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제 카카오 스토리에 쓰는 영화일기입니다. 원문대로 평어체 그대로 옮깁니다.



"유년 시절 나를 바라보았던 영화들". 장 루이 쉐퍼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고하며 이런 표현을 썼다. 내가 영화를 본 것이 아니라 영화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 영화를 이렇게 의인화시켜 생각할 때, 나와 영화는 어떤 관계가 되는 걸까?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초여름이 시작되어 목덜미에 땀이 제법 송글송글맺힐 때 처음으로 프랑스 문화원을 찾았다. 루이스 자네티가 쓴 <영화의 이해>를 한 손에 들고서 말이다. 그것은 일종의 객기, 허세가 아니었을까? 원래 보려던 소피 마르소의 <라붐>은 보지 못하고 엉겹결에 본 영화는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다 파국을 맞이하는 영화... <쥘과 짐>이었다. 프랑스어 대사에 영어 자막으로 나온 그 영화를 나는 그때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그만 상영관을 나올 때, 그 영화를 언젠가 다시 만날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쥘과 짐>도 떠나는 내 뒷모습을 한참동안 지켜 봤을 것이다. 
그 후에 여러 번 이 영화를 봤다. 교육방송 채널에서도,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서도, DVD와 블루레이를 통해서도, 대학 영화모임에서 주최하는 상영회에서도, 술을 마셔야만 견딜 수 있었던 슬픈 시절에도 나는 그 영화를 봤고, 영화도 나를 봐왔다. 
작년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 전작전을 시네마테크에서 보면서 나는 <쥘과 짐>이 그동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영화에 대한 나만 알고 있는 작은 비밀. 즉 <쥘과 짐>은 소용돌이 구조이며(잔느 모로가 영화 중간에 부르는 노래 제목도 '소용돌이'다) 그것은 트뤼포가 자신이 존경하는 히치콕의 거대한 소용돌이 영화 <현기증>을 보고 멜로드라마로 만들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나는 확신한다. 이 확신은 오랫동안 서로를 지켜봐왔던 연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이렇듯 예술작품은 오래 전부터 나를 쳐다봐왔고 나는 그 시선 속에 성장해왔던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