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저랑 잘 아는 분 중에 무역으로 자수성가하신 할머니가 한 분 계십니다. 이 분은 다른 부자들이 골프치고 명품 쇼핑할 때 문화 사업에 많이 관심을 기울이고 찾아다십니다. 후원도 많이 하시고요.

한번은 모단체(어느 단체라고는 제가 여기서 밝히지는 않겠습니다)에 후원금 100만원을 선뜻 기부하셨어요. 그 단체에서도 고맙게 생각할 일이죠. 돈이 없어 빌빌거렸는데 매년 백만원을 낼 생각을 하셨으니까요. 그러면서 이 할머니가 그 단체에서 한달에 한번 나오는 팜플렛을 좀 받아 볼 수 없냐니깐, 그 쪽에서 "그러시려면 만원을 더 내셔야 합니다"라고 하더래요. 할머니가 웃으면서 "저 방금 후원금도 냈는데 그거 하나 못주세요?"라고 재차 물으니깐 "별개의 문제라니까욧'하고 대답이 돌아오더랍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그럼 그 단체에 99만원만 후원금으로 받고, 1만은을 팜플렛 주는 비용으로 해달라고 하시지 그랬어요?"하고 물으니깐 그 할머니 씁쓸하게 웃더군요. 아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후원금을 100만원 정도 내는 후원자에게는 팜플렛 달라 안해도 챙겨주는 것 당연 한 것 아닌가요?

저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위와 비슷한 모단체에 제가 애지중지 모아왔던 서적들(그냥 폐지류가 아니라 엄청 가치가 있는 책들)을 10박스를 기증하겠다고 하니깐, 처음에는 좋아라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책을 보내기로 한 날에 갑자기 전화로 '죄송하지만.. 우리가 가지러 가지는 못하고 가져다 주실래요?'이러는 겁니다. 불쾌했지만 이미 박스 포장을 다 한 상태라.. 차에다 그 무거운 박스를 꾹꾹 눌러 담아 싣고.. 그 먼길을 달려갔습니다. 한참 기다리니깐 주차장에 직원 두명이 내려와서 고개를 까딱하고 카터에 싣고 올라가더군요. 그게 다입니다. 솔직히 제가 이걸 가지고 무슨 생색을 낼려고 한 것도 아니예요. 그곳 최고 담당자가 불러서 "알 선생님 감사합니다. 소중하게 모으신 책 유용하게 쓰겠습니다"하고 자판기 커피 하나 뽑아주면 됩니다. 내 이름 책에 박자는 것도 아니고 다른 뭔가를 요구한 것도 아네요. 그게 힘들면, 지나가다 마주치면 그냥 지나가는 말로 "저번에 주신 책 잘 받았습니다" 정도의 인사를 하면 기분 안 나쁘지요. 

정말 세상에는 융통성 더럽게 없는 인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안 그런 단체도 있겠지만 위의 두 단체는 정말 너무한 것 아닌가요? 앞의 할머니도 더 이상 후원을 할 생각이 없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선심 쓰고 기분 나쁜 일을 왜 하겠어요?

각종 단체들, 연말에 후원금 안 걷어지는 것을 두고 세상 각박해졌다고 한탄만 하지 말고, 잘 한번 챙겨보시길 바랍니다. 자신들이 후원자들에게 각박하게 대하지 않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