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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에서 이어집니다)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리뷰(2) - 왕빙과의 만남

다큐멘터리 감독은 똑같은 질문을 매번 다른 영화에서 받는다. ‘사전에 허가를 받고 촬영을 한 것인가요?’, ‘혹시 그 장면은 연출된 것이 아닌가요?’. 나는 이런 질문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낡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질문자는 연출의 윤리에 대한 문제를 건드리고 싶었을 것이다. 망치로 무릎을 두드렸을 때 발이 툭 튀어 나오듯 그 질문은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도 튀어나왔다. 촬영의 사전 동의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자.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은 사이클을 그릴 것이다.

Q: “병동에서의 촬영 장면은 환자의 동의를 얻은 것인가요?”

A: "네. 동의를 얻었습니다."

Q: "누구의 동의를 얻었습니까?"

A: "병원 측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환자들의 경우에는 가족들이 있는 경우, 가족의 동의를 얻었고 가족이 없는 경우에는 환자들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Q: 환자들의 가족이 환자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리고 정신질환자가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는 실제 두 번째까지의 질문과 답변이 있었고 다행히 세 번째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아마 입 안에 그 질문을 눙쳐 둔 사람들이 꽤나 있었을 것이다. 이 질문에서 우리가 얻을 것은 무엇인가? 머리 속에 이미 정해진 규준을 세워놓고 당신은 그것을 지켰냐고 물을 때, 그건 질문이 아니라 심문이다. 우리는 질문을 멈추고 더 들어야 한다. 왕빙은 이 질문에 ‘병원들의 적극적인 동의가 있었다.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협조를 했으며 병상태가 심각한 경우에는 촬영을 하지 않았다’라고 대답을 했다. 이 대답에 나는 허리를 굽혀 귀를 기울였다.

연출의 조작성에 대한 질문은 에둘러서 나왔다. ‘영화 장면 중에 환자가 신발 끈을 묶는 장면이 있는데, 왜 원 테이크로 찍지 않고 쇼트를 나누어서 찍었나요?’. 다큐에서 쇼트를 나누었다는 것은 행위자가 행한 행위의 동시성이 파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편집으로 감독이 그 장면들을 이어붙일 때,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가 조작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 이것도 규준과 관련된 것으로 다큐 영화의 경우, 흔히 나오는 질문이다. 왕빙은 조용히 말했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신체에도 장애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신발 끈 묶는 장면을 하나의 테이크로 찍게 되면 이 환자가 계속 실수하는 장면을 찍게 됩니다. 나는 그것을 찍고 싶지 않았습니다’. 카메라에 담기는 대상에 대한 예의. 나는 이 대답에 허리를 더 굽혀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내가 했다.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에서 내가 받은 가장 큰 감동은 감시자의 시선으로 영화를 찍지 않았다는 점이다. 거창하게 이야기 한다면, 감시와 규율이라는 근대의 시선이 이 영화에는 개입되지 않았다는게 내가 이 영화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나는 그것을 말하고 왕빙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영화에서 당신의 카메라는 사람을 내려다보지 않습니다. 카메라가 로우 앵글에서 지속적으로 올려다보는 것은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인가요?’. 영화사에 대한 조금의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건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다다미 쇼트를 의식한 질문이다. 고전영화시대 감독인 오즈는 주로 로우 앵글로 인물을 찍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카메라가 다다미에 바짝 붙을 정도로 낮은 위치였기에 촬영 감독인 아츠다 유하루가 위장병을 앓을 정도였다. 평자들은 이 다다미 쇼트를 인간을 경외감으로 쳐다보는 앵글이라고 하기도 한다.

왕빙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영화의 카메라 위치는 모두 가슴 높이입니다. 제가 쓰는 카메라는 큰 것입니다. 그걸 위로 올리면 그림이 좋지 않습니다. 환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저는 가슴 높이에서 찍습니다.’ 나는 이게 처음에 카메라 렌즈와 관련된 문제인 줄 알았다. 카메라 렌즈가 광각렌즈라서 그걸 높이 들면 뒤의 공간이 휘어져 보이기에 ‘그림이 좋지 않다’라고 말하는 줄 알았다. 마치 CCTV처럼 보이기에 그걸 피한다고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에 방점은 ‘환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에 있다. 환자들에게 더 가까이 찍으려면 단초점의 광각이 아니라 차라리 장초점의 망원렌즈로 찍어야 한다. 결국, 이건 렌즈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다큐를 찍을 때 카메라가 인물의 눈높이나 그 보다 위에 있을 때, 인물은 카메라를 의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림이 좋지 않’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곳은 정신병동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왕빙은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인물의 입장에서 카메라 앞에 그들이 놓일 때 부담감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영화를 글로 배운 사람과 마음으로 찍는 사람과의 차이다. 부끄러웠다. 나의 두 번째 질문이 통역을 통해 이어졌다. ‘이 영화를 찍기 전에 당신이 세운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요?’. 나는 사실 여기서 왕빙의 답변을 미리 생각하고 있었다. 비디제시스 사운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나 조명을 치지 않는 것, 인위적으로 장을 구분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야기 할 줄 알았다, 왕빙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바로 답변을 했다. ‘상대방이 불쾌감을 나타낸다면 찍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원칙을 어기며 억지로 촬영을 한다는 것은 제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나는 자리를 고쳐 앉았다. 우리는 종종 이론에 빠져 허방다리를 짚는다. 이론으로 영화에 대한 글을 쓸 수는 있어도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왕빙이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두 번 이상 한 말은 ‘인물에게 다가 간다’와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찍지 않는다’라는 말이었다.

