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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야구 팬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김성근 바람을 보면 참 묘한 감정이듭니다. 왠지 거의 도탄에 빠져 있는 팀과 팬을 구원해 줄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김성근 감독이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거나 하는 식으로 비아냥 거릴 생각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강한 리더를 바라는 한국적 정서의 일부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박정희 혹은 김일성과 같은 강한 리더가 나타나면 나라가 다시 부강해지고, 좋아질 거라는 믿음과 비슷한 괘가 아닐까 싶어요.

사실 야구단 규모에서는 이게 운이 좋다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야구단 규모 기껏해야 선수, 코칭스탭, 프런트까지 다해서 100명 안팍이고, 많아 봤자 150명 안쪽입니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한 명의 좋은 리더가 나타나서 잘 이끌어 나가는 거 가능한 범위입니다.

미국 같이 한 팀 내에 메이저리그 팀, AAA, AA, 하이 싱글, 로우 싱글, 루키, 외국 캠프까지 이끌게 된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단장과 감독의 분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고요. 단장은 이 모든 것을 조정할 수 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한 게임, 한 게임에 전력을 투입해야 하는 감독 입장에서 하위 리그의 팀의 선수까지 통솔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시스템을 분화시키려고 하는 데, 그렇게 하기에는 선수단 규모가 작습니다. 그리고 팀을 통솔하는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선수에게 작용하는 것은 기용이나, 상하위 리그 이동과 같은 인사권이 실질적으로는 전부인데, 이를 나눠가지기도 힘든 측면도 있습니다.

김성근 감독은 감독과 감독의 수족같은 코치들이 다 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두산이나 삼성, 넥센, NC 같은 팀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입니다. 두산은 오래전부터, 정확히는 김성근 감독이 떠나는 시점부터, 이를 분리해왔습니다. 팀의 방향을 정하고, 그에 따른 육성 플랜을 세우는 것이고, 감독은 경기 운영에 전념하는 형식이지요. 두산은 예산이 한정적이어서, 이런 전략을 토대로 윤동균 감독 이래로 중위권 전력을 꾸준히 유지했지요.

이런 시스템이 가장 빛을 발한 건 현대입니다. 김용휘 단장, 김재박 감독 체제인데, 김용휘는 몇몇 선수의 경우 육성 플랜에 따른 기용에 까지 힘을 발휘했어요. 넥센은 그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이장석의 판단에 따라 선수의 트레이드 여부를 결정하지요.

삼성은 조금 시스템이 이거랑은 다르니 일반화하기 힘들지만, 삼성은 부상선수관리나, 신인 육성 등의 플랜을 확실히 잘 갖추고 있지만, 두산, 넥센과 비교하자면 더 현장의 의견을 존중하고, 지원을 충실히 하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돈의 여유가 있으니 마음도 넓다는 느낌? 뭐... 삼성 부분은 제 개인적 느낌입니다.

그런데 두산, 삼성, 현대(넥센)과 같은 팀이 오랜 기간 꾸준히 성적을 잘 내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한국 야구가 규모 면에서는 작지만, 내부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보면 조금씩 고도화되어 분권화된 체제가 필요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팀들 입장에서는 팀의 시스템을 고도화하기 위해서는 프런트가 일정 부분 권한을 갖고 팀의 방향을 정할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과 같은 유형의 감독이 오면 그 권한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몇 년 하다가 갈 감독과 프런트는 입장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감독의 판단에 맞겨 팀의 소중한 자원을 내줬을 때, 그 뒤의 책임은 누가 지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독이 단기적 성적에 매몰되서 선수를 마구잡이로 기용해서 부상 등으로 선수가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을 때를 생각 안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예전에 인터뷰한 트레이너가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감독은 언제나 선수를 기용하고 싶어하고, 언제나 선수는 경기에 뛰고 싶어한다고. 부상이 조금 있더라고, 감독은 기용해 성적을 내고 싶고, 선수는 자신의 기량을 언제나 뽑내고 싶은 겁니다. 이게 감독과 선수의 일종의 본성 같은 거라고.  그랬을 때 트레이너가 제지해야 하고, 프런트가 보호해야 할 때도 생기는 겁니다. 하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감독이 부임해서 전권을 넘기면 이게 쉬워지지 않는다는 게 보이는 겁니다. 김성근의 SK 같은 케이스도 있지만, 백인천 같은 감독 와서 팀 난도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성근 조차도 OB 시절에는 팀을 황폐화시키고 떠났습니다.

물론 김성근의 SK는 대단한 성공이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프런트 입장에서도 김성근 감독이 있는 동안은 아주 만족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성공이 다시, 또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계속 갖기는 어렵습니다. SK와 다른 팀의 상황은 무척 다르기 때문입니다. 김성근 감독이 김응용 감독이 도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요. 더 중요한 건 김성근 감독 이후를, 감독과 프런트의 구분을 지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왔기 때문입니다.

김성근 감독은 프로야구의 역사와 함께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성장해 왔습니다. 지금은 감독이지만, 과거에는 프런트의 역할까지 다 했습니다. 예전에 OB 베어스 창단 투수 코치할 때 감독과 코치는 김영덕, 이광환, 김성근 이 셋이었고, 전체 야구단 선수 숫자는 22명이었습니다. 그때 프런트 숫자는 정말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었을 정도였을 겁니다. 어찌 보면 훈련장 섭외나, 선수 스카우트, 선수 지명, 트레이드, 훈련에 감독과 코치가 모두 개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숙소도 감독이 정했을 겁니다.

그러니 김성근 감독은 특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야구를 사랑하고, 좋아해서 그 안에서 살면서 야구단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다했을테니까요.

그런데, 김성근 같은 감독은 이제는 다시 나올 수 없습니다. 김성근과 같은 시대에서 코치를 시작했던 감독은 이제 프로야구 판에 없습니다. 프로야구 원년 멤버들도 이제 경력이 많은 감독이 되었고, 프런트와 감독 사이의 역할 구분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세대가 새로운 감독이 되었습니다.

이제 대부분의 팀은 어찌 보면 과거로의 회귀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팀에 역할 구분 시스템이 생겼고, 그 역할 구분을 다시 되돌리는 건 현대 야구 흐름에서 동떨어지기 딱 좋은 너무 큰 도박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볼 때는 김성근 열풍은 다음 세대의 야구에서 보기 힘든 현상이고, 프로야구가 현대화가 되면서 겪는 진통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P. S. 물론 프런트가 무능력해 답이 없는 팀도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