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007 <스카이폴> 디비기~
- 작성일
- 12-11-05 22:01
어제 <스카이폴>에 대한 급한 리뷰를 썼습니다. 의외로 반응이 좋은 것 같아서 급하게 쓰다보니 세세한 설명이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 다시 한번 써보겠습니다. 먼저 보신 분들은 <스카이폴>을 다시 음미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고 안보신 분들은 보기 전에 알고가면 좋은 팁정도로 생각하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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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스카이폴>의 포스터부터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스카이폴>에는 여러 포스터가 있지만 이 포스터만큼 영화의 주제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은 없습니다. 영국 국회의사당 옆에 있는 빅벤을 거꾸로 세움으로서 과거가 되어버린 대영제국의 질서를 보여주는 포스터입니다. 이것은 냉전기 세계 정보를 주무르던 정보국인 MI6의 추락을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정형화된 스파이 영화 장르의 쇠락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빅벤의 침이 깊은 상처를 내는 것은 이제 실질적인 적은 '내부의 적'과 관련된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스카이폴>은 007 시리즈를 전체적으로 리부팅해서 부활시키는 영화입니다. 올해 개봉된 초대형 블록버스트인 <다크나이트 라이즈>와 <스카이폴>은 fall과 rise의 수직하강과 상승, 몰락과 부활을 모두 주요 테마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카이폴>은 007과 M, 그리고 MI6를 밑바닥까지 떨어뜨린 후에 장르를 시리즈를 부활시키는 반면,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가면을 벗음으로서 평범한 인간으로 부활하는 부르스 웨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리즈의 마무리를 짓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제임스 본드와 Q와의 첫만남이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임스 본드에게 신무기를 제공하는 인물(그리스 신화로 치면 헤파이스토스에, 배트맨으로 치면 폭스에 해당)인 Q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맡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밉니다. 그 첫 만남의 장소가 비밀 기지나 과학 실험실이 아닌 미술관이라는 점은 어떻게 보면 엉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이 장면은 많은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장면은 영국이 자랑하는 전설적인 감독인 알프렛 히치콕의 <현기증>(1958)의 갤러리씬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영국이 자랑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제 제임스 본드가 갤러리에서 본 그림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임스 본드는 Q와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1838)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림을 보면, 트라팔가르 전투에서 나폴레옹 군을 무찌르며 위용을 자랑하던 테메레르호가 이제 그 쓰임을 다하고 증기선에 이끌려 항구로 해체되러 가는 모습입니다. 일몰을 배경으로 증기선에 이끌려 가는 범선의 모습은 그 시대를 다한 영웅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Q가 제임스 본드를 보고 나이와 정력이 다했다고 하면서 '자신은 잠옷을 입고 노트북을 들고도 당신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디지털 시대에 유효기간이 다한 아날로그 영웅에 대한 조롱을 하는 것입니다. Q가 본드에게 (이 시리즈의 신무기들에 비한다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무기를 줍니다. 본드가 실망하는 내색을 비치자 "왜 폭탄이 장치된 볼펜이라도 기대하셨어요?"라고 얄미운 핀잔을 줍니다. 이제 제임스 본드와 싸우는 적들도 이런 신무기가 아니라 보호망을 뚫는 해킹과 비밀정보를 동영상으로 공개해버리는 유튜브와 같은 것들입니다.
본드가 Q와 터너의 그림을 보고 있을 때 등 뒤 왼편에 보이는 그림은 <공기 펌프 안의 새에 대한 실험>(조셉 라이트 오브 더비,1768)이라는 그림입니다. 이것은 공기 펌프가 장치된 유리병 안에 새를 집어넣고 공기를 빼내는 실험을 기록한 그림으로 과학적 합리성 아래 새의 목숨이 죽어가는 것을 고발한 그림입니다. 중앙에 새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두려워하는 자매와 이를 설명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왼편에는 실험에 관심이 없는 연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오른 쪽에 밝은 하늘과 비어 있는 새장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영화와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죽어가는 새의 모습이 MI6에서 이용만 당하고 개죽음을 당하는 스파이들의 처지와 유사합니다. MI6 총체임자인 M을 모성(mother)로 대했지만 M에게 그들은 살인(murder) 기계일 뿐입니다. M이 제임스 본드와 실바를 버린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쉽게 먹혀들지 않습니다. 마치 그림 속에 아버지가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하려 해도 공포에 질려 있는 자매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림 오른 편에는 자유를 나타내는 맑은 하늘과 새가 있었던 새집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또 또 실바가 사는 섬에서 쥐를 퇴치한 에피소드에 대한 일화를 연상케 합니다.
