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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막장글 복습하다 내용이 나와서..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골품제 역시 처음부터 완성판으로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물론 여러 부족이 하나의 국가로 묶이는 과정에서 귀족(부족장)의 위계를 정한다는 측면에서는
왕국으로서의 신라가 출범할 때부터 큰 골격은 정해져 있었지만요.
여기에서 큰 골격이란 지배층 신분이 일단 골과 품으로 나뉜다는 것이죠. (초기에는 골족과 1~5두품만 존재했습니다.)

골족은 부족장들이고 아주초기에는 평등한 관계(형제적 관계)였습니다. 두품족은 골족이 거느린 가신단으로 보면 될 거고요.
* 이 구조는 조폭 조직을 생각하는 게 가장 이해가 쉬울 거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종로파와 서대문파, 명동파 -_- 가 독자적으로 존재하다가 합병을 한다고 할 때
종로파 두목과 서대문파 두목, 명동파 두목은 (물론 세력의 크기에 따라 우열이 있겠지만) 호형호제 합니다.
설사 종로파 2인자가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이 명동파 전체보다 크더라도 명동파 두목은 종로파 두목과 형제고, 종로파 2인자는 두품족이 됩니다. (그래도 왕이 되는 부족의 두품족은 다른 골족 밑의 두품족보다 훨씬 고위였겠지만 말이죠.)

대체로 (우리가 아는) 골품제를 정비한 것은 법흥왕입니다.

큰 방향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진골'을 추려내는 겁니다.
사실 진골은 말 그대로 풀이하자면 과거로부터 내려온 여러 골족 중에서도 '진짜 골족'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 이 법흥왕 이후 불교식 왕명시대가 시작되고, 이때  진(眞)은 불교의 진리, 불법 등을 의미하는 것인데, 어쨋든 '진짜 골족'이라는 의미로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됩니다. **

골족은 부족장 출신의 고위 귀족이라고 했지만, 신라의 영토가 확장되면서
확장된 영토에 있던 부족장을 포섭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골족이 계속 증가합니다.
물론 초기부터 골족인 박, 석, 김씨의 가문도 세대를 거치며 계속 늘어났겠죠.
하지만 한동안 김씨가 왕위를 세습하면서 박씨, 석씨 중에는 (물론 김씨 중에도) 둘째의 둘째의 둘째 .. 정도 분가된 집에서 서서히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몰락하는 집안이 생겼을 겁니다. 원래부터 세력이 작았던 골족의 귀족도 있었을 것이고요.

따라서 최고 신분층인 골족 내부에서 특권층으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방법은 최고 신분층에 걸맞은 가문들을 추려내 '진골'로 격상시키고, 미약한 가문을 구조조정하는 것입니다.

다른 방향의 신분제 개혁 요구는 두품족에서 나왔습니다. 
당시 신라는 백제, 고구려와 경쟁 중이었으므로 실력을 발휘할 기회도 많았고 실력 자체도 중요했을 상황입니다.
군공을 세우거나 행정 처리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두품족이 당연히 있었을 곳이고, 신라 조정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인재풀이 넓어지는 것이 바람직했습니다. 이에 따라 두품족의 욕구를 반영하여 새로운 상위의 두품을 신설하게 되지요.

이렇게 해서 진골을 추려내고 남은 골족과 5두품 중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들 (혹은 가문)을 합쳐서 6두품을 신설하게 되는 것이죠.
신라 말기 상황까지 배운 우리 입장에서는 6두품 역시 두품족에 불과하고 골품제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고 알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5두품이라는 신분에서 한계돌파 ... 를 이루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공로에 따른 신분 상승의 실현은 두품족 귀족들의 꿈과 희망이 되었고, 여기에서 비롯된 활력이 신라가 통일을 이루는 내적 원동력의 하나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강등된 골족 입장에서는 기분이 별로였겠지요)

** 신라의 관직은 이벌찬 ~~~~ 급벌찬까지의 '찬'이 붙는 관직과 대나마 이하 이상한(?) 이름의 관직이 있는데,
원래 '찬'은 '간(干)'의 변형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간(干)'은 한(汗), 칸, 가한, 카간과 같은 계통의 명칭이고요. (칭기즈 칸이 유명하죠.)
즉, ~~찬 (간군 관등으로 부릅니다) 은 원래 부족장 출신 귀족 - 따라서 골족 -만이 오를 수 있는 관직으로 보이는데, 위와 같은 이유로 6두품은 아찬까지 승진할 수 있었죠.

