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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어느 봄날, 그 뜨거웠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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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01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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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어느 봄날, 그 뜨거웠던 역사

2002.4.28.일요일
딴지 교양역사 보급우원회

 옛 이야기 한 토막

맨날 요즘 얘기만 하니까 재미없는 독자들을 위하여, 오늘은 서비스로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 드리도록 하겠다.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까지는 아니고, 공장 주인이 마음만 먹으면 무제한으로 직원들 일을 시킬 수 있던 때, 보통 하루 12시간에서 16시간 근무는 기본으로 하던 때, 그에 맞서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권을 주장하던 때, 그 때가 이 이야기의 배경이다. 1886년 미국 시카고 되겠다.

8시간 노동법은 벌써 그보다 20년전에 법으로는 만들어졌지만 한번도 제대로 시행된 적은 없던 터였다. 당시는 우리가 괴물로 생각하는 (혹은 반대로 위인으로 모시는) 칼 마르크스니 레닌이니 하는 사람들이 살아서 걸어다닐 때였다. 사회주의 운동이 막 불붙기 시작하던 때 그들이 처음으로 했던 게 8시간 노동, 즉 일주일 48시간 노동 운동이었다.

무슨 옛날 얘기가 첨부터 재미 없냐구? 어허 씰데없는 소리... 재미있다니깐 그러네. 참을성 없긴...

당시 보수층 : 8시간 노동? 그걸 왜 국가가 법으로 강제하는가. 공장마다 자율적으로 노사가 정하는 것이고 시장경제주의의 원칙에 따라 운영하도록 해야 경제가 발전한다.

당시 노동자 : 노동자는 사주의 노예가 아니다. 우리를 파트너로 인정하라.

이거나 그거나 뭐....

지금이랑 똑같다. 서양의 사회주의 운동이라는 게 뭐 대단한 체제전복을 외치던 그런 건 아니었다. 지금 주5일 근무제나, 100년전의 8시간 노동제나, 그거나 그거나 뭐...

암튼, 1886년 5월 1일, 시카고의 노동자 8만명은 시카고 중심부인 미시건 애비뉴에 모여 8시간 노동 요구 선언을 한다.

이틀후인 5월 3일,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파업중인 맥코믹 공장의 노동자들이 회사 앞 공터에서 집회를 갖고 있었다. 파업이 일어나자 공장주는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직원들로, 그러니까 사측 노동자들로 공장을 돌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한참 집회가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라 있는데, 마침 교대시간이 된 사측 노동자들이 퇴근하느라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들을 목격하자 파업 노동자들은 흥분했다. 연설을 듣던 파업 노동자들은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고, 이것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발포, 2명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만다.

이 소식이 퍼져나가자 노동자들은 분개했다. 그들은 다음날 5월 4일 저녁 시카고 시내 '헤이마켓 광장'에서 대규모의 인원이 모이는 항의 집회를 열겠노라고 선언했다. 당시 시카고의 시장은 카터 해리슨이라는 인물. 해리슨 시장은 이 집회를 원천봉쇄할 것인가 허가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결국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라'는 단서조항을 붙여 이 집회를 허가해 준다.

저녁이 되자 노동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인원은 2천명 정도. 해리슨 시장도 현장에 나왔다. 그리고는 밤 10시경까지 집회가 진행되는 것을 구경했다. 밤이 되자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고, 늦은 데다 비까지 내리자 대부분의 시위대는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마지막 연설이 시작된 순간 해리슨 시장도 "오늘의 집회는 평화적이었다"고 선언하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막판에 이른 집회엔 불과 3백명 정도만이 남아 있었다. 경찰 병력은 176명. 가만히 놔두면 별일 없이 끝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 지휘자가 느닷없이 큰 소리로 이렇게 명령한 것이다.

  "국민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당장 해산하라!"

그 말과 동시에 시위대를 덮친 경찰 병력이 곤봉으로 노동자들을 마구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혼비백산, 정신 못 차리고 우왕좌왕하며 두들겨 맞고 있는데... 그런데 이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꽝 하는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누군가 경찰을 향해서 준비해 온 사제 폭탄을 던진 것이다.

