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어제밤에 생각해서 써놓은 글인데 어쩌다보니 오늘 낮에 올리네요. 제목이 좀 쎌수 있으나 야릇한 사진이나 동영상이 아니라 영화 표현의 윤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찍다보면 어쩔 수 없이 찍게되는 강간 장면이 있습니다. 범죄 영화나 사회 고발성 영화에 주로 이런 장면들이 들어갑니다. 보기에 따라 참 불쾌할 수도 있는 씬들이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정작 불쾌한 것은 강간 장면이 아니라 남성에 의한 여성의 육체를 유린하는 행위를 마치 고발하는 것처럼 해놓고, 카메라가 강간에 동참하는 느낌을 주는 영상들입니다. 일본 AV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 영화 중에 <매춘>과 같은 영화들도 매춘을 고발한다는 주제 의식을 가지고 찍었다고 감독은 말하지만 카메라는 남자의 시선으로 여성의 몸을 내리 훓으며 강간을 유도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럼 그렇지 않게 찍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요? 여성의 입장에서 강간을 당하는 고통을 보여주면서도,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지 않는 방법으로 그 씬을 성공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제대로 된 감독들이라면 이런 장면에 대해 고민을 했을 겁니다.

일본의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1926~2006)라는 감독이 있습니다. 영화 좀 보신 분들은 다들 아실 겁니다. <나라야마 부시코>, <우나기>, <간장선생> 등으로 해외 영화제에서 무수히 수상을 한 감독이니까요. 저는 (일본 영화에 국한해서가 아니라) 일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이마무라 쇼헤이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마무라 감독은 어떻게 보면 대단히 반일적인 감독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그가 말년에 우리 나라 영화 <로스트 메모리즈>에 역사학자로 출연한 것도 이런 맥락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카메라로 일본인들의 집단 무의식을 읽으려는 정신분석가이며, 일본 문화의 원형을 이루는 것을 탐사하려는 인류학자였습니다. 그 유명한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문하에서 조감독으로 있다가 뛰쳐 나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지요. 오즈가 만들어 낸 이상하게 정돈된 질서를 거부한거죠. 그것은 일본인의 표면일 뿐 일본인의 속내는 미신과 더러운 욕망으로 가득차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근친상간을 비롯한 비윤리적인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소재를 이용해서 일본인의 윤리를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개하는 <돼지와 군함>은 이마무라 쇼헤이가 1961년에 만든 초기 걸작입니다. 패전 후 미국군 기지가 들어서고 자신들이 운영하는 매춘사업이 단속의 대상이 되자 돼지를 기르게 되는 야쿠자 일당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미군들에게 강간 당하는 장면을 이마무라 감독이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남자 친구와 싸운 하루코는 클럽에서 만취가 되어 춤을 추며 놉니다. 그러다가 미군 세 명에게 끌려 모텔로 들어섭니다. 미군 수병들이 그녀를 장난 삼아 침대에 던져버립니다. 카메라는 하이 앵글 위치에서 수병 세명을 앞에 두어 닫힌 구조를 표현합니다.




갑자기 술이 깬 하루코는 이들의 틈에서 빶 나가려고 시도를 하지만 남자 세명을 당해내기는 역부족입니다.
하루코의 불안한 눈빛이 보이고 두번 째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카메라는 그녀의 위치에서 로우 앵글로 미군 수병들을 바라봅니다. 역시 닫힌 구조입니다. 




하루코가 모텔을 빠져 나가려고 여러번 시도하나 여의치 않습니다. 그러다 카메라가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구조로 바뀝니다. 여기서부터가 핵심입니다.
강간 당하는 장면을 최대한 생략하면서 여자의 입장에서 이 혼란을 어떻게 표현할까? 이 다음부터는 사진을 옆으로 해서 시간의 경과가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보시겠습니다.
 







카메라가 마치 천장에 붙어 있는 선풍기처럼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왼쪽 오른 쪽으로 30도, 90도 이런 식으로 살짝 돌다가 갑자기 한 방향으로 급격하게 돕니다. 하루코의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리고 카메라의 회전이 돌연 멈추었을 때 수병들의 행위는 멈추어 있고, 하루코는 침대에 쓰러져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노출 장면은 단 하나도 없지만 그녀의 고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지요.

영화들을 보다보면 가끔식 모순 되는 장면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폭력에 대해 고발하는 장면에서 폭력을 선동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찍는 경우가 그런 경우입니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이 씬은 그렇기에 한번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