배를 타고 섬으로 기어들어온 쥐들로 생활이 곤란해지자 실바의 할머니는 석유통에 쥐가 좋아하는 코코넛을 넣어두고 쥐를 유인합니다. 석유통에 쥐가 가득차자 할머니를 석유통을 닫아버립니다. 불을 붙이거나 바다에 버리지 않고 가만히 놓아두면 쥐들은 저희들끼리 잡아먹습니다. 최종적으로 두 마리만 남게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숲에 이 두 마리를 풀어 놓으면 이 쥐들은 쥐맛을 알기에 코코넛을 더 이상 먹지않고 숲의 쥐들을 사냥한다는 얘기.
실바가 본드에게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두 마리의 쥐가되어 자신들을 버린 MI6를 공격하자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본드는 한 마리의 쥐가 되기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로코코 시대의 화가 토마스 게인즈버러의 <아침산책>(1785)이 미술관에 본드가 앉아 있을 때 우측으로 보입니다. 이 그림은 결혼을 앞 둔 예비 부부인 윌리엄 할렛 부부의 초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혼으로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처럼 본드도 새로운 부활을 해야합니다. 몰락(fall) 이후의 부활(resurrection). 악당 실바에게 자신의 주특기가 부활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영화는 본드의 부활이면서 시리즈 자체를 새롭게 부활시키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굳이 꺼낸다면, 영화 초반에 잘못된 저격으로 본드의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이후 (남자) M의 비서로 근무하며 그에 대해 연정을 품는 본드 걸의 이름은 무려 '이브' 머니패니! 시리즈 내내 조강지처 역할을 하는 걸프랜드가 하나 생긴 셈입니다.
상하이 고층건물 저격씬에 맞은 편 건물에 얼핏 보인 그림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부채를 든 여인>(1919)입니다. 이 그림이 이 장면에 굳이 쓰인 이유는 뭘까요? 그림의 모델인 루니아 체호우스카는 모딜리아니의 부인인 잔 에뷔테른의 친구이며 유부녀였지만 모딜리아를 짝사랑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 속에 악당 실바의 연인인 세베린은 실바를 배신하고 본드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 이유 때문에 이 그림을 사용했을까요? 저격씬 이후 반대 건물에 있는 제임스 본드를 세베린은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한동안 쳐다봅니다. 그 모습이 모딜리아니의 그림처럼 신비로운 모습을 주는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보다 이 그림이 2010년에 파리의 한 미술관에서 도난당했다는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 도난당한 작품이라 악당들이 이 그림을 소유/거래하는 모습으로 찍기에 스토리 전개상 적합했을 듯합니다.
상하이 마천루에서 저격씬은 <스카이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씬 자체가 홀로그램을 이용한 미디어 아트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 장면은 007시리즈 두번째 편인 <위기일발>(1963)의 저격씬을 생각나게 합니다. 런던의 전통적이면서 고풍스런 면모와 대조를 보여주기 위해 제작진이 선택한 곳이 상하이입니다. 이국적이면서 최첨단의 상하이 모습은 수많은 네온사인과 수직의 아름다움으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영국은 비와 음습한 지하세계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는 해와 떠오르는 태양에 대한 극명한 대비입니다.
