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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부마항쟁과 유신체제의 붕괴

1. 부마항쟁의 발생 배경

유신체제 말기의 사회·정치적 위기구조 유신정권 붕괴의 직접 원인이 김재규의 10·26정변이었다 하더라도 정변의 결정적 계기가 부마항쟁이었던 만큼 부마항쟁 없는 10·26정변이나 유신정권 붕괴는 논의하기 어렵다. 부마항쟁은 유신체제 아래 만연된 경제적 불평등과 지배층의 부정부패에 대한 계급적 불만과 반감에서 터져 나온 민중의 폭발적 항거였다. 정당성이라는 정권의 약점을 무마하기 위해 장면정부의 ‘경제계획5개년계획’을 실행에 옮겨 총량적 성장을 거두긴 했지만 특권층의 부정부패와 부의 지나친 편중으로 인해 서민대중의 상대적 박탈감과 불만을 초래했다. 부마항쟁이 발생한 1979년에 2차 석유파동으로 유류비가 59%나 뛰었고 전기료도 30% 올랐으며 그 밖의 각종 물가도 덩달아 올라갔다.77년부터 시작된 부가가치세는 사실상 10% 가격인상을 불러와 마찰을 빚었다. 반면에 특권층의 부패, 투기, 호사는 갈수록 더욱 기승을 부렸다. 600여명의 사회지도층 인사가 포함된 현대아파트특혜분양사건이 대표적이다.

부마항쟁의 또 다른, 더 직접적인 요인은 정치적인 것이었다. 유신정권의 억압적 체제에 대한 불만과 염증이 70년대 말에 이르러는 민주화운동세력에 그치지 않고 일반 대중에게 퍼져나갔다. 78년에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의 득표율이 여당보다 높았다는 것은 그러한 정황들을 보여준다.

부산·마산 지역의 위기상황 산업화 초기 이후 부산과 마산의 산업은 수출 중심의 노동집약적 경공업이 주를 이루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불안한 취업과 생활고는 이 지역의 하층 노동자, 도시빈빈층의 사회적 불만을 누적시켰다. 78년 말부터 시작된 2차 석유파동은 허약했던 이 지역의 경제구조에 직격탄을 터뜨렸다. 원자재의 수입가격이 폭등하였고 그것이 부산, 마산의 지역경제에 고스란히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 지역의 부도율은 훌쩍 올라갔고, 수출증가율은 떨어졌다. 문 닫는 업체가 늘어나면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역시 늘어났지만 새로 강행한 부가가치세는 가구당 세금을 크게 올렸다. 그리고 부산과 마산 지역의 대학생들이 마침내 1979년 10월 16일과 18일에 각각 가두시위를 시작하였다.

이러한 지역적 상황 말고도 또 다른 일들이 있었다. 선명성을 내세운 김영삼이 김대중의 지지를 엎고 신민당 총재가 됐으며 마침 그시기에 YH사건이 터지면서 김영삼은 더욱 강하게 유신정권에 대한 강한 투쟁을 해나갔다. 이에 박정희 정권은 김영삼의 총재직을 박탈하고, 의원직에서마저 제명해버렸다. 부산은 김영삼의 지역구이고 고향은 거제였다. 김영삼이 유신정권에 의해 탄압 받는 모습은 부산·마산 지역 사람들을 더욱 자극했고, 폭발하게 만든 원동력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지역 민주화세력의 성장 민청학련사건과 ‘제일교포간첩김오자사건’ 등으로 70년대 중반 이후 부산의 학생운동세력은 거의 괴멸되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회운동세력은 성장하고 있었다. 보수동 책방골목을 중심으로 한 중부교회를 중심으로 비판적 의식을 지닌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중부교회 이외에도 부산YMCA, 동광교회, 남부교회 등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 중에 특히 주목할 곳은 ‘부산 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양서협동조합)이다. 양서조합은 민청학련사건으로 복역 뒤 부산으로 간 김형기에 의해 제안된 양서만을 판매하는 협동조합이다. 조합은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였으며 교회와 학교와 사회에 흩어져있던 의식 있는 청년들을 불러 모으고 다시 배출하는 커다란 저수지가 되었다. 부마항쟁은 그 즈음 발생했다. 이렇게 교회와 양서협동조합 등을 통해 학생운동세력이 다시 규합되면서 대학 내 학생운동 도 점차 회생하기 시작했다.

마산지역의 학생운동은 서울 유학생 모임 ‘재경마산학우회’를 맹아로 시작되었다. 여기에 경남대 학생들이 참여하면서 마산지역의 청년·학생층 모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이념 서클이 만들어졌고 여기에 양서협동조합운동이 ‘경남양서보급회’라는 이름으로 마산에서도 시작되었다. 양서보급회는 단순한 서점이나 독서모임이 아니었다. 비록 핵심인물들의 구속과 입대로 활동은 힘을 잃었지만 회원의 대부분은 부마항쟁 마산지역 시위 발단에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된다.