폭탄이 터지고 동료경찰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경찰은 광분했다. 그들은 시위대를 향해서 마구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7-8명 정도가 총에 맞아 죽었고, 부상당한 사람은 100명도 넘었다. 총소리와 피와 폭력이 난무하는 그 자리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죽은 경찰도 7명이나 되었다. 그 중 6명은 동료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니까 그때 경찰은 놀라고 분노한 나머지, 속된 말로 눈이 뒤집혀서 마구 쏘아댄 것이었다. 사실 그럴만도 하다. 폭탄이 터지는데....

1887년 시카고 경찰이 발행한 <시카고 경찰의 역사> 라는 책 안의 삽화. 철저한 탐문 수사 끝에 침대에서 자고 있는 테러 용의자를 체포하고 있다는 그림 설명이 붙어 있다. 
 

그 다음날, 신문은 난리가 났다. 사제폭탄까지 준비한 불순세력, 광란의 폭동, 한밤의 살인극, 이런 단어들이 지면을 뒤덮었고, 8시간 노동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도 그 사건으로 인해서 쑥 들어가버리고 만다. 8명의 운동 지도부가 구속되었고, 결국 이 중 7명은 결국 사형을 언도받게 된다.

이 판결은 말도 안되는 판결로 악명이 높다. 현장에 있지도 않았고 이 시위와 전혀 관련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노동운동 지도부니까 배후공모라도 했을 거 아니냐며 사형이 선고되었기 때문이다. 사형선고까지 너무나 일사천리로 진행된 점을 들어 노동계는 '폭탄 테러는 노동운동을 파괴하기 위한 자작극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과연 누가 범인인지, 진실은 아직까지 아무도 모른다. 역사의 미스테리로 남은 것이다.

이 재판에서, 이들 중의 대부격이었던 파슨스라는 사람은 유명한 최후진술을 남겼다. '마음만 먹었으면 자본가의 길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노예로 살기 싫은 것만큼 남을 노예로 부리기도 싫다, 그것이 내가 이 길을 가는 이유이며 또한 그것이 나의 유일한 죄다'는 요지의....

사형이 확정되자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사형집행 중지를 요구하는 탄원서가 각지에서 쇄도하기 시작했다. 연대서명을 한 사람들의 숫자도 수만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또 반면에 '테러는 반드시 응징되어야 한다'는, 철저한 보복을 촉구하는 여론 또한 높았다.

요즘도 그렇지만 미국에서 사형집행권은 주지사에게 있다. 당시 일리노이 주의 오글스비 주지사는 전국 각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탄원서 때문에 결국 7명 중 두명의 형을 무기형으로 감형해 준다. 이 감형이 발표되던 날, 감형 대상에서 빠진 한 명은 감옥 안에서 자살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나머지 네 명에 대해서는 같은 해 11월 11일 사형이 집행되어 버린다.

이들의 두목 격이었던 파슨스는 집행장으로 끌려가면서 '라 마르세예즈'를 불렀다 한다. 당시 노동운동은 프랑스 혁명의 계승임을 자처했던 것이다.


당시 상황을 묘사한 그림
노동계에선 이들을 순교자라 칭했다.

애초에 구속된 8명 중 4명은 사형, 1명은 자살, 그리고 나머지 세명은 수감생활을 하다가 7년 후인 1893년, 사면되어 석방된다. 당시 새로 선출된 알트젤트 주지사는 이들이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재판이 졸속이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미 목숨을 잃은 5명도 알트젤드 주지사에 의해 사면 복권되었다.

이 때문에 그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리게 된다. 오늘 우리로 치면 용공세력, 불순분자를 엄호하는 자, 사상이 의심스러운 자, 사회혼란을 부추기는 자, 뭐 그런 식으로 씹힌 것이다. 연일 신문에 의해 맹폭당했고, 그는 하루 아침에 주류세력의 적이 되고 만다.