실바의 기지가 있는 섬은 거대한 석상들이 부숴져 나뒹굴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헨리 퓨슬리의 <고대 폐허의 장엄미에 압도당한 예술가>(1779)라는 그림을 닮아 있습니다. 이 그림은 붉은 분필과 세피아 톤의 수채화로 제작된 이 작품은 잃어버린 총체성, 사라져 버린 전체성의 세상에 대한 예술가의 비통함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이제 영웅의 힘은 잘려나간 조각상의 손과 발에만 있을 뿐입니다. 거대한 발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예술가의 모습은 영화에서 그들이 영웅이었던 시대가 사라졌음을 뒤늦게 깨달은 두 스파이(본드, 실바)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그런 몰락의 모습에 굴하지 않고 좋았던 시대를 다시 부활하려는 의지가 영화 후반부에 M이 청문회장에서 읽는 테니슨의 시 <율리시스>에 다시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비록 잃는 것이 많더라도
남아 있는 것도 적지 않도다
비록 우리의 힘이 옛날처럼 하늘과 땅을 뒤흔들 수는 없더라도
그래도 우리는 우리다, 모두 하나같이
영웅의 기개를 가진 우리는,
우리는 시간과 운명에 어쩔 수 없이 약해졌다 하여도
강력한 의지로 싸우고, 추구하고, 발견하고
결코 굴복하지 않겠도다'
- 알프레드 테니슨 <율리시스>(1842) 중 일부
그 외 자질구레한 것들이 많은데 글을 쓰다보니 피곤이 몰려와서 하나만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눈썰미와 기억력이 좋으신 분들은 알아챘을텐데요. M의 책상에 놓인 유니언잭을 덮어쓴 불독은 영화 <팅터, 테일러, 솔져, 스파이>에서 MI6(서커스)의 수장 컨트롤의 책상에 놓여있던 불독입니다. 저 불독 인형이 돌고 돌아서 M의 책상에 놓이게 된 것이네요. 영화에서 머니패니가 본드를 보고 그러지요. '늙은 개가 새로운 재주를 배우려는 것 같다' 불독은 영국에 대한 애국심과 그런 애국심을 지닌 스파이들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위의 두 영화가 좋았던 시대에 대한 동경과 돌아올 수 없는 세월에 대한 우울한 정서를 내비친다는 점에서 공통점도 있습니다.
아무튼 시간되시는 분들은 모처럼 나온 재밌는 007 영화를 보시고 맘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에 또...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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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스카이폴>의 포스터부터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스카이폴>에는 여러 포스터가 있지만 이 포스터만큼 영화의 주제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은 없습니다. 영국 국회의사당 옆에 있는 빅벤을 거꾸로 세움으로서 과거가 되어버린 대영제국의 질서를 보여주는 포스터입니다. 이것은 냉전기 세계 정보를 주무르던 정보국인 MI6의 추락을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정형화된 스파이 영화 장르의 쇠락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빅벤의 침이 깊은 상처를 내는 것은 이제 실질적인 적은 '내부의 적'과 관련된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스카이폴>은 007 시리즈를 전체적으로 리부팅해서 부활시키는 영화입니다. 올해 개봉된 초대형 블록버스트인 <다크나이트 라이즈>와 <스카이폴>은 fall과 rise의 수직하강과 상승, 몰락과 부활을 모두 주요 테마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카이폴>은 007과 M, 그리고 MI6를 밑바닥까지 떨어뜨린 후에 장르를 시리즈를 부활시키는 반면,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가면을 벗음으로서 평범한 인간으로 부활하는 부르스 웨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리즈의 마무리를 짓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제임스 본드와 Q와의 첫만남이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임스 본드에게 신무기를 제공하는 인물(그리스 신화로 치면 헤파이스토스에, 배트맨으로 치면 폭스에 해당)인 Q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맡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밉니다. 그 첫 만남의 장소가 비밀 기지나 과학 실험실이 아닌 미술관이라는 점은 어떻게 보면 엉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이 장면은 많은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장면은 영국이 자랑하는 전설적인 감독인 알프렛 히치콕의 <현기증>(1958)의 갤러리씬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영국이 자랑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제 제임스 본드가 갤러리에서 본 그림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임스 본드는 Q와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1838)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림을 보면, 트라팔가르 전투에서 나폴레옹 군을 무찌르며 위용을 자랑하던 테메레르호가 이제 그 쓰임을 다하고 증기선에 이끌려 항구로 해체되러 가는 모습입니다. 일몰을 배경으로 증기선에 이끌려 가는 범선의 모습은 그 시대를 다한 영웅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Q가 제임스 본드를 보고 나이와 정력이 다했다고 하면서 '자신은 잠옷을 입고 노트북을 들고도 당신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디지털 시대에 유효기간이 다한 아날로그 영웅에 대한 조롱을 하는 것입니다. Q가 본드에게 (이 시리즈의 신무기들에 비한다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무기를 줍니다. 본드가 실망하는 내색을 비치자 "왜 폭탄이 장치된 볼펜이라도 기대하셨어요?"라고 얄미운 핀잔을 줍니다. 이제 제임스 본드와 싸우는 적들도 이런 신무기가 아니라 보호망을 뚫는 해킹과 비밀정보를 동영상으로 공개해버리는 유튜브와 같은 것들입니다.
