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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와 중국정치

작성일
12-05-30 18:13
글쓴이
퍼스나콘 [탱&서]Xenop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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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랍희횽님의 글을 보니 보시라이(博熙來)가 다시금 이야기가 되는듯 하네요 
그래서 댓글에서 쓰기엔 너무 길고 복잡한듯 해서 이렇게 글로 정리를....
먼저 길게쓰는 것을 좀 줄이고자 원자바오에 관한건 예전에 썼던걸로 링크를 대체해야겠네요 


http://www.baseballpark.co.kr/bbs/board.php?bo_table=bullpen2&wr_id=585434&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BF%F8%C0%DA%B9%D9%BF%C0&sop=and&spt=-56664&page=1


천안문 사태로 인해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에 관한 글이지만 
당시 판공청 주임으로 그의 개혁노선을 지지했던 원자바오(溫家寶)에 관해 살짝 써놓아서 이번 글에 도움이 될듯해 링크를 걸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중도파로서 집권을 한 장쩌민(江澤民)과 유일하게 남아있던 강경개혁파였던 원자바오는 표면적으로 보이는것과 달리 
굉장한 라이벌 관계였습니다. 자오즈양의 실각 이후 사라진 개혁파를 재건하기 위해 원자바오는 몸을 낮출 수 밖에 없었고, 
그의 매우 온화한 풍모로 인해 개혁파는 붕괴를 면하고 결국 중요 세력으로 남을 수 있었죠 
그리고 장쩌민과 대립하기 보단 온건한 보완책을 통해 장쩌민에게 협력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입지를 넓힙니다. 
그 대신 자신이 할 말을 정협 주석을 지낸 리루이환(李瑞環)이 하죠 
원자바오는 이후 타협적인 노선으로 개혁파의 보루이자 온건우파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의 개방정책을 이끄는 사람이 됩니다.
보기보다 정치력도 뛰어나고 덩의 심모원려로 남은 행운아 이기도 하죠.(그가 개혁파에서 살아 남은 가장 큰 이유로 꼽는게 
대부분의 사람이 성격이라고 할 만큼 온화한 인물. 그의 선배인 자오쯔양의 실각 이유가 원로에게도 거침없이 말하는 
다소 모난 성격이었다는 점을 볼 때 이건 매우 큰 자산)



일단 지금의 정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선 주요 핵심 인물의 아버지가 누군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태자당이라는 실체에 대해 이야기 하기 쉽게 되죠. 일단 이번 사태의 핵심인 보시라이는 
마오의 오랜 동지이자 현대 중국 정치에 큰 영향력을 끼친 8원로 중 하나인 보이보(博一波)의 외아들입니다. 
그리고 차기 지도자로 내정받은것으로 알려진 시진핑(習近平)도 최연소 부총리에 올랐고 마오의 오랜 참모로 활동했던 시중쉰(習仲勳)의 아들이죠
이렇게 보듯이 현 지도부의 중요 인물들은 대부분 혁명열사의 아들인 태자당의 인물입니다. 
민중의 지지로 중국은 공산 혁명이 이뤄졌지만 이후 내부의 부폐로 계속된 지지를 잃고 있는 상황이었죠
거기다 중소 국경분쟁,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경제의 피폐와 내부 체제의 균열로 인해 다양한 문제들이 생기고 맙니다.
이런 와중에 개혁노선을 이끄는 인물들이 나타났으니 바로 후야오방(胡耀邦), 덩샤오핑(鄧小平), 후치리(胡啓立), 차오스 같은 인물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마오가 데탕트를 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용해 적극적인 개혁 노선을 지지하면서 중국을 조금씩 서방세계와 관계를 넓히게끔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마땅치 않았던 보수파들은 반대를 했고 결국 급진 개혁을 주장한 후야오방을 주석직에서 사임시키고 반동에 성공하게 되죠
그러나 실각 2년후 89년 후야오방이 사망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되어 결국 천안문 사태가 터지게 됩니다.
당시 민중은 개혁이 멈추게 된 2년의 반동에 엄청난 실망을 했고 개혁파가 실각한 자리를 태자당을 비롯한 보수적인 부폐세력이 자리 잡으면서
다시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자 거세게 반발했고, 후야오방의 추모대회를 빌미로 집결하게 됐는데 
이를 본 보수파들이 강경진압으로 선회하면서 큰 문제로 번지게 됩니다. 
결국 강경진압으로 그나마 유지되었던 개혁파의 근간은 무너졌지만 덩의 개입으로 완전히 붕괴되는것은 막고 차후를 노리게 됩니다. 
그리고 보수파들은 더 많은 것을 잃게 되는데 군부와 보수파의 협력으로 천안문 사태를 성공적으로 진압했으나 
정권의 헤게모니를 잃어 버리게 된것이죠. 


