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그 가치를 역설하는 사람들이 그 가치를 역설할만한 존재라는 느낌을 줘야 합니다. 실상 그러한 가치를 역설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실질적인 변화보다 자신의 선명성, 내지 자신이 얼마나 의식이 있는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은 욕망에 더 휘둘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떠한 소재를 통해서 자신이 더 우위에 서고 싶다는 욕망을 더 지켜본다고 해야 될까요. 예컨데 과거사를 청산해서 박근혜를 대권주자 자리에서 아웃시키자! 이런식으로는 성취가 안 됩니다.

그런 개혁 페티시를 활용한 그리고 386을 동원한 진정성 마케팅은 그래서 화려하게 실패했다는 겁니다. 따지고 보면 미국에서 리버럴이 욕이 된 것은 단순히 공화당이 정치 공작의 승리는 아닙니다. 이런 식의 마케팅이 실패한 겁니다.

이런 종류에 있어 최악은 정작 자신도 운동권이 아니고 486도 아니면서 20대를 향해서 개새x론을 들고 왔던 사람들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정파에 20대가 투표하지 않는 걸 너무나도 거창하게 욕을 해버렸고 그래서 비웃음을 산거죠.

이른바 깨어있는 시민분들이 매번 그 분들이 원하는 정치적 목표에 최종적으로 실패하는 것도 그 분들이 앞으로는 대단한 가치나 이념을 말하는 듯 해도 실상은 매우 팬덤에 가까운 혹은 악세사리를 다루는 것에 가까운 태도를 유지하기 때문일 겁니다. 현안에 있어서 팬덤의 정점에 선 주인공을 위해 현란한 말바꾸기를 하는게 그 분들이 얼마나 지적인지를 홍보하는데는 유효할지 몰라도 그 분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데는 전혀 기여하지 않습니다.

전 그 실용이란 단어가 설득력을 얻는 것도, 그 시대의 다수에 의해 안전하게 부합한 성격을 가질 때 발생한다고 봐요.
실용이처럼 안전한 단어가 요사이 있을까요? 그렇지만, 그 실용 이란 헤게모니하에 다른 가치들은 반대로 비실용적으로 비춰지는데, 문제는 반대의 포지션을 취한 소수가 결국 지나치게 탄압 받고, 안전하게 혹은 편하게 실용을 택한 그 중도적 다수는 실제적으로 가치 판단을 할 기회가 박탈 되는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정치 스탠스가 중도적 실용주의인 (심지어 합리적 보수인) 사람들을 7-80년대로 옮겨다 놓는다면 바로 길거리로 뛰쳐나가 돌맹이를 던질거라는 데에 500원 거는데, 바로 그런 매우 '기본적인' 가치마저도 지켜지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일 겁니다. 중도주의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가치'의 내용에 전혀 무심한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언급드렸다싶이, 이런 사람들은 A라는 가치와 B라는 가치 중 한 쪽에 무게중심을 두는 타입이 아니거든요. A이든 B이든 일단 들여보는 타입이긴 하나, 위에 랑잠님이 댓글로 달아주셨듯 특정 가치를 지향하는 주체에 대한 정보, 방법론 등에 더 주목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용을 택한 중도적 다수가 실제적으로 가치 판단을 할 기회가 박탈되는게 문제라는 임호의 말씀에는 그다지 동의 하기 힘드네요. 어떤 가치에 대한 내용을 접한 후, 선택을 하는 것이야 당사자의 취향문제이지 스스로 가치 판단의 기회를 닫아버리는 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저 역시, 진보적인 성향보다 중도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 이해가 가죠. 촛불 집회때 가장 머리가 멍해졌던 것은 미국산 소고기의 광우병 위험도 아니었고, 수입절차에서 보여졌던 미국의 불공정한 시장 침략이나, 병신스러웠던 한국 관료들의 일처리도 아니었져, 초창기 한 줌 정도 밖에 안되었던 수입에 반대하던 사람들 (잘못된 정보에 선동이 되었던, 혹은 신념에 의해 그자리에 나왔던 사람들이던)을 경찰들이 무자비하게 둘러 싸, 폭력을 가하는 장면을 아프리카 방송에서 보고 이런 일이 벌어지고야 마는 21세기에 사는구나라는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현상에서 길거리로 뛰쳐나가 돌맹이를 던질거라는데는 저도 역시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것 뿐인듯 합니다. 그게 아마 합리적 보수의 한계가 아닐까 싶어요. 무엇을 책임지고 그 어디선가 훼손되어지는 가치를 향해 격한 말로 투쟁할 수 있는가? 그런 동력 정도는 없져.