본드가 Q와 터너의 그림을 보고 있을 때 등 뒤 왼편에 보이는 그림은 <공기 펌프 안의 새에 대한 실험>(조셉 라이트 오브 더비,1768)이라는 그림입니다. 이것은 공기 펌프가 장치된 유리병 안에 새를 집어넣고 공기를 빼내는 실험을 기록한 그림으로 과학적 합리성 아래 새의 목숨이 죽어가는 것을 고발한 그림입니다. 중앙에 새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두려워하는 자매와 이를 설명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왼편에는 실험에 관심이 없는 연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오른 쪽에 밝은 하늘과 비어 있는 새장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영화와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죽어가는 새의 모습이 MI6에서 이용만 당하고 개죽음을 당하는 스파이들의 처지와 유사합니다. MI6 총체임자인 M을 모성(mother)로 대했지만 M에게 그들은 살인(murder) 기계일 뿐입니다. M이 제임스 본드와 실바를 버린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쉽게 먹혀들지 않습니다. 마치 그림 속에 아버지가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하려 해도 공포에 질려 있는 자매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림 오른 편에는 자유를 나타내는 맑은 하늘과 새가 있었던 새집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또 또 실바가 사는 섬에서 쥐를 퇴치한 에피소드에 대한 일화를 연상케 합니다.
배를 타고 섬으로 기어들어온 쥐들로 생활이 곤란해지자 실바의 할머니는 석유통에 쥐가 좋아하는 코코넛을 넣어두고 쥐를 유인합니다. 석유통에 쥐가 가득차자 할머니를 석유통을 닫아버립니다. 불을 붙이거나 바다에 버리지 않고 가만히 놓아두면 쥐들은 저희들끼리 잡아먹습니다. 최종적으로 두 마리만 남게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숲에 이 두 마리를 풀어 놓으면 이 쥐들은 쥐맛을 알기에 코코넛을 더 이상 먹지않고 숲의 쥐들을 사냥한다는 얘기.
실바가 본드에게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두 마리의 쥐가되어 자신들을 버린 MI6를 공격하자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본드는 한 마리의 쥐가 되기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로코코 시대의 화가 토마스 게인즈버러의 <아침산책>(1785)이 미술관에 본드가 앉아 있을 때 우측으로 보입니다. 이 그림은 결혼을 앞 둔 예비 부부인 윌리엄 할렛 부부의 초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혼으로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처럼 본드도 새로운 부활을 해야합니다. 몰락(fall) 이후의 부활(resurrection). 악당 실바에게 자신의 주특기가 부활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영화는 본드의 부활이면서 시리즈 자체를 새롭게 부활시키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굳이 꺼낸다면, 영화 초반에 잘못된 저격으로 본드의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이후 (남자) M의 비서로 근무하며 그에 대해 연정을 품는 본드 걸의 이름은 무려 '이브' 머니패니! 시리즈 내내 조강지처 역할을 하는 걸프랜드가 하나 생긴 셈입니다.
