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일과 중에 영화제에 참가해서 영화보고 글을 쓴다는 것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좋은 영화를 만났을 때 기쁨을 뭘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어서 내가 본 영화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제게 힘을 줍니다.
피곤함을 무릅 쓰고 영화를 본 뒤 바로 쓴 리뷰입니다. 끝까지 읽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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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아이를 바꿀 것인가? 아버지를 바꿀 것인가?

실화를 참조한 신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2011) 이후 이년 만에 내놓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이다. 이혼한 부모를 결합하려는 아이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것이 전작이라면, 이번 작품은 아이에 대해 알지 못하는 아버지의 불안과 고민, 그리고 가족 내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다루고 있다. 고레에다 감독이 이번 영화의 소재로 삼은 것은 병원 측의 실수로 아이가 뒤바뀐 오키나와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이다 ‘낳은 정이냐, 키운 정이냐’라는 자극성 높은 소재이기에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중에 가장 통속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쉽게 말해버릴 영화는 아니다. 혈연이냐, 같이 살아온 세월이냐는 표면적 주제에 불과하고 그 밑에는 훨씬 더 큰 주제인 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정의, 가부장 중심의 가족이 해체된 뒤 나타나는 대안 가족의 문제 등이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더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고장난 아버지, 고장난 아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영어 제목은 ‘부전자전’이라는 의미의 'like father like son'이다. ‘부전자전’이라는 사자성어보다 ‘~처럼’이라는 ‘like’가 들어갔을 때 이 영화의 주제가 더 잘 드러난다. 왜냐하면 후쿠야먀 마사하루가 맡은 영화의 주인공 료타는 아들이 자신처럼 성공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료타는 사회적으로 성공은 했지만 매정한 인물이다. 아내가 같이 근무했던 동료 이야기를 꺼내자 직장을 그만둔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다고 말을 잘라버리고 아들 케이타에 대해서 규칙과 복종을 강요한다. 그에게 가정은 회사고 가족은 회사의 구성원과 같다. 건물 미니어처를 앞에 두고 ‘가족적인 것, 가정적인 것을 더 집어넣어!’라고 부하 직원에게 지시하는 장면은 료타의 그런 성격을 밀도 있게 표현한 것이다.  

케이타의 혈육상 아버지인 사이키(릴리 프랭키)는 료타의 반대편에 있는 인물이다. 6년 동안 쉬지 않고 일해 온 료타와 달리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지 않는다’는 신조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을 즐긴다. 철물점을 운영하기에 고장 난 장난감도 척척 고치는데 이 능력은 료타와 지낸 세월 동안 고장 난 케이타의 마음마저 움직인다. 반대로 케이타와 바뀐 류세이는 료타의 집에서 생활이 힘들다. 류세이가 화장실 거울에 치약으로 그린 괴물 그림은 료타의 모습이다. 흥미로운 점은 료타가 괴물 그림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쇼트 다음에 사이키의 집에 생활하고 있는 케이타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쇼트를 이어 놓은 것이다. 사이키의 부인이자 케이타의 친엄마인 유카리는 케이타를 끌어안으며 이렇게 말한다. ‘고장 난 거니? 아줌마가 고쳐줄게’ 사실 고장 난 것은 케이타만이 아니다. 료타 역시 망가진 인격을 가지고 있다.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료타와 그의 아버지의 관계에서 료타의 양가적 감정이 드러난다. 물질적 성공만 강요하고 료타의 친모를 버리고 새 여자를 선택한 아버지. 아버지가 선택한 여자를 료타는 단 한 번도 어머니라고 부른 적이 없다. 자신과 피가 다르다는 이유에서였다.  

닮음과 바꿈

료타가 인정하는 ‘닮음’은 피처럼 근원적인 것이지 함께 생활하면서 만들어지는 후천적 ‘닮음’이 아니다. 료타의 이런 생각에 아내들은 반기를 든다. 미도리는 ‘피가 연결 안 되어도 닮는다. 부부들도 그런 것’이라고 하고, 사이키의 아내 유카리는 ‘닮았네, 안 닮았네 하는 건 아이와 연결되지 않은 남자들이나 하는 소리’라며 이런 생각을 일축해버린다. 두 가족의 첫 대면 씬에서 인서트로 사이키와 류세이의 쥬스 잔에 꽂힌 스트로를 나란히 보여 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피가 다른 아버지와 아들이지만 주스를 마실 때 스트로를 씹는 버릇이 닮았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에서 바꾸는 것은 바뀐 아들이 아니다. 가정과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가 바꿈의 진정한 대상이다.

