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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다른 나라에서>는 몇번 더 보고나서 리뷰를 올릴 예정입니다. 그래서 자세한 내용은 피하고.. 

홍상수 감독에 대해 제가 느낀 점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여러번 참석해서 이야기를 들은 것 외에 가까이에서 말을 주고 받은 것은 딱 한번있습니다.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칼 드레이어 회고전을 하는데 딱 마주친 겁니다. 드레이어 영화를 보려고 부산까지 내려왔더군요.

화장실에서 나오시는 길인데 제가 "어.. 감독님 아니세요? 저 여기 사인하나 부탁해도 될까요?"라며 들고 있던 태그 갤러그의 <칼 드레이어>라는 책을 내밀었죠(사인 받을데는 그 책 밖에 없어스리). 그러자  "아.. 네. 반갑습니다"  기분 좋은 표정으로 물 묻은 손을 바지에 딱고는 "성함이??"

알투 : 알투디투입니다.

홍감독 : (사인을 하면서 쓰고 있는 내용을 읽더군요)"알두디투씨 반갑습니다.. 2000년"

알투 : 감독님.. 2010년입니다. ㅋ

홍감독 : 아.. 네...(다시 쓰며) 2월..

알투 : 감독님.. 4월 3일입니다. ㅋ

홍감독 : 아. 죄송합니다. 좋은 책에 이렇게 실수를 해서.. ㅎㅎㅎ

알투 : 괜찮습니다. ㅎㅎㅎ


저는 이 모습이 참 좋더군요. 뭔가 얽매이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랄까? 그런데 이건 부분적인 모습이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홍상수 감독의 말을 들어보면 배울게 많습니다. 영화에서 느낀 감동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랄까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홍감독을 기인, 괴짜,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한 사람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제가 판단하기에 홍상수 감독은 누구 보다도 영민합니다. 그리고 그 영민함만큼 그는 정직합니다.

제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하는 말 중에 '홍상수는 도둑질 안하고 사기 안 치는 정직한 사람이다'라고 합니다. 영화를 만들다보면, 도둑질을 많이 하게 됩니다. 남의 영화의 특정 장면을 빌려와서 패러디, 오마주 같은 외래어를 붙여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사람들을 종종보게 됩니다. 홍상수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인용할지언정 다른 감독의 영화를 훔쳐다 쓰지는 않습니다. 정형화 된 양식에 대해 결벽증을 가지고 있기에 영화의 룰이나 문법에 따라 찍지도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영화를 발명한 사람입니다. 홍상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그의 영화에는 여자를 꼬실려고 사기를 치는 남자들이 등장하지만 정작 그는 정직합니다. 어떤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자기가 굉장한 천재인 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려운 철학책을 괜히 인용해대며 폼을 잡지요. 자기 영화에서 철학의 결핍을 아가리로 메우려는 거지요. 홍상수 감독은 <다른 나라에서>를 찍기 전에 김용옥이 누구인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남들이 관심있어 하는 책에 별 관심이 없고 자기가 좋아하는 책만 봅니다. 인문학 중독자들처럼 새로 나온 철학자들로 자기를 포장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음과 같은 한심한 질문이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종종 나옵니다.

"책은 읽으세요?" ---->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책은 읽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항상 바리톤의 목소리에 인자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홍감독이 이 질문에 대단히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전까지 책에서 몇줄이라도 꼭 읽습니다"

"쉴 때 집에서 뭘 하세요?" ----> 왜 이게 궁금할까요.

"<다른 나라에서>의 영어 대사는 본인이 직접 쓴 건가요?" ---> 시카코 대학 영화과 출신인데... 암튼 홍감독이 자신이 직접 썼다고 하니깐 질문한 사람의 대답이 더 기가 찹니다. "존경합니다" 이건 영화를 보러 온건지 영어 능력을 평가하러 온건지.. 

"임상수 감독은 영화도 멋지고 사람도 멋진데.. 홍상수 감독은 본인의 영화처럼 추레하시네요" ---> 참 추레하죠. 듣는 사람이 민망한 질문.


저는 지금껏 제가 가까이에서 본 사람 중에 천재성이 가장 많은 사람이 홍상수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신비롭게 봅니다. 이 세상의 우연성을 보며 매번 감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영화에 그런 수많은 우연들이 자리잡는 것이겠죠. 일전에 <씨네 21> 정한석 기자가 부산에 내려왔을 때 그런 이야길 하더군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점점 밝아지고 있다. 그는 주변 상황이나 사람의 이야기를 자기식으로 잘 흡수하는 사람이다. 그의 영화가 점점 밝아지는 것은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홍상수 감독이 나쁜 사람을 안 만났으면 좋겠다"

홍상수 감독은 속이 단단한 사람입니다. 아이 같은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나쁜 사람을 만났다고 걱정만큼이나 쉽게 무너질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은 우리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나왔을 때 그걸 보지 않고 지나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의 영화는 우리를 변화시킬 엄청난 에너지가 있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가 서서히 막을 내리려고 합니다. 올해 이 영화를 제 시간에 보는 행운을 놓치지 마십시오. 영화를 보시고나면 우리가 행복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