2.부산지역 항쟁

항쟁의 발단: 부산대 교내시위의 분출과 시가지 진출 부마항쟁은 79년 10월 부산대 교내시위에서 발단되었고 그날 시내 중심가 가두시위로 확산됨으로써 본격화하였다. 시위 전날 또 다른 시위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시위가 불발되자 그 다음날 훨씬 크게 폭발한 것이다. 70년대 중반 이후 이렇다 할 학생운동이 없었던 부산대는 유신대학의 오명을 얻었고 그에 대한 모멸감과 자괴심이 다음날 대규모 시위를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인문사회대 강의실에 뛰어 들어가 선언문을 배포하고 강의실에 있던 40여명의 학생들이 뛰쳐나오면서 시작된 시위는 보직교수들의 만류와 해산종용에도 불구하고 금세 2,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최루가스와 함께 전투경찰들이 몰려들어왔다. 학생들은 시내로 진출하기로 했고 그때 학생들은 오히려 더 늘어 4~5,000여 명에 이렀다. 학교에 남아있던 학생들도 대부분 시내로 이동하였다. 경찰들의 방어선은 계속해서 무너졌다.

도심지 민중항쟁의 폭발과 확산 학생들은 부영극장 앞에 집결했다. 경찰기동대도 행동을 개시했다. 무차별 방망이 세례를 퍼부으며 학생들을 끌고 갔다. 하지만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골목길은 시위대의 이합집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시위소식을 들은 인근 대학의 학생들도 모여들었다. 시위는 자리를 이동하면서 게릴라식으로 진행되었다. 한 시위대를 해산시키면 다른 시위대가 쏟아져 나오곤 하였다. 시위대와 또 시위대에 호응하는 시민들로 인해 오히려 경찰이 몰리는 형색이었다. 시민들은 시위에 직접 나서지는 않더라도 학생들을 적극 도왔다. 퇴근 무렵이 되자 직장인과 노동자들이 대열에 합세하여 삽시간에 수 천 명으로 불어났다. 도심의 대로가 시위 인파로 꽉 찼다. 오히려 대학생은 소수였으며 퇴근길의 회사원부터 상인, 접객업소 종업원, 재수생, 고등학생 등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경찰은 10시부터 통행금지 실시를 방송했지만 새벽 1시 넘어 까지 시위는 계속되었다.

다음날, 4월 혁명 이래 초유의 대규모 민중항쟁을 언론들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부산대 교문은 임시휴교조치로 닫혀있었다. 학교에서 다시 시위가 시작되었다. 물어난 시위대는 다시 시내로 나갔다. 이날 시위는 동아대 학생들이 대거 가담하였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시위로 확산되었다. 내무부 장관이 부산시청에서 어제 시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더욱 거세게 진압했지만 전날처럼 항쟁을 진압하지 못했다. 그러자 박정희 정권은 18일 0시를 기해 부산지역에 계엄을 선포하고 공수부대를 투입하였다.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계엄군이 부산 곳곳에 주둔했다. 이후 부산시내는 다시금 강요된 침묵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3. 마산지역 항쟁

마산지역 민중항쟁의 폭발과 확산 경남대에서는 서로 다른 두 그룹이 시위를 준비하다가 서로 합쳐 시위를 계획했다. 중간고사 끝나는 10월 22일이었다. 시위를 준비하던 중 16일의 부산의 항쟁 소식이 전해졌다. 18일 아침이 되자 누군가 교문에 부산항쟁 소식을 크게 보도한 『한국일보』를 100여부 가져다 놓았고, 학내에 붙은 다른 벽보들도 학교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학교는 지레 겁을 먹고 휴교를 결정했다. 궁금증을 가진 학생들은 교문 주위로 몰렸다. 이는 시위에 더욱 유리한 여건을 가져다주었다. 시위를 준비하던 한 학생의 연설을 시작으로 시위가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흩어져 시내에서 재집결 하였다. 1,000여명의 학생이 시내에 모였다. 학생들이 중심가로 진출하여 시위를 벌이자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합류하였다. 엄청난 수의 시위 군중들은 공공건물을 공격하였다. 이 시위는 새벽 3시까지 전개되었다. 그날 저녁 인근지역 경찰이 지원되었을 뿐 아니라 보병 1개 대대가 마산으로 투입되었다. 19일 저녁엔 공수부대가 급파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시내로 모여들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였으며 새벽까지 시위는 계속되었다. 전날과 달리 대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정부는 20일 정오를 기해 위수령을 발동하였다.

4. 부마항쟁의 귀결과 의의

부마항쟁의 불길이 대구로 북상할 조짐을 보이던 중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했다. 김재규는 육군참모총장을 통해 계엄령 선포 후 자신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권을 세우려 했지만 실패하였다. 여타의 논쟁이 남아있지만 두 가지 사실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첫째, 10·26정변이 유신정권을 붕괴시키고, 체제의 종말을 앞당겼다는 점. 둘째, 부마항쟁을 비롯한 유신반대운동 진영의 과도한 희생을 줄여주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박정희의 죽음에도 박정희 없는 유신체제는 오랜 저항을 통해 극복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김재규식의 테러 방식으로는 군사독재 해체가 불가능하다 것과, 박정희를 정면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해버리고, 비극적 죽음을 동정하는 묘한 정서를 만들어내면서 박정희 향수가 되살아날 불씨를 남겼다는 점에서 민주화의 진전에 심각한 독소를 뿌렸다는 주장들도 있다. 하지만 10·26정변이 아니었으면 박정희 정권이 그처럼 급속히 종식될 수 있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박정희의 죽음은 유신체제가 직면하고 있던 여러 위기들의 결과였다. 유신 붕괴의 1차 원인은 권력 내부의 갈등과 대립(10·26) 때문이었지만 그 내부 갈등은 부마항쟁의 투쟁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부마항쟁이야말로 10·26정변, 박정희의 죽음, 유신 붕괴를 몰고 온 70년대 민주화운동의 기념비적 성과이다. 두 도시의 경계를 넘어 국가적 역사의 차원에서 정의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