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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제가 본 최고작은 단연 왕빙의 다큐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였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여기에 남깁니다.
글이 무척 길기에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올릴 예정입니다. 제가 가진 힘을 모두 짜내어서 전력투구의 마음으로 쓴 글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셨으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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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리뷰(1) - 감금된 세월

나는 왕빙을 보지 못했다. 그를 다큐멘터리계의 수퍼스타로 만들어 놓은 9시간 11분의 대작 <철서구>(2003)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철강 도시 센양의 쇠락과 중국 노동자의 삶을 그린 이 영화는 21세기 최고의 다큐멘터리라고 한다). 문화혁명 이후 한 여인의 일대기를 채록한 3시간 4분의 <중국여인의 연대기>(2007)도, 고비 사막에서 원유를 채굴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그린 9시간짜리 대작 <원유>(2008)도, 부모에게 버림받은 세 자매에 대한 다큐멘터리 <세 자매>도 난 보지 못했다. 운이 나쁘게도 내가 처음 본 왕빙의 영화는 <바람과 모래>(2010)다. 중화인민공화국 건설 후 모택동은 중국 관료주의의 체질 개선을 위해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사막 농장 개척에 투여한다. 이른바 하방(下放) 운동으로 불리는 이 운동으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바람과 모래>다. 운이 나쁜 이유는 이 영화가 지금까지 왕빙이 만든 유일한 극영화이기 때문이다. <바람과 모래>는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걸작으로 분류될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나면 뭔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왕빙은 무엇보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지 다큐멘터리식 영화의 감독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난 여태 왕빙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왕빙을 보았다. 드디어 그의 다큐멘터리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운 좋게 그를 직접 보았다. 내가 본 영화는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2013)였고, 그의 모습을 본 것은 영화가 끝난 후 해운대 CGV 센텀 7관에서 2013년 10월 9일 밤 8시 40분부터 진행된 ‘관객과의 만남’ 시간에서였다.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잘 알다시피 정신병동에 들어가서 그 곳에 감금된 환자들의 모습을 찍은 다큐다. 정신병동을 다룬 다큐라는 정보를 들었을 때 우린 뭘 생각할 수 있는가? 머리 속에는 개념의 좌표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푸코와 아감벤으로 견적을 내기도 하고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티티컷 풍자극>(1967)과 같은 다큐나 밀로스 포먼의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1977) 같은 드라마에서 계보를 그려보기도 한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이미 비평의 틀은 다 짜여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정상/비정상의 구분, 육체적 존재/법적 비존재에 대한 뻔한 레퍼토리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과 달리, 3시간 47분의 시간 동안 내가 본 것은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 그게 다였다.

영화는 영화를 만든 사람을 닮는다. 천박한 인격의 소유자는 상스런 영화를 만들고, 품위 있는 자는 품격이 묻어나는 영화를 만든다. 감독의 인격은 스크린에 지문처럼 남게 된다. 그 흔적을 쉽게 찾지 못하는 것은 영화의 여러 요소들(빛, 움직임, 소리, 편집 등)에 감춰져 있어 그렇지 들춰보면 여지없이 남아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특히 더 그렇다. 다큐멘터리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관점을 리트머스 용지처럼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했다는 그 유명한 말, ‘영화는 세상에 대한 나의 예의’라는 말은 다큐에서 확연하다.

왕빙은 <철서구>를 찍고 난 뒤인 2003년 가을, 휴식 차원에서 베이징의 외곽을 거닐다 낡고 곧 무너질 것 같은 건물을 발견했다. 왕빙은 그 건물이 너무 이상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건물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건물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 잠긴 문 안을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생활하고 있었다. 잠시 후 흰 옷을 입은 간호사들이 나타나 그 곳이 정신병원이라고 말해줬다. 그 곳 사람들은 20년에서 30년, 많게는 40년을 그 곳에서 머물고 있었다. 충격을 받은 왕빙은 그들의 이야기를 찍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하지만 병원 측이 촬영을 허가하지 않았다. 정신병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찍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2007년 <중국여인의 연대기>가 칸 영화제에 공식 초청이 되고 난 뒤에 구체화되었다. 2009년, 왕빙은 베이징의 그 정신병원을 다시 둘러보았다. 그 사이 그 곳에 생활하던 사람들은 이미 많이 죽었고 병원 측의 입장은 여전히 촬영 불가였다. 이 프로젝트는 무산될 것 같았다. <세 자매>를 윈난에서 찍고 있을 때, 그 곳 출신의 친구가 윈난에도 베이징과 유사한 시설이 있다고 왕빙에게 알려줬다. 왕빙은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병원 측도 촬영을 허락해줬다. 그 안에서 카메라는 머물렀다. 병원 측에서 허락해 준 시간이 점점 끝나가고 촬영에 협조한 사람들과 촬영한 사람들이 ‘이쯤이면 되었다’라고 생각될 즈음에 카메라는 멈추었다. 그 기간이 4개월이었다.