상하이 고층건물 저격씬에 맞은 편 건물에 얼핏 보인 그림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부채를 든 여인>(1919)입니다. 이 그림이 이 장면에 굳이 쓰인 이유는 뭘까요? 그림의 모델인 루니아 체호우스카는 모딜리아니의 부인인 잔 에뷔테른의 친구이며 유부녀였지만 모딜리아를 짝사랑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 속에 악당 실바의 연인인 세베린은 실바를 배신하고 본드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 이유 때문에 이 그림을 사용했을까요? 저격씬 이후 반대 건물에 있는 제임스 본드를 세베린은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한동안 쳐다봅니다. 그 모습이 모딜리아니의 그림처럼 신비로운 모습을 주는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보다 이 그림이 2010년에 파리의 한 미술관에서 도난당했다는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 도난당한 작품이라 악당들이 이 그림을 소유/거래하는 모습으로 찍기에 스토리 전개상 적합했을 듯합니다.
상하이 마천루에서 저격씬은 <스카이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씬 자체가 홀로그램을 이용한 미디어 아트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 장면은 007시리즈 두번째 편인 <위기일발>(1963)의 저격씬을 생각나게 합니다. 런던의 전통적이면서 고풍스런 면모와 대조를 보여주기 위해 제작진이 선택한 곳이 상하이입니다. 이국적이면서 최첨단의 상하이 모습은 수많은 네온사인과 수직의 아름다움으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영국은 비와 음습한 지하세계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는 해와 떠오르는 태양에 대한 극명한 대비입니다.
실바의 기지가 있는 섬은 거대한 석상들이 부숴져 나뒹굴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헨리 퓨슬리의 <고대 폐허의 장엄미에 압도당한 예술가>(1779)라는 그림을 닮아 있습니다. 이 그림은 붉은 분필과 세피아 톤의 수채화로 제작된 이 작품은 잃어버린 총체성, 사라져 버린 전체성의 세상에 대한 예술가의 비통함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이제 영웅의 힘은 잘려나간 조각상의 손과 발에만 있을 뿐입니다. 거대한 발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예술가의 모습은 영화에서 그들이 영웅이었던 시대가 사라졌음을 뒤늦게 깨달은 두 스파이(본드, 실바)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그런 몰락의 모습에 굴하지 않고 좋았던 시대를 다시 부활하려는 의지가 영화 후반부에 M이 청문회장에서 읽는 테니슨의 시 <율리시스>에 다시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비록 잃는 것이 많더라도
남아 있는 것도 적지 않도다
비록 우리의 힘이 옛날처럼 하늘과 땅을 뒤흔들 수는 없더라도
그래도 우리는 우리다, 모두 하나같이
영웅의 기개를 가진 우리는,
우리는 시간과 운명에 어쩔 수 없이 약해졌다 하여도
강력한 의지로 싸우고, 추구하고, 발견하고
결코 굴복하지 않겠도다'
- 알프레드 테니슨 <율리시스>(1842) 중 일부
그 외 자질구레한 것들이 많은데 글을 쓰다보니 피곤이 몰려와서 하나만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눈썰미와 기억력이 좋으신 분들은 알아챘을텐데요. M의 책상에 놓인 유니언잭을 덮어쓴 불독은 영화 <팅터, 테일러, 솔져, 스파이>에서 MI6(서커스)의 수장 컨트롤의 책상에 놓여있던 불독입니다. 저 불독 인형이 돌고 돌아서 M의 책상에 놓이게 된 것이네요. 영화에서 머니패니가 본드를 보고 그러지요. '늙은 개가 새로운 재주를 배우려는 것 같다' 불독은 영국에 대한 애국심과 그런 애국심을 지닌 스파이들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위의 두 영화가 좋았던 시대에 대한 동경과 돌아올 수 없는 세월에 대한 우울한 정서를 내비친다는 점에서 공통점도 있습니다.
아무튼 시간되시는 분들은 모처럼 나온 재밌는 007 영화를 보시고 맘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에 또...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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