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1.
<레 미제라블>을 이제야 뒤늦게 봤습니다. 아직까지 상영관에는 사람들로 꽉찼더군요. 3시간에 가까운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던데, 저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저는 배울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지 남이 좋아하는 영화에 싫다는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압니다. 잘난 척하고 튀려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이 영화는 '영화로서' 배울게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음악은 아름답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습니다. 하지만 노래가 전면화 될 때 생기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이 영화를 옥죄이게 만듭니다. 이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과 같은 뮤지컬과 달리 모든 대사가 노래로 제시됩니다. 배우의 연기도 노래하는 동안에 이루어져야 하는 제약이 생깁니다. 게다가 노래를 미리 녹음하고 그 노래에 맞추어 립싱크하는 방식이 아니라 동시녹음을 했어요. 이 방법이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배우들의 노래가 뮤지컬 배우들의 노래 솜씨보다 떨어지지만 동시녹음으로 인한 감정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하지만 연출면에서는 문제가 생깁니다. 톰 후퍼 감독은 노래하는 배우들의 감정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배우가 노래 부를 때 망원렌즈를 사용해서 카메라를 당깁니다. 또 한편, 웅장한 노래가 끝날 때는 풀 샷으로 곡을 마무리합니다. 이런 패턴이 너무 자주 반복되죠. 노래 위주이다보니 씬과 씬의 구별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노래에 끌려가다보면 영화 속의 시간이 훌러덩 훌러덩 넘어가는 느낌마저 들죠. 클라이맥스가 노래 한 곡, 한 곡에서 이루어지다보니 내러티브상에 있어야 할 클라이맥스는 무뎌지기끼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대선 이후의 느꼈던 패배감에 대해 힐링이 되었다고 하는데.. 저는 글쎄요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현실과 유사한 대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노랫말 속에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려서인인지 저는 무덤덤하더군요. 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들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하고픈 말은 이 것이 영화 매체적 특성에서 발생하는 영화적 감동이라기 보다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훌륭한 뮤지컬에서 나오는 감동이 아닐까하는 것입니다. 영화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려운 영화인 것 같습니다. 톰 후퍼 감독은 뮤지컬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영화 매체의 속성을 뮤지컬에 시녀처럼 끌려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감독으로서 자존심의 문제인데.. 별로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같더군요.


2. 
<세션 : 이 남자가 사는 법>은 장애인의 성문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장애인들도 성적 충동을 느끼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까요? 영화에서는 섹스 치료사가 나와서 6단계의 치료법을 장애인인 남자 주인공에게 가르쳐 줍니다. 가르친다고 말했지만 실제 섹스를 하지요. 자칫 장애인을 소재로한 섹스 영화가 되지 않기 위해 감독은 무척 신경을 씁니다. 섹스 씬에서 숏을 아주 짧게 잡고 많은 대화를 나누게 하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인물들의 감정을 제시하는 방법은 서툽니다. 남자 장애인은 독백과 신부를 찾아가서 고해성사를 하는 방식으로, 여자 섹스 치료사는 녹음기에 상담일지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섹스와 사랑에 대해 새로운 것을 느끼게 해주기는 하지만, 제게는 독특한 소재에 방점을 둔 기획이 뛰어난 영화 정도였습니다.


3.
<더 임파서블>은 가장 기대를 안 한 영화였는데 세 편 중 제일 좋았습니다. 2004년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쓰나미 피해를 다룬 이 영화는 <오퍼나지 - 비밀의 문>을 만든 스페인의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이 2년에 걸쳐 공을 들인 영화입니다. 재난 영화하면 언뜻 생각나는게 <타워링>, <포세이돈>, <해운대> 같은 영화일 겁니다. 재난이 있고, 여러 인물들 사이에 갈등이 있고, 그 와중에 영웅적인 인물이 나타나 탈출에 성공한다는 식의 이야기들 말입니다. <더 임파서블>은 그런 영화가 아닙니다. 태국 휴양지를 찾은 이완 맥그리거와 나오미 왓츠는 3명의 아이들을 둔 중산층 부부입니다. 이들이 엄청난 해일을 만나고 가족은 헤아졌다가 다시 만나면서 이야기가 끝납니다. 싱거운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영화는 놀랍습니다. 바요나 감독은 관객의 심리를 자로 잰 것처럼 정확하게 파악하고 숨가쁘게 밀어 붙이고, 자연스런 감동을 만들어냅니다. 감독의 역량은 영화 시작 10분만에 판가름납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 비행기 씬이 있습니다. 맥그리거-왓츠 가족이 비행기를 타고 태국으로 가는 장면인데, 스토리상으로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지만.. 얼마나 촘촘하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지를 한번 보십시오. 게다가 쓰나미 씬도 정말 놀랍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들어도 이보다 잘 만들 수 없을 겁니다. 상영관에서 영화가 끝나기 전에 달려 가셔서 보십시오.... 실망 하시면 제가 술을 사겠습니다. 맘에 드시면 제게 밥을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