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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아 있을 때 바로 쓰려고 하다보니 글이 조금 두서가 없습니다. 이를 감안해서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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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폴>은 50주년 기념작 답게 여러가지 재미를 보여줍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M이라는 존재입니다. 제임스 본드가 007이라는 암호명을 가지고 있듯이 그의 상관인 M 역시 암호명입니다. 주디 덴치가 M역을 맡게 된 것은 시리즈 17번째인 <골든아이>에서부터 입니다. 그 이전까지 M역은 모두 남성 캐릭터였습니다. 이언 플레밍의 원작도 M은 남성이며, 007의 아버지이며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M과 제임스 본드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 글을 쓰기도 했지요.

주디 덴치는 007에서 M역을 맡기 이전에도 영국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위대한 여배우였습니다. 007에서 M역을 맡으면서 자신의 연기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캐릭터에 묻혀버리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어요.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그녀의 비중은 어떻게보면 007보다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M은 MI6의 수장이며, 007의 정신적 Mother이고 그에게 Murder 넘버인 '00'의 숫자를 부여해준 인물입니다. M은 동시에 영국, 화려했던 대영제국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스카이폴>은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다쓰는 영화입니다. 그러기에 이 영화는 스파이물이라는 낡아빠진 장르를 조롱하고 그런 뒤에 시리즈의 부활을 시도하는 작품입니다. 영화 내내 제임스 본드와 M을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영화의 공간도 이런 대조를 보여줍니다. 추격씬이 처음 벌어지는 터키의 그랜드 바자르와 MI6 본부가 있는 런던, 제임스 본드의 고향인 스코틀랜드는 과거의 영광에 의존해 있는 장소입니다. 반면에 중국의 상하이와 마카오는 새롭게 부상하는 도시들이죠(영국의 도시들은 지하세계를 보여주고, 중국은 고층 건물을 보여주는 것도 이런 대비를 명확하게 보여줌). 007과 MI6 요원들이 두려워 해야할 것은 눈에 보이는 적과 신무기가 아닙니다. 그들이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보안장치를 뚫고 들어오는 해킹이며 요원들의 자료를 삽시간에 전세계에 퍼뜨릴 수있는  유튜브입니다. 젊은 Q가 근육질의 제임스 본드를 보고 파자마 바람에 노트북 하나를 들고도 당신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것도 스파이들이 활동하는 시대가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영화 제목인 'skyfall'은 나락에 빠진 것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그것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본드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저택 이름이기도 합니다. 제임스 본드는 어린 시절 부모가 죽은 뒤에 깊은 상념에 빠져 저택 지하 비밀 수로에 숨어 있다가 아픔을 극복하고 성인으로 성장합니다. 이와 유사한 것이 MI6 본부가 해킹에 의한 가스 폭발 공격을 받고 새로운 기지로 옮긴 곳도 지하 비밀기지입니다. 제임스 본드의 '스카이 폴' 저택의 지하수로가 종교개혁시기에 만들어진 곳이고, MI6의 새로운 본부는 1800년대부터 런던에 만들어져 있었던 것으로 처칠 수상이 이용하였던 곳이라는 점입니다. 즉 역사적 전통이 있는 곳이라는 점이죠. 그러니까 위기에 빠진 제임스 본드와 MI6는 그 부활의 바탕을 과거의 전통에서 다시 되살려 내고 있습니다. 제임스 본드가 애스턴마틴이라는 골동품 차를 몰고 자신의 영지로 달려갈 때 그것은 시리즈의 전통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skyfall'은 영화 초반에 총을 맞고 물에 떨어지는 것처럼 추락을 의미하기도 하며, 자신이 조직에서 제거 되는 것같은 해임(이것은 007과 M이 같이 겪음), 신체적으로 이미 퇴물이 된 것(복귀 후 007은 신체와 정신 테스트에서 불합격을 당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은 부모에게 떨어져 나가는 분리 불안을 의미합니다.

 
제임스 본드가 귀환후 심리 테스트를 받을 때, 단어연상 테스트를 합니다. 정신분석의가 'M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했을 때 본드는 "개년"이라고 답을 합니다. 그리고 다시 "스카이폴은?"하고 묻자 대답을 거부합니다. 스카이폴은 본드의 트라우마입니다. 저택의 이름이면서 본드가 가지고 있는 분리 불안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제임스 본드는 부모의 죽음 이후 겪은 그 공포를 지하의 비밀 은신처에서 숨어 지내다 극복합니다. 그 지하수로가 정신적 자궁이 되어 그를 다시 태어나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격전지를 스코틀랜드 스카이폴 저택으로 택한 것은 제임스 본드가 부활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스카이폴이 무너지고 제임스 본드가 교회에 나타나는 것도 부활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악당 실바 역시 007의 다른 모습입니다. 실바는 원래 MI6 요원이었습니다. M에게 제거 당하고 중국 정보부에 고문을 당하던 그는 자신의 치아 속에 감춰놓은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을 기도하려 했으나 실패합니다, 그리고 고문 후유증으로 특수한 틀니를 착용하게 됩니다. 그것을 빼면 괴물의 모습입니다. 다시말하면 실바는 M이 만들어 낸 프랑켄슈타인인 셈입니다. 실바가 M에게 하는 말 '고문을 당하면서 난 알았지. 배신한 것은 당신이라는 것을..'은 실바가 겪은 스카이폴(분리 불안)에 대한 공포를 말하는 대목입니다.

영화에서 눈여겨 봐야할 대목들이 많습니다. 제임스 본드와 Q가 첫 대면하는 장소는 미술관인데 그 미술관에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호>가 걸려 있습니다. 트라팔가르 전투에서 나폴레옹군을 무찌른 테메레르호가 증기선에 끌려 해체되러가는 것을 터너가 그린 그림입니다. 일몰의 모습이 예전의 명성은 사라진 테메레르호를 더 슬프게 만드는 그림입니다. 그것은 바로 제임스 본드와 스파이들의 세계가 처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Q가 청문회 현장에서 읊는 테니슨의 <율리시스>도 그런 사라진 영웅에 대한 비장감을 느끼게 해주는 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샘 맨더스는 이 영화에 여러 영화들을 인용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본드가 총을 맞고 물 속에 떨어지는 것은 <본 아이덴티티>, 지하철 탈선 장면은 <다이하드 3>, 컴퓨터 세대에 뒤진 아날로그 영웅의 모습은 <다이하드 4>, 스코틀랜드 스카이폴을 관리하는 할아버지가 적에게 총을 쏘면서 내뱉는 '스코틀랜드에 온 것을 환영하네!'는 <더 록>, 실바가 유리 철창에 잡혀 있는 모습은 <양들의 침묵>,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추격 씬은 <밀레니엄>, 스카이폴 저택 폭파는 <다크나이트 라이즈>, 시를 인용해서 시대의 처지를 읊는 것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수도 없는 인용이 나오더군요.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로빈의 등장을 연상케하는 머니패니의 등장. 원래 이름이 '이브 머니패니'였더군요. 저격 실수로 007의 갈비뼈 네개와 내장 기관 일부를 파괴했기에 그녀의 이름이 '이브'인가 봅니다. 

이 영화를 계기로 이제 여성 M이 사라지고 남성 M, Q,  머니페니가 완전히 되살아났습니다. 이건 과연 시리즈의 앞을 향한 부활일까요? 과거로의 퇴보일까요? 그 대답은 그 다음 작품을 기다려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