왕빙은 병원에서 촬영 허가가 떨어지고 난 뒤에 5일 만에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5일이라는 시간은 그 많은 환자들의 얼굴을 파악하기도 부족한 시간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영화 속에 추측이 가능한 한 장면이 있다. 마지엔은 정신병동 생활이 5개월째에 접어 든 젊은이다. 마지엔은 병동 생활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지 불평불만도 많고 난폭하기까지 하다. 담배를 찾던 마지엔이 갑자기 병원 복도를 스무 바퀴 달리겠다면서 뛰기 시작한다. 이때 카메라가 같이 뛴다. 컴컴한 복도를 달리는 마지엔, 그를 뒤따르는 흔들리는 카메라. 한참을 뛰고 난 뒤에 마지엔이 웃옷을 벗으며 이렇게 말한다. ‘제기랄! 땀범벅이야!’ 그리고 카메라를 쳐다보고 웃으며 말한다. ‘당신도 나처럼 됐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야!’. 5일만에 그들의 마음을 사는 것은 그들과 보폭을 맞추는 것이었다. 나는 왕빙이 ‘내 영화에서 카메라의 위치는 항상 제 가슴 높이입니다’라는 말이 단순히 물리적 높이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심리적 높이를 포함한 말이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병동 생활을 시작한지 한 달이 되는 인티엔싱은 문을 발로 차고 난동을 부렸다고 남자 간호사에게 붙잡혀 수갑을 차게 된다. 수갑이 점점 조여들자 인티엔싱은 남자 간호사를 찾아가 수갑을 풀어달라고 한다. 남자 간호사가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거드럼을 피우자 인티엔싱은 이제 부탁을 넘어서 애원을 한다. 이때 카메라의 앵글을 주목해야 한다. 카메라는 인티엔싱의 턱 밑에서 90도 아래로 바짝 붙어 있다. 영화 중 가장 낮으면서 인물에 바짝 붙은 카메라 위치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수갑을 풀어달라는 인티엔싱을 우러러 보기에 비굴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왕빙은 인티엔싱이 가뜩이나 불안한데 카메라로 인한 심리적 불안감을 느낄까봐 그런 앵글을 선택했을 것이다. 인티엔싱은 비굴해 보이지 않는다. 애원보다 주장에 가까운 요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메라가 그에게 바짝 다가섰다. 이제 카메라는 인티엔싱을 피로한 육신을 떠바치는 지팡이가 된다.

소리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영화를 보다 이상한 느낌이 들 것이다. 영화 초반에 마지엔이 병원 복도를 무서운 속도로 내달릴 때 카메라도 따라 뛰는데 이상하게 마지엔의 발소리만 들릴 뿐 카메라를 들고 뛰는 카메라맨(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왕빙과 리우 시엔 후이, 두 사람이 담당했다)의 발자국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영화 후반에 앞서 말한 샤오엔이 슬리퍼를 신고 하염없이 걸을 때도 카메라는 그를 쫓아가지만 샤오엔의 슬리퍼 소리만 들릴 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것은 어렵지 않다. 카메라맨의 발소리를 후반 작업에서 지우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왕빙은 동시녹음과 자동노출을 철칙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사운드를 지울 리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카메라를 든 사람의 발소리가 나지 않는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카메라를 든 사람이 신을 벗고 따라 뛴 것이다. 왕빙은 마지엔을 따라 오물이 가득한 그 복도를 신을 벗고 따라 뛰었다. 왕빙은 샤오엔을 따라 바람 부는 밤거리를 맨발로 돌을 밟으며 따라 걸었다.

그렇기에 ‘당신은 환자들의 허락을 받고 영화를 찍었습니까’라는 질문을 해서는 안된다. 그건 정신병동의 사람에게 최대한 다가가 그들의 편에 선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질문이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뿐만 아니라 그 시간에 왕빙의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들 모두가 부끄러움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이 말을 기분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이제 이 긴 이야기를 마무리 할 때가 되었다. 누군가 왕빙에게 물었다. ‘당신의 영화는 당신의 나라에서 상영할 수 있나요?’. 왕빙은 슬프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뇨, 제 영화가 중국에서 상영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왕빙에게 중국은 정신병동이다.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를 가장 잘못 보는 것은 분노와 연민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이 영화를 곧 잊을 것이다. 왕빙이 정신병동에서 발견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일상의 반복으로 그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들은 사랑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왕빙도 마찬가지다. 그는 끊임없이 영화를 만들 것이다. 그것이 중국이라는 정신병동에서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왕빙의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