카메라가 정신병원 안에 들어가도록 허용되었을 때 무엇을 렌즈에 담을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감독들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과 중국의 의료 시스템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다큐를 구성할 것이다. 왕빙은 그렇지 않았다. 목적과 주장이 우선시될 때, 카메라에 담기는 사람들이 수단이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가 3시간 47분 동안 보게 되는 것은 병동 사람들의 반복되는 일상이다. 웃고, 울고, 먹고, 싸고, 노래하고, 잠들다 깨어나는 일상. 가족과 사회로부터 잊혀 진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들의 반복된 행위는 그곳에도 시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시간이 멈춰버리면 삶도 사라질 것이다.

영화의 공간이 된 정신 병원에는 정신 질환자들만 수용된 곳이 아니다. 폭력범, 사기꾼, 살인범 같은 범죄인들과 종교적이거나 성적인 문제로도 구금된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 정보를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자막을 통해 알 수 있을 뿐이다. 영화 중간에는 개개인에 대한 어떤 구체적 정보도 알 수 없다.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에는 정신 병동의 사람들 중 스물 두명에 대한 이름과 정보가 나온다(라고 했지만 그 중에 한 사람은 남편을 면회 온 아내의 이름이다). 정보의 제시는 ‘마오량멍, 11년째 정신병원에서 생활 중’, 이런 식이다. 그 사람의 나이, 고향, 직업 그리고 무엇보다 병원에 감금 된 사연에 대한 내용은 단 한 줄도 없다. 이름과 병원에서 보낸 세월. 왕빙은 그들을 할퀴고 가버린 세월, 그 세월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물론 이 영화에도 병원의 폭력적인 모습이 그려진다. 병동의 지린내가 스크린을 뚫고 상영관을 가득 채울 무렵, 즉 병동의 환경에 관객이 점차 익숙해질 즈음인 대략 영화의 1/3 지점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비위생적 환경에서 남이 남긴 찌꺼기 밥을 먹는 사람들, 난동을 부리다가 수갑에 채워지는 사람, 주사약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때 누군가 말을 한다. “오래가둬 놓으면 진짜 정신병에 걸려! 진짜 정신병에 걸려! 법률에 위반되는 것을 하지도 않았는데 24시간 감시를 해! 말다툼만 했는데 병원에 가둔 거야!” 르포르타주라면 이런 장면만으로도 그 목적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왕빙은 더 나아간다. 사람에게 더 다가선다. 3년째 병동에서 생활 중인 우션쏭이 얼굴을 닦는 장면이 있다. 알몸인 상태로 돌아다니던 이 남자가 타올을 꺼내어 천천히 얼굴을 닦기 시작하는데 카메라는 오래 동안 그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속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다시 겉옷을 입는 일상의 동작이 천천히 수행될 때, 성스러운 느낌이 밀려든다. 바깥 세상의 윤리와 관습에서 해방된 자가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모습에서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것이다. 감옥 같은 병동에서 느껴지는 자유. 이와 정반대의 장면도 등장한다.




11년째 병동에서 생활 중인 쥬 샤오엔이 설날을 맞아 며칠 고향집에 가게 된다. 샤오엔의 노부모가 그를 대하는 태도에는 찬 공기가 인다. 노모는 끊임없이 잔소릴 하고 아버지는 그가 보기 싫은 지 아예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모처럼 들른 고향이지만 이야기 할 사람이 없어 샤오엔은 잡지만 뒤적인다. 병동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고향집. 그러다가 샤오엔은 집밖으로 나와서 하염없이 걷는다. 낮부터 슬리퍼를 신고 걷기 시작한 걸음은 밤이 되어도 멈추지 않는다. 샤오엔의 옆으로 차가 바람 소리를 내며 밤길을 달리는데 카메라는 그의 뒤를 조용히 따라간다. 한참을 뒤따르던 카메라가 어느 순간 문득 멈춘다. 샤오엔의 모습이 어둠 저편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카메라는 지켜만 본다. 그 순간 칠흑보다 더 어두운 샤오엔의 마음이 카메라에 담긴다. 돌이킬 수 없는 세월, 부서진 삶. 왕빙은 안다. 영화가 그의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왕빙은 안다. 카메라도 그의 어깨를 두드릴 수 없다는 것을. 왕빙은 안다. 그 순간 자신과 카메라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샤오엔의 심정을 담아내는 것이라는 것을.