그렇다면 성골은 무엇이냐...
성골이 정확히 어떤 원리로 구성된 집단인지는 아직 확정된 이론은 없습니다.
예전에 교과서로 배웠던 전통적인 이론 - 부모가 성골이면 자식이 성골 -은 너무 피상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아서 요즘은 거의 폐기되었고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대충 왕권과 관련하여 '왕위계승권의 범위 및 그 근거'에 해당하는 왕의 일가에 대한 존칭격이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성골이 등장하는 시기인 진흥왕 때는, 법흥왕 이후 중앙집권화 = 왕권 강화가 착실히 진행되어 온 상황이었죠.
이 시점에 들어와 왕들은 일반 진골 귀족과 자신의 가계를 차별화할 필요를 느낍니다.
이러한 노력이 불교식 왕명을 쓰는 것이나, 왕이 부처라는 사상을 가지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진흥왕은 자신을 전륜성왕에 비유했고요.
그리고 그 최종적인(?) 결과가 왕의 일가에 성골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죠.

어쩌면 우리 입장에서는 '왕이니까 신성해'라는 관념이 더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당시에는 정반대의 논리가 더 적합했던 것 같습니다.
'원래 신성한 혈통이니까 왕이다.'라는 것이죠. 이 논리는 필연적으로 부모(특히 모계)에게까지 소급되어
왕과 왕이 될 자를 낳은 사람들도 신성한 혈통이었던 것이었다.... 는 논리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초창기 이론 성골 남편과 성골 부인이 낳아야 성골이다.. 가 아니라 성골이니까 그 부모가 성골이다.. 가 되는 거죠)
실제로 신라에는 갈문왕 제도라는 것이 있는데,
왕의 장인 - 즉, 왕비의 아버지는 보통 갈문왕에 봉해집니다. 직계가 아닌 상태로 왕에 오르면 그 아버지도 갈문왕이 되고요.
(갈문왕은 보통 왕의 동생(왕위계승권 단절시의 보험)이나 왕의 가족이 '된' 사람의 추존을 위해 주는 것 같습니다.)
이무렵쯤 박씨가 왕비족으로 굳어지는데, 당연히 왕비인 박씨 성골과 그 아버지인 박씨 갈문왕과 박씨 성골도 존재하게 되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신라에서 성골이라는 차별화된 명칭을 쓰면서까지 강화하고 싶었던 왕권은 진골 출신의 태종무열왕 이후 확고해집니다.
김춘추 이후의 왕들은 더이상 '우린 성골이고 너네랑 달라'라고 강변할 필요 없이,
그 자신이 무열왕의 직계이자, 현재의 왕이라는 점 만으로 다른 귀족에 대한 신분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무열왕 이후로 신라 왕들은 '신성하니까 왕이다'가 아니라 '왕이니까 신성하다'라는 논리를 강변하게 됩니다.

덧붙이자면 ..
우리 민족이 수없는 침략을 받기만 하던 불쌍한 민족이라고 하는 것은 좀 동의하지 않습니다.
국가 체계가 확인된 시점만 쳐도 약 3천년 정도 되는데, 고조선이 한에 멸망한 거 말고는 중국(한족)과 서로 침략 관계는 별로 없습니다.
북로 남왜의 침입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하게 받았으니 횟수는 엇비슷할 거고요.
그런데도 유독 우리 민족이 수없이 '침략'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건 중국의 경우 본거지가 털려서 아예 주인이 바뀌고 그 바뀐 관계가 지금까지 내려오기 때문이죠. 현재 시점에서 중국 (민족)이 '만주족의 침략을 받았다'라고 표현하기가 애매하지요.
유럽도 마찬가지로 게르만 후손이 정착해서 섞여버린 상황에서 게르만족의 침입을 받은 불쌍한 민족으로 자평할 수는 없겠죠.
따라서 저 표현은 '그 오랜 세월동안 완전히 털리고 망해버려서 밀려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박정희 때부터 시작된 영웅 만들기, 민족신성화에는 거부감이 있습니다만,
그 역작용인지 민족을 비하하는 관점도 상당히 보이는데 그거나 그거나 같은 레벨의 작용반작용 같아요.

제 생각에 역시 가장 막장이었던 시기는 일제 시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현재를 사는 실존적인 존재로서는 언제나 '지금'이 살기가 어렵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