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선에서.
- 작성일
- 14-01-14 01:02
나는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있어서 그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그녀가 내 옆자리에 앉는 순간 그녀가 서울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자리에 앉는 순간에 그녀의 새로운 공간에 대한 긴장감이 느껴졌나보다.
어색하게 내 옆 빈 자리에 그녀를 앉힌 남자는 커다란 가방이라기보단 시장바구니같은 것을 앞에 내려놓고
설명을 한다.
"그러니까 낙성대 입구에서 내리는거야. 여 녹색을 타고 낙성대에서 내려서 2번출구로....
어여 적어놔."
곁눈질로 보니 스마트 폰을 꺼내 익숙한 손놀림으로 열심히 적는다.
모자를 푹 눌러 쓴 채로 눈만 돌렸던 터라 여전히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신도림역.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여자의 옆에 남자도 앉는다.
"여기는 신도림 역이고, 너는 더 가서 낙성대에서.... 그리고 갈 때는 서울대 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대 입구에서 걸어가지 뭐."
"아녀. 버스를 타야된다니깐."
"버스를 타야돼?"
"응. 그러니까 얼른 잘 적어놔. 버스를..."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
남자의 말을 끊은 여자의 목소리엔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성격의 두려움이 서려있었다.
그리고 남자가 말을 이었다.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어? ...시간이 빨리 가면 좋은거지!"
"왜 올라왔나 싶다."
"에이 그런소리 말어. 가는 방법은 다 적었어?"
아버지.
두려움과 두려움과 두려움을 안고 공중전화에서 0082 로 시작하는 번호를 누르던 2007년 6월 30일의 아침,
이것저것 농담섞인 격려를 하던 엄마 옆에서 차순위로 수화기를 건네받고는 사랑한다 우리 딸.
이라고 짧게 한마디밖에 하지 못한 아빠.
오늘은 사랑하는 나의 아빠가 아버지의 모습으로 가슴을 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