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영화 <피에타>와 관련된 자료 사진을 찾다가 제가 찾는 사진은 못 찾고, 눈에 띄는 다른 스틸 컷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피에타>에는 제 기억으로 강변 풍경이 네 다섯 번 나옵니다. 등장 인물들이 강에 발을 담그거나 헤엄치는 등 강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배경으로만 나타납니다.

강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묘사는 휠체어에 탄 스님이 절 담장 너머로 강을 보려고 목을 내미는데 이강도가 휠체어를 들어주는 장면입니다.
그 장면에서 스님은 말합니다. "이제 되었습니다. 제가 어리석어서 이 정도 밖에 보지 못합니다".
물론 스님의 대사는 강도의 심리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장면에서 강이 자꾸 눈에 걸렸습니다.

 엄마가 강가에 소나무를 하나 심어 달라고 했을 때 강도는 나무를 심은 후 말합니다. "강가에 소나무가 잘 자랄까?" 그 장면에서 강은 화면의 반을 차지하고 들어옵니다. 엄마가 빈 건물 위에 올라가 자살을 시도할 때 엄마의 뒷 모습과 강을 보여줍니다. 이런 장면들이 시선을 아리게 하는 것은 영화 전반부의 청계천 공구상 골목과 대비되기 때문입니다. 가죽 잠바에 스모키 화장을 한 강도는 살생부 대신 채무자의 신상이 담긴 장부를 든 저승사자입니다. 3개월 만에 원금의 열 배를 요구하며 채무 기일에 정확히 나타나는 저승사자. 그는 돈을 갚지 못한 채무자에게는 가족이 바라보는 앞에서 폭력을 가합니다. 폭력의 강도는 뺨을 맞는 채무자의 시점숏으로 노모를 비출 때 핸드 핼드 카메라의 흔들림에서 느껴집니다. 분명 강도에게 맞고 있는 사람은 채무자(= 카메라)인데 카메라가 바라보는 노모가 흔들립니다. 아들의 신체적 아픔과 엄마의 심리적 고통을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효과적으로 묶어내는 장면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이강도에게 장미선이라는 여자가 찾아와 자신이 엄마라고 하며 혼자 남겨둬서 미안하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강도도 모정에 굶주려 그녀가 자신의 친엄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엄마가 사라집니다. 이강도는 자신이 고통을 줬던 채무자들이 엄마를 납치했다고 짐작하며 채무자들 에게 엄마를 내어달라고 합니다. 그때 이강도가 바라보는 것이 그들이 겪은 고통입니다. 반병신이 되어 술로 세상을 달래거나, 구걸을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바라보아야 했던 가족들의 고통을 그는 바라보게 됩니다. 그들의 고통을 이강도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스님의 말처럼 지금까지 어리석어서 보지 못했던 것을 그는 보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강도가 끝끝내 보지 못하는게 있습니다. 장미선이 자신의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 게다가 장미선은 이강도의 폭력으로 자살한 채무자의 엄마라는 사실. 장미선은 이강도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그에게 사랑을 주고, 그 사랑을 잃은 아픔을 뼈속 깊이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장미선은 처음부터 자살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강도가 소나무를 심기 위해 묻었던 강가의 무덤에는 장미선의 아들이 묻혀 있으며, 장미선이 이강도에게 "너를 혼자 내버려두어 미안하다"라는 말은 사실 이강도에게 한 말이라기 보다 죽은 아들에게 한 말이었던 것입니다. 

장미선이 강가가 바라보이는 낡은 건물 위에 올라가 연극을 펼칩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건물 위에서 미는 것처럼 말입니다. 건물 아래에 있어 그 사실을 모르는 강도는 '어리석어' 그 사실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이강도는 차마 건물 위를 못보고 땅에 무릎을 꿇고 엄마를 살려달라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빕니다. 건물 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이강도의 짐작으로는 채무자)를 향해 절규를 하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역설적입니다. 이강도는 제대로 바라보고 사과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건물 위를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그 땅 아래에 그가 죽인 장미선의 아들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건물 위에서 장미선이 바라보고 보고 싶다고 절규하는 있는 대상은 이강도가 아니라 땅 속의 죽은 아들인 셈입니다.

<피에타>의 전반부에 보이는 청계천 공구상은 수컷의 공간입니다. 그것은 차갑고 긴 쇠파이프들이 여기저기 나뒹구는 비정한 장소이며, 산업화를 이루어내면서 인간성을 학살한 공간입니다. 후반부에 보이는 강변은 여성적인 공간이며, 인간의 근원적인 고향, 자궁과도 같은 곳입니다. 엄마가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고 난뒤, 이강도는 땅을 팝니다. 그 땅에서 죽은 장미선의 아들을 발견합니다. 두구의 시신과 나란히 누운 이강도의 모습은 자궁 속의 태아와 같습니다. 영화 전반에 몽정을 하는 강도의 모습에서도 태아의 상징이 나타납니다. 강도가 엄마의 하복부를 가르키며 '거기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 것은 인간성이 파괴되어 공구상의 기계처럼 되기 이전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고픈 욕망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강도는 돌아갈 자궁이 없습니다. 엄마는 애초부터 없었고, 그가 엄마라 믿었던 장미선은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에 강도가 채무자의 트럭에 갈고리를 매고 죽는 장면은 잃어버린 자궁을 찾아 탯줄을 거는 장면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시 영화의 공간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죠. 영화의 전반을 이루는 청계천의 공구상들은 곧 사라질 공간입니다. 후반에 주로 보여주는 강변 공간 역시 이제 MB의 토목사업으로 많은 부분들이 기억너머로 사라질 공간입니다. 이 영화가 제게 섬뜩하게 느껴진 것은 영화 속의 이야기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들의 마지막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