개혁파였으나 당시 거센 보수파의 입김을 거절 할 수 없었던 덩은 강력하게 천안문 사태를 진압할것을 군부에 명령했고 
그 결과 자신이 많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결국 가장 왼쪽에서 개혁을 주도 했던 자오쯔양은 잃었지만
보수파의 총아였던 리펑(李鵬)이 후계자가 되는것을 막을 수 있었고 온건한 우파인 장쩌민을 차기를 내세울 수 있었죠
그리고 8원로중에 개혁 지지세력이었던 쑹핑(宋平)을 통해 티벳사건에 대해 단호하고 강경한(군을 앞세운 총격진압이었죠) 이미지를 심어준
공청단 출신에 개혁적 색깔이 있었던 후진타오(胡錦濤)를 차차기로 키울 수 있었습니다. 
결국 덩의 정치력으로 개혁파들은 온존 할 수 있었고 다소 우파성향을 띠었지만 개혁은 중단없이 갈 수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피해를 가장 크게 본 집단이 바로 태자당이었습니다. 천안문 사태를 일으킨 주범으로 낙인찍히며 이들은 아버지의 비호속에 
자란 건방진 꼬맹이들이란 이미지가 박혔고 결국 정치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건방진' 태자당의 일원이 지금 중국 정치의 차기후보들로 극심한 정치적 암투를 벌이고 있는 보시라이, 시진핑, 위정성 같은 인물들입니다. 


특히 당시 8원로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보이보의 아들인 보시라이가 큰 타격을 입었는데
보수파의 상징과도 같았던 그의 아들에게 중책을 맡기기란 힘들었었죠(보시라이는 보이보의 늦둥이. 쉰살 넘어서 본 외아들)
결국 그는 정치국원이 되지 못하고 지방으로 떠돌게 되는데 그때 맡은 자리가 다롄시장입니다. 
그는 다롄 시장이 되면서 다롄을 북방의 홍콩으로 라는 캐츠프레이즈로 8년동안 시장에 재임하면서
일본도시라는 이미지를 가진 다롄을 랴오닝성의 최대의 수출입 무역항이자 쾌적한 환경의 도시로 탈바꿈 시키며
일종의 다롄의 기적을 이루는데 성공합니다. 보통 중국 지도자들은 최고위 자리에 오르기까지 임팩트 있는 사건을 하나씩 쌓는데
보이보에게 다롄시장은 그런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것이죠. 결국 이 업정으로 랴오닝 성장에 오르고 다소 앞서 있다는 평을 받은 
시진핑, 위정성 같은 태자당 선배들을 따라잡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 그는 다시 승승장구 하면서 베이징 핵심 요직인 국무위원으로 복귀에 성공 상임위원까지 되는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됩니다.
거기에 서기동수라는 중국의 균부론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가장 최전선 시기인 충칭 서기로 부임하게 되고 차기 대권 후보군에 오르게 되죠 
여기까지가 이 사건이 벌어지기 이전 간략한 상황입니다. 


그러면 지금 상황이 왜 터졌느냐가 중요한데 이건 후 주석의 상황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공산혁명 이후 사실상 2세대 지도체제가 자리잡은 이후 
대부분 중앙요직은 혁명을 같이했던 창단멤버(즉 49년 공산혁명이 완수 됐을때 공산당 당원)들이거나 그들의 자녀들이 역임해왔는데 
후 주석은 그 둘다 해당사항이 없는 인물이라는것이죠 즉 혁명열사도 아니고 태자당도 아닌 혁명 이후에 공산당에 입당해 지금위치까지 오른 
혁명이후의 유산이었습니다. 거기다 개혁파들이 차기 국가운영을 위해 만든 공청단 출신이라는 점까지 더해서 
기존 중국 정치지도계에 주류가 아닌 사람이었죠.(장쩌민 부친도 초기 중국 공산당을 설립한 멤버인 리센녠의 동지로 그 역시 태자당의 일원)
그래서 수많은 견제에 시달려 지금 자리에 오를 수 밖에 없었고 승계받는 과정도 순탄치 못했습니다. 


돌아가서 후 주석이 장쩌민 전 주석에게 권력을 승계 받을때 우리에겐 크게 이슈화 되지 못했지만 본토에선 첨예한 대립을 만든 자리가 
중앙 군사위 주석직이었습니다. 장쩌민이 모든 자리는 승계하면서 이 자리는 2년간 유예해 상왕과 같은 위치에서 
후 주석을 지도? 하겠다는 의중을 표현했죠. 결국 거센 반발을 받고 이 군사위 주석직도 물려주고 용퇴하게 됐는데
중국 현 체제에선 이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이 실질적인 국가지도자라고 인정받게 됩니다.