물론 그는 그의 그 결정이 파란을 불러올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소신대로 국민들을 설득하면 먹혀들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이것 때문에 그는 한때 전도유망하던 정치생명을 접었다. 다시는 정계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1893년의 사면 이후에 그려진, 알트젤트 주지사를 비난하는 한컷 만화. 
개를 풀어주는 사람이 바로 알트젤트다.  이 개들은 흰 옷으로 
상징되는 선량한 여자와 그 옆에 있는 아이를 물어뜯으러 달려간다.
그 뒤에 동상이 하나 서 있는 것이 보일텐데... 저 동상에 대해서는 
아래 자세히 얘기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반대로 노동자나 빈민들에게 알트젤트 주지사는 거의 신처럼 추앙받았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해주는 주지사의 존재는 그들에게 거의 구세주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용감한 사람, 그것도 권력을 가진 주지사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힘있는 사람, 높은 사람이 힘없는 사람의 권리를 대변해 주면 그는 순식간에 영웅이 되는 법이다.

 

 사건 이후


1889년의 사진

사건 3주년이 되던 1889년 5월 4일, 그 현장이었던 헤이마켓 광장에는 높다란 동상이 하나 세워진다. 죽은 7명의 동료 경찰을 기념하기 위해 시카고 시 당국이 세운 동상이었다. 한 손을 높이 들고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결연하고 엄숙하게 보이는 경찰 지휘관의 동상, 그리고 그 아래에는 "국민의 이름으로 평화를 명령한다"는 문구가 선명했다. 당시 진압을 명령했던 그 지휘관의 동상이었다.

물론 노동자들은 강력 반발했다. 마치 광주 금남로에 폭도 진압을 기념하는 전두환 동상이 세워진 셈이었다. 동상 철거를 주장하던 헤이마켓 기념사업회 측은, 나중에는 '정 그러면 알트젤드 주지사 동상도 같이 세우자'고 했지만 시카고 시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넓은 광장 한가운데 우뚝 솟은 동상. '국민의 이름으로 평화를 명령하노라'는 문구. 이것은 노동자들에게는 자존심의 문제였다.


1890년의 헤이마켓 광장 전경. 
우뚝 솟은 동상은 마치 세종로의 이순신 상을 보는 듯하다.

이들이 동상을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두들겨 깨기도 하고 낙서도 하고('아빠 나 누구에요?' 뭐 그런 거)... 결국 시카고 시는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동상을 유니온 파크라는 곳으로 옮기게 된다.

작은 파손은 있었지만 몇십년 동안 동상은 대체로 별 문제없이 잘 서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1927년, 도로에서 뛰쳐나온 한 자동차가 이 동상을 들이박아 버렸다. 아래 기단 부분은 부서지고 동상은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 날의 날짜는 공교롭게도 5월 4일, 바로 헤이마켓 사건의 기념일이었다.

경찰은 공식적으로 '뺑소니 차량이 도망가다가 도로에서 이탈한 우연한 사건이었다'고 발표했지만, 이 운전사가 '거만하게 서 있는 저 동상 평소에 밥맛이었다'고 말했다는 기록도 전해져 온다. 과연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었는지 아니면 고의였는지, 역사의 작은 미스테리였다.

그로부터 다시 이삼십년이 흐르면서, 동상을 다시 헤이마켓의 원래 자리에 복원하자는 운동이 서서히 일어났다. 죽은 경찰관 7명의 후손들이 일으킨 운동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들이 국가를 위해 순직하셨는데 그걸 기념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1958년, 동상은 다시 헤이마켓으로 돌아왔다. 처음에 있던 위치보다 60미터 정도 옮겨간 곳이었다.

그러나... 동상은 68년의 뜨거운 여름의 와중에 다시 수난을 당하게 된다. 68년은 전세계적인 저항운동이 일어난 때였다. 유럽을 휩쓴 68 혁명은 대서양 건너 미국에도 불어닥쳤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이 젊은이들의 가슴에 분노의 불을 지른 것이다. 히피와 비틀즈, 청바지와 LSD와 기타와 저항, 베트남전과 반전시위, 바로 그 시절이었다.

1955년부터 76년 죽을 때까지 20년도 넘게 시카고 시장을 했다. 현재는 그의 아들 Richard M.Daley가 2대째 시장을 역임하고 있다. 미국 정계의 거물이며 지금까지도 시카고 시민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당시 시카고 시장은 리차드 데일리라는 사람이었는데, 68년 4월 발포명령을 했던 것 때문에 당시 학생운동계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다. 학생연맹 (우리로 치면 전대협 정도 될까? SDS라는 약자로 불렸다) 측은 경고의 의미로 68년 5월 4일, 헤이마켓 사건이 일어난 기념일날 새벽에 이 동상에 검은 페인트를 칠해 버렸다.

