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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은 구속되어 구치소 한 켠에 계신 분의 대수학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이 했던 여러 말 중에 인상적 말이 하나 있는데, 수학이 얼마나 세상의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라고 학생들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그리곤 아주 큰 원을 그리고선 아주 작은 점 하나를 찍고 이것도 다 설명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수학 자체로는 현실에 힘을 같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지요. 조금 더 얘기를 넓혀보자면, 몇몇 공리적 체계로 세워진 방대한 논리체계인 수학은 현실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데 아주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입니다.

#2. 예전에 스웨덴의 노사정 대합의를 이끌어낸 비그포러스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 나온 비그포러스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소유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비그포러스는 소유권의 기원을 추적했는데, 우리가 하나라고 생각하는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하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물건에 대한 소유에 대한 권리가 뭉쳐서 하나의 권리처럼 여겨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단일한 개념이나, 권리, 의무 등이 사실 알고보면 서로 생경한 것들을 모아놓은 것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3. 제가 군대에 있을 때 근무자표를 짠 적이 있습니다. 근무자표를 짜다보면 정말 많은 병사들이 찾아와 구구절절히 자신의 힘듦과 괴로움을 얘기합니다. 저는 나름대로 아주 객관적으로 근무자표를 짠다고 생각했는데, 그 일이 끝난 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들으니 제가 별로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알게 모르게 제가 제가 속해 있는 부서 사정을 잘 알 수밖에 없으니 제 부서 편을 드는 것처럼 보였던가 봅니다. 저는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제대하고 오래 지나 그 일을 다시 떠올려 보니 저는 제 부서의 사정을 잘 알고, 다른 부서의 사정을 잘 몰랐던 것 자체가 알게 모르게 편향된 결정을 할 수밖에 없던 요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세 경험을 얘기하는 건, 우리가 알고 있는 이론들이나 원칙이 현실에서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수학은 지금껏 인류가 구축한 가장 보편적 언어입니다. 우리는 이 언어가 우주에서도 통할 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큰 보편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학은 몇몇 공리 위에 구축되어 있으며, 그 공리는 우리가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선, 혹은 에너지 범위에서나 통하는 원칙인 경우가 많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배우는 포물선의 정리는 인간이 인지가능한 척도 안에서는 성립하지만, 그 밖으로 넘어가면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보편주의라는 것은 같은 문화 속에서 같은 척도를 가진 사람들 속에서나 통하는 것이다라고요.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조롱과 모욕에 대한 다른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조롱"에 대한 보편주의를 얘기하는 것은 양자세계에서 뉴턴 역학을 얘기하는 것처럼 무의미해 보입니다. 조롱을 단지 조롱이 아닌, 사람의 정체성을 공격하는 데까지 나간다면, 원래 그 조롱을 하는 의미가 없어지는 게 아닌가 싶네요.

또 두 번째 사례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가, 단일한 권리이고, 언제나 배타적으로 작동하는 권리일 수 있는가 짚어 볼 수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사실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서구에서는 많은 경우 약자에 대한 무례한 언사, 과거 아픈 기억을 가진 자들에 대한 공격적 언행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장애인과 여성에 대한 비하, 반유대주의 등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치와 파시스트에 대한 찬사를 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사실 프랑스 사회가 받아들인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는 각기 다른 역사적 경험과, 교훈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치와 사회, 시민으로부터 종교를 분리하기 위해 수백년 동안 서로를 학살했습니다. 그리고 여성이 시민의 일원으로써 인정받기 위해 오랫동안 사투를 벌였고, 그 결과 공공 영역에서 남여 차별적 발언을 몰아냈습니다.

그런데 무슬림은 어떻습니까. 실제 프랑스 사회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은 사회적 약자입니다. 프랑스는 알제리를 점령하며 무슬림들을 학살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건너 가 2등 국민으로 모진 수모를 당했던 것처럼, 많은 알제리인들도 프랑스에서 2등 국민이 되어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등의 대우를 감내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활을 하며 그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종교였습니다. 이렇다면 프랑스의 지식인들이 무하마드를 조롱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인 무슬림을 묶는 정체성의 고리를 공격하는 것이 됩니다.


마지막 사례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우리는 과연 이론과 원칙 안에서 언제나 정당할 수 있는가 입니다. 아마 샤를리 앱도는 프랑스만의 이론과 원칙, 보편주의 안에서는 정당할 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론과 원칙이 다른 체계, 다른 역사적 과정을 거친 사람들에게 그 이론과 원칙이 꼭 정당하게만 들릴까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객관과 합리에 다가설 수는 있지만 결코 완전한 객관과 합리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또 내 기준이 타인에게 올바른 기준이 될 수도 없습니다. 이건 문화적 상대성 이전에,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자는 것이고, 인간의 모여 만든 단일한 문화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을 내리자면, 진보든 보수든, 얼마나 훌륭한 문화를 이뤘고, 얼마나 보편적인 지식체계를 이뤘던 간에, 이론은 한계가 있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할 때는 많은 주의를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론으로 포괄하기에는 아주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다른 이론과 원칙을 지닌 사람들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체계를 지닌 사람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은 그리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니 부모 자식 욕하는 것 싫어하듯, 남들 종교 갖고 조롱하는 거 좋아할 사람 없다는 말입니다. 서로 친해진 다음에, 서로 수용 가능해진 다음에나 그런 거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