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어제 영화관에서 데이비드 O 러셀의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을 봤습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로맨틱 코미디이지만 스크루볼 코미디라고 할만큼 많은 대사가 속사포처럼 발사됩니다.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은 로맨틱 코미디에 정형화된 패턴, 그러니까 근사한 남자 주인공에 아름다운 여주인공의 조합을 무너뜨립니다. 이 영화의 남여주인공은 모두 정신증을 앓고 있습니다. 따지고보면 주인공 남녀 뿐만 아니라 남주인공의 아버지도 강박증을 가지고 있고 지나치게 인내심이 강한 어머니도 어딘가 이상해 보입니다. 남자 주인공의 친구도 아내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부를 과시하며 삽니다. 한번씩 찾아오는 경찰도 이상하고, 정신병 환자를 인터뷰하려는 옆집 아이도 제 정신이라고 할 수 없죠. 심지어 정신병원 의사도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모습은 실성한 사람의 그것이예요. 프로이트가 말한 "우리는 모두 정신증 환자다.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경우입니다.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폭력을 휘두런 댓가로 팻(브레들리 쿠퍼)은 정신병원에서 8개월간 치료를 받고 나옵니다. 그 사이에 아내는 떠나갔고 가족들은 그를 여전히 환자 취급을 합니다. 그런 팻에게 수호천사 같은 여자 티파니(제니퍼 로렌스)가 나타납니다. 그녀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고 난 뒤 외로움에 떨며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다가 회사에서 쫓겨난 상태입니다. 두 사람은 계약을 맺습니다. 티파니가 팻의 아내와 다시 연결이 되도록 도아주는 대신, 팻은 티파니가 출전하길 원하는 댄스 경연대회에 파트너가 되는 것입니다. 이 와중에 도박병에 걸린 아버지(로버트 드 니로)는 거액을 걸고 친구와 '이중내기'를 합니다. 자신이 응원하는 필라델피아 미식축구 팀이 이기고 팻-티파니가 댄스 경기에서 평균점을 받으면 그가 거액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중내기'라는 설정도 재미있는 거죠. 내러티브상으로 팻과 티파니를 서로를 도와주지만 한편으로는 서로가 사랑을 할 수 있을까하고 내기를 거는 것이랑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팻을 연기한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도 인상적이지만 티파니 역을 맡은 제니퍼 로렌스는 눈부신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 티파니는 어떻게보면 <시라노 드 벨쥬락>의 이야기에서 남자 주인공인 시라노와 같은 역할이지요. 편지를 전해주는 전령의 역할 말입니다. 그리고 모든 로맨스물의 공식인 "편지는 제 자리에 도착한다"가 정확하게 지켜집니다. 이 말의 의미는 영화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영화의 전체 주제는 앞에서 말한 대로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이상한 부분(영화에서는 정신증)을 서로 서로 인정하고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팻의 아버지가 필라델피아 축구팀을 응원하고 프랭클린 대통령을 존경하는 것도 나름 이유가 있죠. 필라델피아의 어원은 형제애(brotherhood)라는 의미입니다. 인종과 종교, 문화와 신념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관용을 베풀면서 공존하는 것을 추구하는 도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영화에 팻의 친구로 흑인이 나오고 정신과 상담의사가 인도인인지도 이해가 가실 겁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인 셈입니다.

이 영화를 보실 때 주의해서 보실 점 몇가지를 지적해보겠습니다. 저는 영화보는 내내 이 영화의 편집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영화보는 방법을 조금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바로 아실건데 이 영화에서 좁은 공간내에서 창의적인 편집과 사운드를 이용한 편집은 기가 막힙니다.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은 <쓰리 킹즈>(1999) 때부터 자신의 스타일을 조금씩 만들어 내더니 <파이터>(2010) 이후로 자신의 인장이 확실해졌습니다. 주의해서 보면 움직이는 카메라 아래에서 편집의 리듬감이 매우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을 팻의 시점 숏 위주로 카메라가 움직이죠. 예를 들면 팻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 왔을 때 벽에 걸린 형의 사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오른 쪽으로 움직여 형의 사진 액자 옆의 빈공간을 보여주죠. 그 다음에 아래로 카메라가 움직이는데 팻의 액자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팻의 시점 숏으로 카메라가 움직이면서 팻의 느낌과 관객의 느낌을 일치시킵니다. 점프 컷이나 더블 액션으로 숏을 붙여 파편화된 장면들도 많이 보여주는 것도 이 영화의 특징입니다. 그것은 팻의 정신증을 그대로 보여주는 느낌을 듭니다(이런 식의 장면 연출은 러셀 감독이 좋아한다는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장면들이 있습니다. 팻이 아버지랑 몸싸움을 하고 있을 때 짧은 숏으로 불륜 현장의 기억을 나누어 제시하는 장면이 대표적인 것이죠. 팻이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를 다 읽고 창밖으로 던질 때, 카메라는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책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의 숏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더블 액션으로 연결시켜서 리듬감을 주죠. 
영화 초반에 팻이 흑인 친구를 엄마의 차에 태우는 장면이 있습니다. 엄마와 팻, 흑인 친구가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카메라는 세 사람이 타고 있는 차 뒤꽁무니에 버스가 다가오는 것을 보여줍니다. 조수석에 카메라맨이 앉아서 뒷자석을 비추면서 다가오는 버스를 보여주는데 버스가 클락숀을 누르죠. 저는 이 장면에서 "와~"했습니다. 네, 별 것 아닌 장면이지만 그 장면에 클락숀 소리가 그 때까지 분위기를 살짝 바꿉니다. 저는 CG로 장난치는 것보다 이런 평범한 것 속에서 비범함이 묻어 있는 영화들에 더 많은 흥미를 느낍니다. 
영화 초반에 씬과 씬이 넘어갈 때 문을 이용한 편집이 많습니다. 문을 닫으면서 다음 씬으로 넘가는 형태이죠. 그렇게 한 이유가 있죠.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댄스 경연대회에서 여태까지 나왔던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다 열고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음악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나도 유심히 지켜보십시오. 사람과 사람이 부딪힐 때 음악이 끊어지고 연결되는 것이 물흐르듯이 매끄럽습니다.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지금 외출을 해야해서 이만 줄일겠습니다. 시간되시면 이 영화 꼭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