이후 데일리 시장과 학생운동 그룹과의 관계는 더더욱 악화되어갔고, 결국 '웨더맨'이라고 불리던 SDS 내의 한 파벌이 69년 10월 5일 이 동상의 다리 사이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해서 폭파해 버리고 만다. 동상은 부서진 채 삼사십미터나 날아가 버렸다.

시카고 당국은 즉각 동상을 수리해서 다시 세웠다. 1970년 5월 4일, 사건의 84주년 기념일날 재건립식이 열렸고, 데일리 시장은 축사에서 학생운동권의 폭력을 강력히 우려하는 연설을 했다. 그러나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해 10월 5일, 첫 번째 폭파가 일어난 일주년 기념일, '웨더맨 언더그라운드'라고 이름을 바꾼 같은 단체가 동상을 또다시 폭파해 버렸다! 두 다리가 잘라져서 날아갔고, 몇 킬로미터 밖에서도 그 폭발음이 들릴만큼 큰 폭발이었다.

데일리 시장은 "우리는 다시 동상을 세울 것이다"라고 즉각 선언했다. 이듬해 1월 동상이 다시 복구되자 그는 동상에 24시간 순찰을 붙였다. 경찰은 8시간 3교대로 24시간 내내 동상을 지켰다. 이것을 본 좌파들은 당시 이렇게 선언했다. "자랑스런 웨더맨 그룹이 순찰차 1대와 경찰관 5명을 무력화(immobilize) 시켰다."

그러나 동상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런 인력을 낭비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경찰은 동상을 다른 위치로 옮겼다. 경찰의 안방, 바로 시카고 경찰국 건물 내부의 현관 로비에 갖다 놓은 것이다. 그런데 또 시간이 가면서 경찰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동상 하나 때문에 경찰 건물 내부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76년, 시카고 경찰은 동상을 또다시 다른 곳으로 옮긴다.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조차 없는 곳, 시카고 경찰대학 중앙홀이었다. 물론 이 곳의 경계는 철통 같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경찰대학생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이 동상을 볼 기회가 없었다.

오늘날 이 동상은 여전히 이 자리에 있다. 일반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만든 동상이 이제는 접근이 봉쇄된 곳에 꼭꼭 숨겨져 있는, 이상한 결말이 난 것이다.

한편, 원래 동상이 있던 헤이마켓의 그 자리는 한동안 기단만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한때는 그 기단 위에 누군가가 올려 놓은 마리아상이 놓여 있었다. 커다란 기단과 어울리지 않는 작은 마리아상 하나, 그러나 지난 96년 도시 재개발 정비가 추진되면서 기단과 마리아상은 철거되어 사라졌다.

그 뜨거웠던 헤이마켓, 그 자리에는 오늘날 그때를 되살려주는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다. 아주 작은 표지판 하나만 빼면 말이다.

동상이 서 있던 자리임을 알려주는 표지(위)와 그 표지가 놓여있는 조용한 거리 (오른쪽)

 

 그리고 노동절

이렇게 헤이마켓 사건의 소용돌이가 가라앉는데 미국은 100년 이상이 걸렸다. 그때 1880년대 노동자들이 요구했던 8시간 노동법은 1935년,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하에서야 정식으로 법률로 정해지게 된다.

한편 1886년의 헤이마켓 사건, 그리고 이어진 8명의 구속과 재판은 그 당시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의 석방 탄원에 수만명이 참여했다는 것은 위에서 얘기했고, 이 사건은 전세계적으로 노동운동의 표상이 된 것이다. 조직화되기 시작하던 노동운동에 불을 붙인 것이 바로 헤이마켓 사건이었다.

1889년, 전 세계의 사회주의자와 노동운동가들이 모인 제 2 인터내셔널은 8시간 노동 결의대회가 시카고에서 열렸던 5월 1일을 노동절로 정하고 이듬해부터 전세계적인 시위를 조직하기로 결정한다. 기념 행사는 각국의 실정에 맞게 치르되, 전세계가 같은 날 대대적인 집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하여 1890년 5월 1일, 각국의 노동자들은 세계 제 1회 메이데이 행사를 치르게 된다. 이것이 메이데이, 그러니까 노동절의 시작이었다.