마오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듯이 중국 정치체제의 근간은 군부을 어떻게 장악하느냐 인데 
왜냐하면 군이 국가의 군이 아니라 당의 군이라는 특수한 신분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국가는 경찰기구 이상의 억제력을 가지지 못하고 공산당이라는 당의 억제력이 국가를 지키는 상황인거죠 
그래서 이 군사위 주석직을 얻지 못하면 반쪽짜리 권력밖에 가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수많은 현대 중국정치의 2인자가 끝까지 얻지 못한 자리가 바로 이 군사위 주석직이었죠. 
린바오, 류사오치, 덩샤오핑, 저우언라이, 후야오방, 자오쯔양 같은 인물들이 실각하고 1인지가 되지 못한 원인이 
이 군사위 주석직을 승계하지 못했던 것에 있습니다. 


결국 장쩌민 주석도 이 군사위 주석직을 내놓으면서 후 주석과 딜을 하게 되니 바로 태자당과 상하이방의 권력을 보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심 그가 차기로 찍어놓은 쩡칭홍(曾慶紅)을 상임위원으로 앉히고 저우융캉(周永康)을 당 정법위에 앉히는등 
중요한 요직에 자기 사람을 심어놓는데 성공하게 되죠. 
이런 모습은 덩이 지명한 후 주석을 거부는 못하지만 차기는 후가 지명한 사람이 아닌 기존의 경로를 유지 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최고자리로 오르게 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 있는것 입니다. 
그러나 내부 적이 많았던 쩡칭홍은 나이와 겹쳐 최고자리에 오를 수 없었고 상하이방은 유력한 정치세력이지만 
우두머리를 낼 수 없는 상황으로 들어가 후의 세력기반인 공청단이 중요한 핵심 자리로 많이들 옳겨 갑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 리커창(李克强) 이었습니다. 


공청단은 그 성격상 정치쪽에는 인물이 많으나 경제분야는 거의 인물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리커창은 그 문제를 해결해줄 인물임과 동시에 희망이기도 했죠.
그러나 이 사람 역시 지금은 원자바오와 같은 경제총리 정도에서 머물 가능성이 많고 공청단의 리더로 태자당과 연합해 
일군의 세력을 온존하고 유지하는데 신경을 쓸 인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결국 지금 차기 지도부 역시 태자당의 인물이며 온건한 개혁성향을 지닌 인물들이 자리잡을 가능성이 많은데
이 과정에서 보시라이는 좀 튀는 행동을 해서 벼락을 맞고 떨어진 상황입니다. 그를 끌어 내리는데 큰 역할을 한 
위정성이나 시진핑을 보면 잘 알 수 있죠. 둘 다 지금의 주도 세력인 공청단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맺으며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갔지만
보시라는 충칭모델의 성공을 발판 삼아 공청단을 비판하며 베이징 권부에 대해 반기를 들었는데 결국 이게 도를 벗어나 눈밖에 나게 됐고
실각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특히 당 정법위 서기인 저우융캉의 협조가 눈에 띄는데 그는 원래 이쪽 공안계나 정법계 인물이 아니라
보시라이에 앞서 서부대개발의 책임을 졌던 쓰촨성 서기로 전형적인 테크노라트의 인물로 장쩌민이 남겨놓은 유산과도 같은 인물이죠
보이는 위치와 달리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는 정법위는 당내 부폐문제나 공안문제를 통제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시키려는 장쩌민의 상하이방의
보루인데 이 저우융캉이 적극적으로 보시라이를 치는데 협조했다는것은 보시라이가 재기불능에 사실상 권부에서 몰락했다는 신호기도 합니다. 
(정법위를 통한 세력견제는 보수파의 대부인 리펑이 했던 방법. 장쩌민이 보수파의 보루와도 같았던 정법위 서기 
뤄간(羅幹)에게 계속된 견제를 받았는데 그 역시 그런 방법을 통해 후를 견제하고 있음)


이 보시라이 사건은 그동안 중국 권부에는 일상적이었으나 외부에 알려진 최초의 사건이라서 더 큰 문제가 되는듯 하고
과거 베이징방이나 광둥방을 숙청하던 부폐의 방식이긴 하나 그 시기보단 개방적인 체제에 있기에 더 커진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지금 중국 권부에 더 큰 위기는 90년대 세관밀수 사건을 통해 제거한 광둥방 처리가 더 심각하고 큰 문제였었습니다.


참 이상하게 보이지만 복잡한 실타레를 하나씩 풀다보면 지금 상황이 이해 못하는건 아니죠 
특히나 지금의 문제는 중국의 특수성이라기 보단 정치의 일반적인 속성에 가까운것이라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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