영화는 료타가 바뀌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료타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케이타가 디지털 카메라에 담아 놓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난 후다. 이 장면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눈부신 연출력이 돋보인다. 료타가 혈육의 아들이자 현재의 아들인 류세이의 모습을 디지털 카메라로 확인하면서 카메라 셔터를 점점 뒤로 돌린다. 류세이의 마지막 사진이 끝나고 난 뒤부터는 케이타의 모습이 시작된다(이때 카메라는 타임머신이 된다). 카메라를 점점 뒤로 돌리자 케이타가 찍은 자신의 모습이 나타난다(카메라는 료타의 시선을 아이의 시선으로 돌려놓는다). 아이와 놀아주지 않고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이때 카메라는 거울이 된다).

공간의 미학

영화의 마지막. 료타가 케이타를 찾아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용서를 구하는 장면에서도 비슷한 연출력을 느낄 수 있다. 료타를 만나기 싫다며 뒷문으로 도망친 케이타. 그를 쫓는 료타. 케이타는 종종걸음으로 축대 위로 난 작은 길을 걸어가고 료타는 케이타가 바라보이는 밑에 길을 따라 걸으며 용서를 빈다. 아빠의 진심 어린 사과를 케이타가 받아들일 때가 되면 평행으로 나 있던 길도 하나로 모이게 된다. 드라마, 인물의 동선, 공간이 하나로 맞물리는 기적의 순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공간에 대한 재치 있는 활용은 료타와 사이키의 집을 보여줄 때도 드러난다. 료타의 아파트를 원경으로 잡을 때 그것은 차갑고 딱딱한 료타의 모습을 닮았고, 무엇보다 료타의 회사 회의실에 놓인 미니어처를 그대로 옮긴 것과 같다. 집안을 보여줄 때도 각자의 방으로 분리되어 공간은 넓지만 답답한 느낌을 준다. 료타의 아내 미도리가 창에 붙어 울거나 류세이가 들어와서 생활하게 될 때 창에 붙어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갑갑함을 감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에 비해 사이키의 집은 작은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트여있다. 거기에 아이들이 거실에서 엉켜 잠을 자는 모습은 영락없는 캠프장의 모습이다. 이 부분에 주목해서 다시 생각해보자. 앞서 말한 대로 영화는 료타가 바뀌는 과정이다.

확장된 가족, 캠프가 되는 가정

11월부터 그다음 해 8월까지의 월 이름을 자막으로 표시한 것도 그 동안 심경의 변화를 겪으면서 료타가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케이타가 초등학교 입학 면접 테스트를 받는 11월의 장면은 사실 료타가 가장으로서 테스트를 받는 것이다. 좋아하는 계절이 뭐냐는 질문에 케이타는 여름이라고 대답하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학원에서 가르쳐 준대로 아빠와의 캠핑이 즐거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막으로 표기된 마지막 달인 8월은 여름이고 케이타는 사이키의 집에서 아이들과 정말 캠핑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료타의 집에서 류세이의 생활은 어떤가? 영화에서 료타, 미도리, 류세이가 처음으로 같이 눕게 되는 것은 료타가 거실에 텐트를 치고부터다. 두 가족이 모두 캠핑장에서 캠프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 료타가 케이타와 화해를 하고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사이키의 철물점으로 들어갈 때, 카메라는 하이앵글로 그 공간을 비추고 있다. 그 철물점은 캠핑장의 텐트 모양이다. 피가 다른 두 가족이 하나의 가족으로 합쳐질 때 케이타가 초등학교 면접 시간에 거짓으로 말했던 아빠와 캠핑에 대한 추억이 실재가 되는 것이다.    

* 덧붙임  

‘닮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고레에다 히로카즈 만큼 오해를 많이 받은 감독도 드물 것이다. 허우 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허우 샤오시엔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환상의 빛>(1995) 으로 극영화 데뷔를 하자, 언론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미켈란젤로 안토오니를 닮았다고 성급한 평가를 내렸다. 인물의 실종, 데드 타임으로 표현된 바다의 풍경 등이 그런 근거로 제시되었다. 두 번째 작품인 <원더풀 라이프>(1998)에서는 기억과 죽음에 성찰을 다루었는데 이제 알랑 레네의 작품과 닮았다고 언론은 지적했다. 이후에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옆에는 여러 감독의 초상화가 옆에 놓였다. 가장 많이 거론된 감독은 오즈 야스지로였는데 정작 감독 본인은 오즈보다 나루키 미세오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도 여러 감독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아이를 고의로 바꾼 간호사가 법정에서 ‘료타씨 가족의 행복이 질투 나서 아이를 바꿨다’는 고백을 하는 장면에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유괴 스릴러 <천국과 지옥>(1963) 을 떠올리는 데는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어른들의 모습을 몰래 촬영한 케이타의 사진 촬영 장면에서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2000) 을, 그리고 영화의 라스트 씬에서 케이타를 나란히 따라 걸어가는 료타의 모습에서 화가 난 딸을 쫓아 길 건너에서 나란히 걷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늦봄>(1949)의 아버지가 포개진다. 하지만 수많은 ‘닮음’에도 불구하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는 독창적인 면이 있다. 영화의 스승들에서 찾아지는 유사성과 고레에다 감독의 특징을 엇비슷하게 보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