메이데이는 원래 유럽지역에서 봄축제를 여는 날이었다. 5월 1일은 겨우내 가두어 기르던 가축을 야외에 풀어놓기 시작하는 날, 즉 여름의 시작을 의미했다. 리본으로 치장한 메이폴(maypole)을 세우고 그 주변에서 춤을 추며 남녀 짝짓기를 하고, 메이킹과 퀸을 뽑고, 남녀간의 사랑, 봄, 야들야들한 설레임, 아지랑이 같은 부드러움, 그것이 바로 메이 데이였다. 과거 우리나라 여대에서 '메이퀸'을 뽑는 행사가 열린 것도 서양의 이 풍속의 영향이었다.

1886년 5월 1일 시카고 노동자들이 8만명이나 모일 수 있었던 것도 이 날이 축제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림 클릭하면 크게 나온다) 

메이데이는 노동절과 봄축제, 두 가지 다른 것을 의미한다. 프렌더개스트의 1901년작 (위)와, 모스크바의 메이데이 행진을 묘사한 디에고 리베라의 1956년작 (좌)

우리나라에서는 45년 해방 직후, 좌익 측의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전평)과 우익의 대한독립촉성 노동총연명(대한노총)의 양대 노동단체가 5월 1일 메이데이 기념 행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전평의 메이데이 행사는 48년 금지되었고, 대한노총의 행사도 57년 이후로 폐지되었다.

대신 대한노총의 창립기념일 3월 10일을 '근로자의 날'로 정해 59년부터 기념행사를 실시해 왔다. 5월 1일을 기념하는 것은 빨갱이들이 하는 짓이기 때문에 불온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80년대말 노동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전노협이 결성되면서 노동절을 5월 1일로 환원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특히 89년부터 그 운동이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경찰은 89년 5월 1일의 집회를 원천봉쇄했다. 그러나 노동계도 물러서지 않았다. 메이데이는 하나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다음해인 1990년은 메이데이 제정 100주년인만큼, 메이데이 기념식도 못 가지는 것은 세계적으로 쪽팔린 일이기도 했다. 결국 89년 5월 1일은 막는 경찰과 가두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는 노동계, 이렇게 양자간의 충돌로 끝났다.

다음해, 100주년이 되는 1990년의 메이데이. 역시 경찰은 집회를 원천봉쇄했다. 그러나 미리미리 준비한 덕분에 서울대에서 메이데이 100주년 기념 행사가 꽤 큰 규모로 치러졌고, 이는 34만명이 참여하는 5월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결국 정부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94년, 3월 10일이던 '근로자의 날'을 5월 1일로 변경했다. 아직까지 '메이데이'라는 명칭 대신 '근로자의 날'이라는 용어를 쓰기는 하지만 그러나 5월 1일은 94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유급휴일로 공식 지정된 것이다.


올해 2002년 5월 1일은 수요일이다. 많은 독자 여러분들이 이 날 출근하지 않고 쉬게 될 것이다. 그날 노는 독자 여러분, 노는 거야 좋지만 왜 노는 건지는 알고 노셔야 하지 않겠는가....

노동운동을 좋아하건 혐오하건, 국제적인 지식과 감각이 있건 없건, 우리는 좋든 싫든 이미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지금부터 116년 전, 바다건너 미국 시카고의 한 귀퉁이에서 일어난 일을 기념하며 우리는 하루를 쉬는 것이다.

참고로 요즘 철쭉이 필 때다. 철쭉으로 뒤덮인 산, 얼마나 이쁜지 아시는지..? 휴일날 어두컴컴한 데서 술만 마시지 말고 어디 가까운 곳에 나들이라도 다녀오시길 바란다.

'근로자의 날'이라는 딱딱하고 건조하기 이를데 없는, 말라 비틀어진 듯한 이름을 붙여 놓기에는 너무나 좋은 계절의 하루이다. 메이데이는 노동절일 뿐만 아니라, 새 봄이 활짝 피어나는 사랑의 축제일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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