그리고, 실제적 가치판단을 기회가 박탈된다라고 말씀드렸던것도 그런 맥락인듯 합니다. 리버럴해진 사회분위기는 분명한 현상인데 그 리버럴이 무엇인지 가치판단을 할 실체에 가까운 정보를 얻는 것도 대단한 노동이라고 보거든요. 합리적 보수층이 전 그닥 진보적으로 로망만 앞서서 설쳐대는 트위터리안들과 별 차이가 없다고 느껴졌어요.

중도적 성향이라는 것이 정치 이념지도에서 보수적 가치와 진보적 가치의 중간에 위치한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 사람들의 태도나 관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what 보다는 how를 더 중시하는거죠. (했던 말 계속해서 지송요 ㅎ) 이러한 그들의 자세가 그들의 이념성향을 보수와 진보의 중간에 위치하게 만드는 것이지, 그들 스스로 고유한 철학이나 가치가 있어서 중간지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가치의 생산자라기 보다는 소비자에 가깝습니다.

이념적으로 중간지대에 위치한 스탠스인 사람이긴 한데 어떤 사람은 대체로 보수적 정책을 선호하다가도 생뚱맞게 대단히 급진적인 정책에 찬성을 던지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리버럴한 가치에 공감을 많이 하는 중도주의자는 그 가치의 실현 방법론에 골몰하지, 내용 자체를 다루는 데에는 소홀한 면이 있죠. 리버럴한 가치를 말하는 주체가 신통찮아 보이거나, 전술이 시원찮으면 그 문제를 가지고 서로 까대고 옥신각신하는거죠.

대부분 그렇져, 제가 느끼는 그 모순이 딱 그거네요 어떤 이슈는 굉장히 민감하고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고, 그 전술 자체가 촌스럽다 싶어도 못 마땅해하고,ㅋ 내 얘기군아~! 요는 비생산적인건 마찬가지인데, 진보를 비현실적다라고 까댈 이유도 없단 거죠.

중도진보적 입장에 선 사람이라면, 진보의 내용이 비현실적이다고 까댄다기 보다는 그걸 실현하는 방법에 불만을 가져서 까대는 거라고 생각할수도 있죠. 내가 원하는 어떤 진보적 가치가 허술하고 비현실적인 전술때문에 실현되지 못하는 불만 뭐 그런거라고 봐요. 물론 대부분의 진보적 가치에 찬성하는 사람은 이미 중도주의자가 아닌 진보주의자라고 봐야할 것이고요. (사실 진보주의철학의 내용을 모두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만은;;)

보수와 진보사이의 대체적인 (도덕적)경향성에 있어서,

http://www.ted.com/talks/lang/ko/jonathan_haidt_on_the_moral_mind.html

이 동영상이 재밌게 설명해주더군요.

아.그 탄압은 진정한 지옥 같은 현실이져. 현실. 소수의 현실이라 현실처럼 보이지 않는가를 물어보고 싶네요.

씽씽님 말씀에 많이 공감하게 됩니다. 실용을 이야기하는 많은 분들 중 사실 그런 가치나 원칙 같은 것은 방법론, 전술론의 문제를 떠나서 애초에 그리 중요한 문제로 여기지 않는 분들이 많은 게 사실 아닌가요. 거기까지는 반대하지 않아요. 사람마다 정치적 우선순위나 지향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소수의 입장을 이야기한다고 하여 비현실적이라거나 이념적이라고 재단하면 좀 억울하죠.

그냥 간편하게

서로가 다른 알고리즘에서 판단하여 결론을 내리는데, 그 차이점을 인정하고

이상주의자다 v. 합리를 가장한 보수주의자다.. 서로 비난을 하거나 본인들의 가치판단을 주입시키려 하지 않으면 됩니다.

맞습니다. 사실 저는 그래서 바로 이 점 때문에 야권연대에 부정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