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네 몸에서 가장 이쁜 곳은 어깨야."
"또 그 이야기네. 왜요?"
"글쎄. 팔을 둘러 네 반대 쪽 어깨를 손으로 감싸고 있으면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손바닥 안으로 동그랗게 맞닿아 오면
'아! 이 곳이 제일 예쁘네.' 하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칫 그게 뭐야."
내가 가끔씩 꺼내곤 하는 그 이야기가 그녀에겐 썩 탐탁치 않았던가 보았다.
눈이라던지, 코라던지, 아니면 희고 곧게 쭉 뻗은 다리라던지, 하다 못해 손이라던지.
그런 곳을 말해주었다면 그리 나쁜 반응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여튼 그녀는 어깨가 가장 예쁘다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때때로 미련스럽게 그 말을 꺼네곤 했었다. 
왜 그랬는지는 잘 알수가 없다.
지금 생각해보변 그녀가 좋아할만한 곳을 예쁘다고 말해주어도 별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혜화동엘 가면 그럴듯한 칼국수 집이 서너 집 있다.
그 중에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곳이기도 하고 자주 가는 곳이 국시집이다.
안동식으로 칼국수를 내는 곳인데 혜화동에서 제법 칼국수를 낸다는 집들의
본가라고 할 수 있다. 사골 육수에 고르고 매끄러운 면이 일품이다.
손으로 내는 칼국수 면인데 어찌 이리 고르고 매끄러울 수가 있을까 싶게
목 아래로 미끄러져 가는 식감이 감탄스러운 것이다.
그에 따라 오래전 부터 손들도 많아 한 때는 점심 시간에 이 곳에 예약을
잡는 것이 나름 권세의 척도였던 적도 있었다 한다.
이 국시집에서 주방일을 하던 사람들이 어깨 너머로 배운 실력으로
또 혜화동 근처에 두어 곳 칼국수 집을 냈고 그 집들이 다 나름 맛집으로 
다시 소문이 났다. 그 가운데 또 자주 발길을 끄는 곳이 혜화 초등학교 앞의
명륜칼국수다. 그런데 이 곳에서 칼국수를 먹다보면 가끔 쿡 하고 웃음을 같이
넘기게 된다. 국시집과는 또 다른 나름 자기 만의 매력이 있는 국수를 내긴 
하는데 이 집은 손칼국수 면이 참 고르지 못하다. 두깨도 듬성듬성
제멋대로고 면의 표면도 꽤 거칠다. 하지만 그 거친 맛이 또 묘하게 나름
입맛을 끄는 면이 있어 때론 이 곳으로 더 자주 발길이 닿을 때도 있다.
어깨 너머로 배운 탓에 그 정수를 오롯이 가져오진 못했지만 또 그 미진함이
정수가 주지 못하는 새로운 맛을 끌어냈다는 것이 재밌기 때문에 슬며시
웃음을 짓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깨 너머로 배운다는 말이 더불어 참 
재밌어지기도 한다.



'사람의 뒷 어깨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이런 말을 하고 다닌 적이 있었다.
반 쯤은 그러하기도 하고 반 쯤은 허세가 섞인 거였다.
누군가의 뒷 어깨를 보고 있으면 왠지 저 사람은 어떤 성격의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을까 싶은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니 그렇다고 믿었다.
어쨌든 누군가에게 그 말을 꺼내면 대부분 그럼 자기 어깨는 어떻게
보이냐고 되물어 오곤 했다. 그러면 난 그 미묘한 차이를 갖은 말로
설명해 가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떤 이는 어떻게 자기하고 딱 맞다며
같이 맞장구를 쳐주기도 했고, 어떤 이는 코웃음을 치기도 했다. 
어찌됐든 시간을 떼우는 우스개론 나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반이 아니라 전부가 허세였을지도 모르겠다.



춘천엘 곧잘 가곤 했다.
호숫가를 천천히 걸어다니며 짊어진 비명들을 물에 내려놓고
온다고 생각했다. 내려놓고 온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돌아오는
밤 늦은 기찻 간에서 어깨가 홀가분 하단 생각을 했었다.



어둑한 창 너머로 옅은 가을이 서성인다.
괜시리 어깨가 무거워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