연민의 정서까지 담아내는 다큐, 이것만으로도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왕빙은 더 나아간다. 샤오엔의 장면 뒤에 카메라는 다시 병동으로 들어와 있다. 이어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12년째 병원에서 생활 중인 마원더와 그를 병문안 온 아내 멍이우리엔의 모습이다. 이 부부는 이 영화에도 세 번 나온다. 영화가 2013년 1월부터 4월까지 촬영되었다. 그 사이에 병동에서 이 부부가 카메라에 잡힌 것만 세 번 이상이니 금슬이 좋은 편이다. 마원더는 병문안 아내에게 온갖 짜증을 부리는데 멍이우리엔은 너털웃음으로 남편의 응석을 받아낸다. 멍이우리엔이 가져온 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마원더가 혼자 먹겠다고 욕심을 부리다가 아내가 나무라자 병동의 한 사람에게 귤을 준다. 그 남자가 이렇게 말한다. ‘고마워요, 아빠’. 샤오엔의 씬 뒤에 붙은 이 장면은 바깥 세상의 가족보다 병동 안의 사람들이 진짜 가족 같은 느낌을 준다. 병동 안에서의 사랑. 우리가 그 다음 장면에서 보게 되는 것은 그런 사랑에 대한 것이다.

9년째 병동에서 생활을 하는 푸청이는 2층 여자 병동에서 3년째 생활하는 리청짜오를 사랑한다. 푸청이가 어두운 병원 복도를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청이’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리청짜오가 3층 창살까지 찾아온 것이다. 두 사람은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손을 잡고 입을 맞춘다. 카메라는 두 사람의 사랑을 장면을 담아낸다. 갑자기 사랑이 전염된 것 같다. 그 다음 장면에도 사랑의 장면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동성간의 사랑이다. 이불 속에 서로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 사이로 다른 남자가 알몸으로 들어온다. 이불 속에 두 남자가 같이 자면 복잡하다해도 막무가내로 끼어든다.

여기서 잠시 이 영화의 제목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이 영화의 영문 타이틀 'Til Madness Do Us Part를 직역한 것이다. 원제는 <펑 아이(Feng ai)>. 간체자로 疯爱, 번체자로는 瘋愛. 한자의 瘋(풍)은 정신병을 일컫는 말이다. 일반 적으로 ‘미쳤다’라는 뜻의 미칠 狂(광)을 쓰지 않고 瘋을 쓴 이유는 뭘까? 瘋은 ‘병들어 기댈 녁(疒)’ 부수 안에 ‘바람 풍(風)’을 쓴 글이다. 한의학에서 질병은 바람처럼 찾아오기에 바람이 들어간 질병 용어가 많다. ‘바람을 맞았다’는 뜻의 ‘중풍(中風)’이 대표적인 예다. 이에 비해 ‘미칠 광(狂)’은 부수가 ‘개사슴록’이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 가지고 있는 본성. 그것이 ‘미칠 광’이다. 狂이 내부에서 일어나는 충동이라면, 瘋은 환자와 무관하게 외부에서 찾아 온 질병. 샤오엔이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 끊임없이 불었던 바람처럼 미친 세상이 바람처럼 불어와 그들을 어둡고 칙칙한 그 곳에 가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의미를 더 명확하게 만든 것은 瘋 다음에 사용된 愛다. 왕빙은 정신병동의 환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다가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지금 뭘 찍고 있는 거지?” 그는 갑자기 고민에 빠졌다. 이들의 모습을 기록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사회적 고발을 위한 것인가? 하염없는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인가? 왕빙은 카메라를 멈췄다. 이 대답을 얻지 못한다면 카메라를 다시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친구가 왕빙에게 말했다. “맨 처음 생각이 뭐였는지를 떠올려봐”. 왕빙은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곳에도 사랑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봉인된 세월 속에서도 그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瘋 다음에 愛를 쓴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가슴이 먹먹하다 못해 얼어버릴 것 같은 샤오엔의 일화 다음에 사랑의 이야기들을 붙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영화의 첫 장면과 끝 장면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첫 장면에는 병원 침대 이불에 빛이 비치면서 시작된다. 이불이 들춰지면 동성애 커플로 보이는 남자 둘이 킥킥거리며 웃고 있다. 병동의 아침이 시작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어둑어둑한 복도에서 두 남자가 볼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남자가 말한다. “엄마는 살아 계시니?”. 다른 남자가 대답한다. “죽었어. 옛날에 죽었어”. 앞의 남자가 말한다. “네 엄마는 네가 안 오니까 귀신이 된 걸꺼야. 귀신이 되어서라도 걱정을 할까?”. 뒤의 남자가 대답한다. “바보 같은 소리하지마”. 이 말을 끝으로 병동이 어둠에 잠기고 영화는 끝이 난다.

3시간 47분의 시간이 지나갔다. 이 시간을 긴 시간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 말은 우리가 잠시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할 소리가 아니다. 영화가 끝나면, 자신이 있는 곳이 그 곳이 아니다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왕빙은 영화의 마지막을 걱정의 이야기로 마감한다. 영화가 끝나자말자 그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염려. 그들은 앞으로도 긴 세월을 그 곳에서 살다 죽을 것이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니, 우리가 그 곳에 있어야 한다. 영화는 끝났다. 그리고 왕빙이 내 앞에 나타났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