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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장모님 생신이라 처가집에 가야하는데 영 발걸음이 안 떨어지네요.
이런 말하면 참 부끄럽지만 처가가 골수 보수집안입니다. 장모님 집안은 일제시대 지주였고, 장인 어른 쪽은 박통 때 사업을 일으켰죠.
두 분 다 인품은 좋으시고, 남을 위해 봉사도 많이 하십니다. 하지만 정치적 성향만은 어김없이 새누리당 쪽이죠.

두 분의 딸, 그러니까 제 아내는 이런 사실을 부끄러워하더군요. 아내가 어릴 때 옆집에 박종철 열사가 살았습니다.
박종철 열사랑 아내랑 친했다고 하네요. 그 때 사진을 보면 중학생 정도의 남자 아이와 유치원생 쯤의 여자 아이가 손을 잡고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농담 비슷하게 "와.. 이 사람 아직 살아 있었으면.. 너랑 결혼했을 수도 있겠다"라고 하자, 울 아내가 "그러면 더 힘든 세월이었을지도 몰라.. 이 오빠가 민주화를 많이 앞 당겼잖아"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얼굴이 화끈한 적도 있지요.

제 아내는 이 사진을 지금도 가지고 다닙니다. 집안 내력이 부끄러웠는지 공부를 한국 근현대사, 그것도 박정희 시대에 포커스를 맞추어서 했습니다.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고 나서 교직으로 나갔죠.

요즘도 박정희 시대에 대해 수업을 할 때면 아이들에게 그 사진을 보여주면서 박종철 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봅니다.
그런데 처부모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박정희에 대한 종교적 맹신이 있습니다. 아내가 자신의 전공이 이 쪽인지라 여러 근거를 들어 반박을 해도 '니가 전교조에 가입해서 잘못 된 생각을 하는거지'라고 하십니다.

오늘 처가집에서 하루 묵고 내일 처가 집안 어른들이랑 식사를 하면 틀림없이 이번 대선 이야기를 할 건데 참 걱정스럽습니다.
지난 번에는 처삼촌 되시는 분은 저희들 보고 "역사 공부 좀 제대로 해라"는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하더군요. 이번에 보면 또 무슨 소리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