨범’들을 자국과 세계 시장에 꾸준히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록 팬들의 구미를 자극하는 것은 아무래도 헤비메탈과 애니 송의 결합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활동했던 애니메탈(Animetal)이라는 팀이었다. 라우드니스(Loudness)와 함께 1980년대 일본 메탈 씬을 이끌었고 세계 시장에서도 성공을 거뒀던 앤섬(Anthem)의 사카모토 에이지우(Sakamoto Eizō)가 이끌었던 이 팀은 7장의 [Animetal Marathon] 시리즈를 내놓으며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곡들을 화려한 스피드-팝 메탈 사운드로 재해석하여 메탈 팬들과 애니메이션 팬들의 컬트적 지지를 받았었다.

에이지우는 이 밴드 이후 현재 국내에도 자주 와 공연을 펼치는 잼 프로젝트(Jam Project)로 그 역사를 잇고 있는데, 놀랍게도 ‘애니메탈’이라는 이름과 그 정신(!)을 계승한 새로운 애니메탈 프로젝트가 서구 헤비메탈 뮤지션들의 의기투합으로 탄생했다. 이름하여 ‘애니메탈USA(Animetal USA)’.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프로젝트 밴드의 멤버들이 국내 메탈 팬들까지 설레게 만들 ‘초호화 라인업’이라는 점이다. 라우드니스, 잉베이 맘스틴과 함께 했었던 관록의 보컬리스트 마이크 베세라(Mike Vecera),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록 기타 연주곡 중 하나가 된 ‘Somewhere Over The Rainbow’의 주인공이자 자신의 밴드를 20년 넘께 이끄는 크리스 임펠리테리(Chris Impelliteri), 콰이어트 라이엇, 오지 오스본, 화이트 스네이크 등을 거쳤던 베이시스트 루디 사르조(Rudy Sarzo), 그리고 레이서 X를 거쳐 현재 주다스 프리스트의 드러머로 역작 [Painkiller]의 탄생에 혁혁한 공을 세운 스콧 트래비스(Scott Travis). 모두 이름만 들어도 그 음악적 퀄리티까지 믿음을 주는 인물들 아닌가. 게다가 편곡에 메탈 씬 최고의 ‘일본통’이자 근래에는 아예 일본에 기거하고 있는 메가데스 출신 기타리스트 마티 프리드먼(Marty Friedman)까지 도움을 주고 있으니, 메탈 팬들에겐 일단 듣고 싶은 충분한 동기를 부여한다.

사실 지난 20년간 한 두 번씩은 어딘가의 세션이나 프로젝트에서 호흡을 맞춰보았을 멤버들이기에, 네 멤버의 탄탄한 연주력은 이 곡들이 원래 애니메이션 주제곡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가사를 굳이 해석하려 애쓰지 않는다면 완벽한 한 편의 호쾌한 유럽식 (스피드) 메탈의 시원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의 기타 오버더빙으로 완성한 멋진 인트로 연주로 시작해 스콧의 투베이스 드럼의 폭풍우 위에 펼쳐지는 ‘우주전함 야마토(宇宙戰艦ヤマト, 국내에선 ‘우주전함 V호’라는 제목으로 불렸음)’의 주제곡, 마이크의 호쾌한 샤우팅과 크리스의 절과 절을 잇는 기타 속주가 압권인 ‘마징가Z-그레이트 마징가’의 주제곡 메들리인 ‘マジンガ-メドレ-(마징가 메들리)’, ‘헤비한 리프와 드럼의 궁합이 일렉트릭 훵크에 가깝던 원곡을 완벽한 스피드 메탈로 변신시킨 ‘드래곤볼’의 주제곡 ‘魔訶不思議アドベンチャ-!(불가사의한 어드벤쳐)’, 발랄한 퓨전 타입 원곡이 1980년대 메탈로 해석된 ‘쾌걸 근육맨’의 주제곡 ‘キン肉マン Go Fight!(근육맨, 싸우러가라)’, 원곡의 컨트리 웨스턴 분위기를 비장한 보컬과 애절한 기타 솔로의 메탈 발라드로 바꾸고 이에 휘몰아치는 엔딩 연주를 더한 ‘行けタイガーマスク(가라, 타이거마스크)’까지 앨범 속 10곡은 절대 가벼움 없는 메탈의 정석을 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