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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던 중, 가끔 깜짝 놀라만한 통찰력을 보이는 소녀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그림을 그릴 때 중요한 것은 언제 붓을 떼야할지를 아는 것이랍니다". 인테리어를 전공한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그때 퍼뜩 떠올랐던 영화의 한 장면이 밀로스 포먼 감독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75)에서 1분간 카메라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잭 니콜슨의 클로즈 업 씬이었다.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말대로 이 영화에서 이 순간은 희극적이었던 지금까지의 영화 분위기에서 비극으로 이어지는 후반부의 변곡점으로 작용한다.

원래대로라면 3초안에 끝날 잭 니콜슨의 얼굴을 1분간의 롱테이크로 잡을 때, 이 순간은 매직이 된다. 니콜슨이 역을 맡은 맥머피는 죄를 짓고 정신감정을 의뢰받기 위해 정신병동 생활 중이다. 그는 정신병원의 규율에 저항하며, 환자들에게 자유를 가르쳐준다. 이 과정에서 병원측과 마찰이 생길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위 장면은 맥머피가 탈출할 기회를 포기한 맥머피가 화면을 길게 응시하는 장면이다. 이때 그의 응시는 앞으로의 일을 예견하는 것처럼 보인다.

편집 과정에서 불필요한 짜투리 시간을 '데드 타임'이라고 한다. 예컨대 바닷가에서 남녀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면 밖으로 사라지고, 바다만 길게 찍힌 그 필름의 시간들은 사실상 '죽은 시간'인 것이다.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은 이 시간들을 다시 살려낸다. 그 때 그 공간은 새로운 의미의 공간으로 자리잡게 된다.

화가가 붓을 어느 순간에 떼느냐 마느냐는 영화 감독이 숏을 어느 지점에서 컷해야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위대한 감독들은 그 지점에서 죽은 시간들을 살려내는 마법을 부리는 것이다.


2012. 0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