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학부형들이 완전히 죽일 놈이 됐는데, 내용 자체도 모르면서 남자 셋이 여자 하나 죽인 것으로 생각하게 해 놨다.” 
“쉽게 말해서 공무원 아닙니까, 어떻게 처녀가 술을 떡 되게 먹냐고..”
“여자가 꼬리치면 안 넘어올 남자가 어디 있어. 어린 애도 아니고..”
“서울에서는 ‘묻지마 살인’도 나는데 젊은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지...” 
“좋은 일을 하려다가 그렇게 된 것 아닙니까..”

2>. 
나는 작년 말에 학교폭력 피해 학부모들과 함께 (가칭) <학교폭력은폐방지법>(학교폭력방지법 개정안)을 준비하는 모임을 여러 차례 했다. 그런데, 학교폭력 피해 학부모들과 만나면서 알게된 것은 <학교 공동체의 주요 구성원> 전체가 학교폭력을 ‘은폐할’ 유인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학교장, 교감, 교사, 학부모, 학생들은 모두 자신들의 학교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은폐할’ 유인을 갖는다. 왜냐하면, <학교의 평판이 나빠지면> 학교 공동체의 구성원 전부가 불이익을 보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교 내에 이를 예방하라고 설치한 ‘보안 경찰관’조차도 공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3>. 
경제학 관련 과목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분야는 ‘경제사’였다. 경제사는 그 자체로 맑스의 정치경제학과 밀접하게 조응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맑스적 관점에서 노예, 농노, 임금노동자는 각기 별개의 개념이다. 노예는 ‘인신’에 속박된 존재이며, 농노는 ‘토지’에 속박된 존재이며 임금노동자는 ‘임금’에 속박된 존재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농노의 경우 토지에 속박된 존재이기도 하지만, 토지와 연동된 <공동체에도 강하게 속박되는> 특징을 갖게 된다.

바로 이 지점인데, <봉건제적 농촌공동체>는 결코(!!) 목가적(牧歌的)인 낭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학교의 주요 구성원 모두가 학교폭력을 ‘은폐할 유인’을 갖게 될 때 그 공동체는 <학교공동체>가 아니라 <‘학교 폭력’ 공동체>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을 대상으로 사전에 공모하고 자행한 ‘집단 강간’을 은폐할 유인을 갖는 섬마을 공동체는 <집단강간 (묵인)공동체>에 다름 아니게 된다.

이러한 맥락을 갖고 있기에, 경제사에서는 중세 도시에 대해 “도시에는 자유의 공기가 숨 쉰다”라고 표현했다.

그럼, 중세 도시의 어떤 원리가 ‘자유의 공기가 숨쉬게’ 한다는 생각을 만들게 되었을까? 그 원리는 간단하다. <익명성>과 <임의성>이다.

토지에 속박된, 농촌공동체 사회에서는 <실명성 + 항상성>을 갖기에, 온갖 ‘낙인찍기’ 문화가 자리잡게 된다. 동성애자라는 낙인, 나병환자라는 낙인, 이혼한 여자라는 낙인, 강간당한 여자라는 낙인 등이 모두 그러하다. (소수자스러운) ‘다름’은 종종 집단 이지매의 대상이 된다.

이와 같이 실명+항상적인+(평생에 준하는) 공동체는 그 자체로 <개인>에 대해서 <전체주의적> 폭력의 속성을 내재하고 있다.

4>. 
존 스튜어티 밀의 <자유론> 이라는 책을 보면, 존 스튜어티 밀이 대결하고자 하는 대상이 <다수의 집단-공동체> 그 자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 자유주의 정치철학은 ‘국가’가 내재한 폭력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발달해있다. 그러나, ‘공동체’ 그 자체도 국가의 위험에 못지 않다.

국가가 <물리적 폭력>을 매개로 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말살할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다면, 특정 공동체는 <문화적 폭력>을 매개로 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말살할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다.

5>. 
나 역시 호남 출신이다. 우리 집안 역시도 호남 차별의 피해자였고, 청소년 시절 이후 내가 약간은 ‘반골(反骨)’ 기질을 갖게 된 것에는 호남 출신이라는 것이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미쳤다.

신안...이라는 지도상에 존재하는 특정 지명은 중요하지 않다. 신안..이라는 특정 지명이 경상도에 있건, 강원도에 있건, 인천 동해 어디쯤에 있건.. 독도 근처에 있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익명 + 임의적인 도시 공동체>와 달리, <실명 + 항상적인 시골 공동체>는 어떤 위험성을 갖는다. 도시공동체는 도시공동체 나름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위험이 있는 것처럼, 시골 공동체는 그 나름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A라는 특정 개인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 B에게 ‘법적 책임’을 물으면 그것은 <연좌제>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러면 안된다. 그러나, A라는 특정 개인(들)의 범죄가 벌어지고, 이후 그 범죄가 ‘공동체’에 의해서 은폐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면, 해당 공동체에 대해 ‘문화적인 연대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은, 거꾸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실질적인' 재발방지를 이뤄낼 수 있기 때문이다.

6>. 
‘자유주의’가 많은 결함을 내재하고 있는 정치철학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유주의 정치철학에 대해 애착(?)을 갖는 근본 이유는 ‘집단주의-공동체’가 내재한 폭력성, 전체주의적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현대사는 더욱 그러하다.)

집단주의와 전체주의는 그것이 민족의 이름이든, 계급의 이름이든, 그 무슨 이름이든 ‘한 개인’에게 폭력적 주체로 돌변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렇다고 그런 ‘공동체 일반’을 부정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7>. 
임미리 박사님이 신안 성폭력 사건에 대해 글을 썼는데, 그 글의 내용과 맥락을 오해한 분들이 임미리 박사님을 연좌제를 주장하는 지역차별주의자쯤으로 오해하는 듯 하다.

심지어 내가 매우 좋아하고, 실제로 독해력도 뛰어나고 매우 총명한 김형민 샘조차 오해하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것은 임미리 박사님의 글에 대한 오해와 오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