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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은 밤.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어느 골목길을 얼큰하게 취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비틀비틀 흥얼흥얼 집을 향해 걸어가던 그는 맞은 편 가로등 아래에서 울고 있는 한 여자를 보았다.
조심스럽게 그녀 곁을 지나쳐 가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소리쳤다. 으악!!!!

그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해도 그녀를 뿌리칠 수 없었다.

그녀의 차가운 손이 그의 목을 졸랐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

"난 복수를 해야해 ! 남자들은 다 죽일테야! 히히히....."

다음 날 아침 남자는 가로등 아래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동네 사람들은 그 여자의 저주라며 수근거렸다. 영문을 모르는 한 남자 대학생이(이름이 아마 동호였을 것이다) 한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저주라니 무슨 소린가요?"

그가 들은 자초지종은 이랬다.

어느 날 밤 늦은 귀가길을 재촉하고 있던 한 여자의 뒤를 수상한 남자들이 따라가기 시작했다. 눈치챈 여자는 그들을 따돌리려 했지만, 끝내 골목 막다른 곳에 몰리고 말았다. 여자는 살려달라며 목놓아 부르짖었지만,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여자를 도와주지 않았다. 여자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던 사람이 없는게 아니었지만, 누구 하나 여자를 구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남자들은 징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한 발 두 발 여자에게 다가왔고, 여자는 자기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을 선택했다. 그녀는 그녀의 목에 감겨있던 스카프를 풀어 가로등에 걸었다.

동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여자가 목을 메는 순간 그녀를 따라오던 남자들이 놀라 도망쳤는데, 하나는 죽고 다른 하나는 실성했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가로등에 걸려 휘날리는 피묻은 스카프를 바라보며 이사라도 가야지 못살겠다며 한탄했다.

대학생은 그런 동네 사람들에게 세상에 귀신이란 없다. 그걸 증명해 보이기 위해 자신이 저 스카프를 가져가겠다고 말하고는 가로등으로 기어올라가 스카프를 집어들고 내려왔다. 그리고 휘적휘적 그 자리를 떠났다. 동네 사람들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수근거리다, 하나 둘 씩 흩어졌다.

그리고 그날 밤. 그 가로등에는 다시 그 피묻은 스카프가 걸려 휘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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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아마도 90년대 초반 학급문고 마다 한 권씩은 있었을 거라고 생각되는 '오싹오싹 공포체험'에 수록된 에피소드 중의 하나입니다. 제목은 '피묻은 스카프'. 어릴 적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복원해봤어요. 당연히 원본이랑 다른 부분도 있고 그렇겠죠. 힝..... ㅠ.ㅠ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무섭기로 소문난 이야기는 여자기숙사 화장실에 출몰하는 몽유병 환자 이야기였습니다. 한 열명한테 물어보면 일곱명 이상은 그 이야기를 꼽았어요. 그게 아닌 사람들은 어둠속에 울리는 전화라고 중동에 돈벌러 같던 아버지가 돌아오던 비행기가 추락했는데 그 시간에 정확하게 집 전화가 울려서 아버지의 마지막 목소리를 듣는 이야기를 드는 사람들이 많았구요.

그런데 전 이 이야기가 제일 무서웠습니다. 덕분에 아직까지도 복원이 가능할 정도로 기억하고 있는 걸 수도 있어요. 이유는 엄청 간단했죠. 당시 이 책의 모든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선전됐었기 때문이었다는거,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공간이 현실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거죠. 그 때 저는 밤에 혼자 나가는 걸 아주 무서워했는데, 억지로 심부름을 하러 나가면 항상 인적이 드문 횡한 길가에 가로등이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그 가로등에 스카프가 걸려있는 건 아닌지 불안해 하며 짧은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 가겟방에 들어가 담배나 소주 그리고 심부름값 대신인 과자를 한 봉지 샀더랬죠.

대가리가 굵어지고 어느새 밤에 혼자 돌아다녀도 아무렇지도 않게 된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그렇게 무섭던 이 이야기는 허점이 많았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여자가 죽는 장면은 소리로나마 들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귀신이 된 여자가 복수를 위해 남자들을 죽이는 장면은 누가 봐서 그렇듯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거에요. 귀신이 모래요정 바람돌이도 아니고(기억하겠지만 바람돌이는 소원을 하루에 하나씩 밖에 못들어주죠. "애들아 잠깐 소원은 하나씩 하루에 한 가지 바람돌이 선물"ㅋㅋ) 하루에 한명씩 사람을 죽이는 조건이 붙어있지 않다면 목격자 역시 살아날 길이 없을 텐데 말이죠.

재미있는 것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똑같다고. ㅋㅋ 언젠가부터 이 책이 다시 읽고 싶어져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발견한 블로그에서 이 책을 리뷰를 읽었는데, 그 블로그의 쥔장이 정확하게 저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http://jampuri.egloos.com/3704748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습니다.

http://shaw.egloos.com/3693579

신기하더군요. ㅋㅋ

여담이지만, 이 이야기 때문에 송파구 방이동은 내게 절대로 발을 들여놓으면 안되는 장소 0순위였습니다. 그리고 제 기억이 맞는다면 전 아직까지는 한 번도 방이동에 간 적이 없어요. 물론 전 제가 어디있는지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모르는 극단적인 방향치이기 때문에 간적이 있는데 모르고 있을 가능성도 농후하지만요. ㅋㅋ

이 책 다들 기억하고 계십니꽈?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