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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다음 달이 되면 국내외 각종 언론에서는 올해의 영화를 선정한다고 부산을 떨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각자의 Ten Best를 뽑고 있으신지요? 이제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몇장 남아 있지 않습니다. 연말 개봉작 중에 눈에 띄는 작품을 몇점 추려봤습니다. 아래의 영화 중에 무엇을 더 추가로 보시겠습니까?



제가 가장 기대하는 작품은 우선 알랑 레네의 신작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입니다. 누벨 바그의 멤버로 잘 알려진 알랑 레네는 올해 아흔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영화를 만들었다는게 들려오는 소문입니다. 제목처럼 이 노장은 여전히 더 보여줄 자신의 영화세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홍콩을 대표하는 여성감독 허안화의 영화도 우리를 찾아옵니다. <심플 라이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홍콩의 유명 제작자의 하녀로 일하던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늙은 하녀가 몸이 불편해지자 스스로 요양원을 찾아갑니다. 이를 안 영화 제작자가 이제 그녀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인간적인 소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로 하녀역을 맡은 예더셴은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을 했습니다.
늙음과 관련된 또 다른 영화는 미카엘 하네케의 신작 <아무르>입니다. 치매가 걸린 아내와 그를 돌보는 남편에 관한 이 영화는 올해 제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 가장 인상이 깊은 영화입니다. 절대 놓치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작년에 부산국제 영화제에서 본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파우스트>도 공개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롱테이크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은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벨라 타르, 미클로스 얀초, 그리고 알렉산더 소쿠로프입니다. 괴테를 재해석한 영상 시인 소쿠로프의 한없이 탐미적인 영상을 직접 확인해보십시오. 
젊은 동구권 영화인 루마니아 영화는 몇년 전부터 세계 영화제에서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 중 크리스티안 문주는 <4개월 3주 그리고 2일>로 잘 알려진 감독이지요. 전작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이번 영화 <신의 소녀들>로 칸 영화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한번 찾아서 볼만 할 것 같습니다.




위의 영화들 외에 사회성 짙은 영화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습니다. 먼저 정지영 감독은 전작 <부러진 화살>의 여세를 몰아 고 김근태 의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80년대 한국사회에서 암암리에 이루어진 고문을 고발하는 영화 <남영동 1985>를 만들었습니다. 영화의 80프로가 고문에 대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글쎄요. 저는 이 영화를 아마 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정지영 감독의 지나치게 선동적인 방식의 영화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부러진 화살>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습니다. 논리적 정합성이 없는 씬구성도 그랬지만, 실제 사실과 무관한 장면(김명호 교수가 3심 판사에게 항의하고 난뒤에 감방에서 성폭행 당하는 장면)을 끼워 넣은 것을 보고 한숨이 나오더군요. <남영동 1985>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영화의 80프로에 해당하는 고문장면을 제가 온전히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이와 반대로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26년>은 광주민주화 운동의 피해자와 그 유족들이 가해 주범인 전두환을 반격하는 영화입니다. 원작은 대단히 박진감 넘치고 뛰어난데 영화로 잘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네요. 여기에 꼭 하나 언급하고 싶은 것은, 주제의식이 뛰어나다고 그 영화의 완성도가 높은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종종 영화를 꽤 보신다는 분들이나 영화평론가들 중에서도 이런 실수를 하는 것을 봤습니다. 뛰어난 주제의식을 영화적 형식과 맞물릴 때에 걸작이 나오는 것이지요.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더 헌트>는 유아성폭행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도 아청법으로 유아성폭행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는데요. 이 영화는 유아성폭행범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쓴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잘못된 판단으로 무고한 사람이 어떻게 매장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하네요. 최근 주가를 올리는 매즈 미켈슨의 눈부신 연기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은근히 우리 스크린을 자주 방문하는 배우 중에 <드라이브>로 유명한 라이언 고슬링가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 이 배우의 영화가 두편 개봉되었는데(<킹 메이커>, <블루 발렌타인>) 하반기에도 <하프넬슨>과 <올 굿 에브리씽>이라는 두 편의 영화가 개봉됩니다. 그 중 <하프넬슨>은 2006년작인데 뒤늦게 개봉되네요. 이 영화는 미국 빈민층 중학고에서 아이들에게 인권을 가르치는 교사에 관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교사는 인간적으로 결함이 많습니다. 마약중독자이거던요. 교육과 사회 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거리를 제공해 주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르면서 우리에게 이 배우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7년전 라이언 고슬링의 연기를 확인해 보십시오.




배우의 연기로 말한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연기만큼 보고 싶은게 있을까요? 원래 배우로 출발해서 메가폰을 쥔 이 감독은 최근에 연기를 보여준 것이라고는 <그랜토리노> 이후에 없었죠. 그가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라는 참으로 베팍스러운 제목의 영화에 한물간 늙은 스카우터로 출연합니다. 연출은 자신의 영화에 제작을 주로 맡았던 로버트 로렌즈에게 맡기고요. 그러니까 영화 내용과 관련해서 본다면, 신인 감독인 로버트 로렌즈를 스카웃한 셈입니다. 이 영화는 따로 추천 안해도 베팍 회원들은 다들 보실 것 같은데 <머니 볼>과 함께 비교해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족과 같이 봐도 좋을 듯하네요. 이 영화 외에 연말에 가족들과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영화로는 피터 잭슨의 <호빗 : 뜻밖의 여정>과 미셀 오슬로의 <밤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터 잭슨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판타스틱한 이야기와 놀라울 정도로 독창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미셀 오슬로의 세계.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여러분을 틀림없이 기쁘게 해드릴 것입니다. 벽난로 앞에 놓인 선물 챙기는 것을 잊지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