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 작성일
- 14-04-27 23:08
주인공 남자는 어린시절부터 동네 미용사 여인을 짝사랑 해서 꼭 미용사와 결혼하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우연히 기막히게 아름다운 미용사를 발견한다. 유리창 너머로 미용사를 훔쳐보던 남자는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미용사는 미소를 머금고. '손님은 아직 머리가 짧아서 아직 자를 때가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짓는다. 기어코 머리를 자르겠다고 우긴 끝에. 그 짧던 머리를 더 짧게 깍은 남자는 일어나서 돈을 내고 미용사에게 결혼해 달라고 청혼한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은 부부가 되고 함께 미용실을 운영하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 얼마나 좋아하는지 걸핏하면 문을 잠그고는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면서 깔깔대곤 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가끔 묻곤 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말해줘요."
완벽한 사랑만을 바라며. 혹시 사랑이 식어버리면 어떻게 할까하고 불안해하던 그녀는 어느 비 오는 날 강물에 뛰어 들어 자살한다.
여러번 보고 곱씹었던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를 처음 본날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점점 어두워오는 바다로 가는 물결 / 무슨 그리움이 저 허공 뒤에 숨어 있을까" 라고 시인 김수영이 읊었던데에 늘 공감하곤 했엇는데. 아마도 그런 시적 정서와 함께 했던 나의 지난 시절 탓인지. 현실너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나에게 그런 기억의 각인을 지우지 못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에릭 로메의 '녹색광선' 이나 프랑수아 트뤼포의 '쥴앤짐' 알랭 코르노의 '세상의 모든 아침' 끌로드 소테의 '금지된 사랑' 장 자끄 베넥스의 '베티 블루' 등 모든 비현실적인 사랑이야기들이 그래서 더욱 와닿았던건 아닐까.
그중 아직까지도 유난히 기억에 남아있는 작품이 바로 빠뜨리스 르 꽁트의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이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울림의 핵심은 아마도 그토록 바랬던 사랑의 절정에 이르러 덧없이 죽음을 택하고만 여주인공이 우리에게 주는 공허와 해방의 감정일 것이다. 왜 그래야만 했나. 왜 그녀는 그토록 행복했던 그 순간 죽음을 택하고 말았던 것일까.
여기에 난 독일의 전후 실존주의 작가로 유명했던 잉게보르그 바하만의 '만하탄의 선신'을 떠올려 보게 된다. 작가 전혜린의 말을 빌려보면 이 작품의 초점은 '도저히 좁혀 들어갈 수 없는 실존의 어찌할 수 없는 거리감' 에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이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에서의 그것은 보들레르의 말처럼 사랑하면서 죽자! 에 더욱 가까운것도 사실이다.
바하만은 이 작품으로 독일 문단에서 수여하는 극작품에 대한 상을 받게 되었고. 그는 수상 연설에서 "우리는 극한점까지 가보고 싶고.. 한계점을 넘어보고 싶은 충동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질서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 사회에서의 이탈이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우리는 주어진 질서안에서 서로를 시험하며 살 수 밖에 없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에서의 여주인공은 아마도 그런 연유로 자신앞에 놓여있는 사랑을 확신할수 없었으리라. 아니 그 확실한 사랑 속에서도 어찌할 수 없음. 어찌 해보려 할 수 없음. 결국은 사랑을 퇴색시켜 나갈 수 밖에 없는 절망적 현실속에 놓여있는 자신을 발견 했을테지. 현실을 긍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는 현실 저 너머에 있는 이상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래서 결코 그렇지 못할 시간앞에 놓여있는 현실을 퇴색시키기 두려워 '사랑과 함께 죽는 길' 이라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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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혼자살아가는 사람은 어찌보면 사람 자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어두운 가운데 홀로 늙어 죽는 건 아까운일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럴수 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 것도 또한 인간이라고. 어두운 통로를 끝없이 뒤어가던 쥐 한마리가 그 끝에 놓인 고양이에게 결국은 잡아먹히고 만다는 설정은 비단 하이데거의 죽음을 향한 존재라는 설정 뿐만이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진리인 것이다.
아마도 그런것이 아닐까. 카뮈가 실존인으로써 인간이 지상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바로 자살이라고 한 것 말이다.
우리는 이 지옥같은 세상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사랑뿐이란 것을 간접적으로 나마 극명하게 추측해 볼 수 있다.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빛나는 사랑이 쇠락해나가는 것을 겪고 싶지 않았던 것이고. 또한 실존인으로써 현실을 부셔버렸던 것이다.
심한 번개와 폭우가 내리던 날. 영화속 남녀는 마지막으로 사랑을 나눴다. 그리고 마틸드는 폭우 속으로 사라져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에게 보낸 한통의 편지만 남긴채.
"사랑하는 이에게, 먼저 떠납니다. 사랑을 남기고 가려구요. 아니 불행이 오기전에 갑니다. 우리의 숨결과 당신의 체취와 모습. 입맞춤까지 당신이 선물하신 내 생애 절정에서 떠납니다. 언제나 당신만을 사랑했어요. 날 잊지 못하도록 지금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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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대상을 향한 사랑은 서로의 부재속에서 더욱 강하게 피어오르는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서로의 현현을 확인하려는 시도가 좌절되는 가운데. 그런 시도의 무한한 순환가운데 오는 증폭작용 같은것이 만남의 진정한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것이 자신의 그림자와의 외로운 싸움일지라도 말이다.
지금 누구를 만나야 하는가. 그렇다면 왜 만나야 하는가. 만남의 의미란건 도대체 무엇인가. 과연 무엇이 그러한 만남을 연장시켜 주는가. 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하려 하는건가. 스스로에게 자문해보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