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영화 변호인 리뷰 - 그의 세계
- 작성일
- 13-12-27 23:13
이 글은 영화 "변호인"의 리뷰입니다. 당연히 영화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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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두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그의 세계에서 아주 열심히 살았다. 주어진 여러 과업들을 그는 성실히 수행했다. 그 어렵다는 시험에 어려운 환경을 딛고 합격했다. 그는 동료들의 천대와 멸시 속에서도 기가 막힌 아이템을 발굴해 지역 제일이 되었다. 꿈에 그리던 아파트에 입주해 가족과 행복하게 살았으며, 다가오는 삶의 위기에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마저도 갖췄다. 부족했던 날 자신이 저질렀던, 사소하다면 사소한 과오도 갚는 여유까지 생겼으며, 이제 부와 명예를 위해 다음 과업을 설정해 해결할 준비도 돼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세상 속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마 그 전에도 그런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테지만, 사실 "배부른 사람들이 세상 만만히 보고 노력하지 않고 투정 부리는 일"에 불과하다고 짐짓 무시하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랫만에 나간 동창회에서 만난 "비겁한" 기자 동창은 돈 많이 버는 자신에게 괜히 화를 냈으며, 국밥집 아들내미는 죽은, 그러나 단단하기 이를데 없는 바위에 언제든 깨질 것만 같은 계란을 던져야 한다고 평소와 다르게 역성을 들었다. 존경하고 의지하던 선배는 갑자기 일의 자격을 잃은데다, 자신이 제안한 꽤 괜찮은 일에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너와 나는 다른 세계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뒤에서 다른 사람들과 뭔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일들은 성공한 자신에게는 사실 이해하기 힘들 일이었고, 또 아마도 그에겐 그 일을 했을 때 다가올 앞날에 대한 본능적 불안감도 느꼈을 것이다. 그는 계속 자신이 성공했던 그 길 그대로 다가오는 과제들을 해치우면서 자신과, 가정, 사무실, 그리고 이웃을 위해 더 나아가 국가를 위해 달려갈 것이라 다짐한다. 그리고 그 수단은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자신이 무한히 신뢰하는 '법'이었다.
그러던 중 자신이 빚을 졌던 그 사람에게서, 간절한 부탁을 듣는다. 지금까지 스치듯 자신을 지나갔던 다른 세상의 이상한 일들이 우연히 조금 깊숙하게 자신의 세상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 일을 맡아 과제를 수행하며 그는 자신이 믿던 법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신에게 커다란 성공을 가져다 주었던 법은 원칙없이 권력자의 뜻대로 움직였다. 자신이 살던 세상의 법과 다른, 다른 세상의 법을 깨닿게 된 것다. 그렇게 그는 예전 운동권 말로는 "의식화", 과학사에서는 "패러다임의 전환", 심리학에서는 "게슈탈트 전환", 정치학에서는 "프레임의 재설정"이라고 말하는 순간을 겪게 된 것이다. 이 영화는 이렇게 그 주변의 커다란 두 세계의 법에 대해 논하고, 그 다른 법이 충돌하는 순간을 극적으로 다룬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는 두 세계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무수히 많은 세계와 그 속에 있는 원칙들에 대해 말한다. 부산신보의 기자는 거짓된 세상을 비난하지만, 스스로 자신이 비겁하다고 말하며 두 세계의 사이에서 자신만의 생존 원칙 속에서 살고 있었다. 적당히 불평하고 데스크에서 하란대로 하며 말이다. 또 공안 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던 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적당히 주어진 체계와 타협하며 피고인을 위해 형량을 조절하고 있었다. 판사도 마찬가지다. 판사는 주어진 체계를 수호하려하지만, 자신의 평판이 세간에 의해 훼손되기를 꺼리고 있었다. 송 변이 겪는 두 큰 세계의 중간쯤 어딘가에 다들 자신의 자리를 잡고 자신만의 세계의 법과 원칙 속에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영화 속 송 변은 순간순간 어떤 선택을 하여 중간 어딘가에 있는 세계에 머무를 수 있었다.
이 영화가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 중간 어딘가에 머물 수도 있었으며, 또 아예 외면할 수도 있었던 그가 자신이 믿었던 원칙이 자신의 세계를 넘어 지켜지는 것을 원했고, 그를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 원칙은 처음에 "이러면 안 되는 거 잖아요"라는 분노에서 시작해, 조금 더 보편적인 "형사소송법"으로 옮겨 갔고, 결국 법 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까지 거슬러 오른다. 각 단계에서 그는 타협을 할 수 있었다. 적당히 인정을 베풀고, 돈도 벌고, 명성도 얻을 수 있는 영리한 세계로 갈수도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그는 세상의 기대와는 다른 세계의 인물로 성장했다.
영화를 본 뒤 한 가지 질문이 내게 떠올랐다. 그래서 우리는, 아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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