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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이 글에 스포일러가 있나/없나를 따지지 말기 바랍니다. 영화 <변호인>의 가장 큰 스포는 극중 송우석 변호사인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며 그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을 봤습니다. 저는 이런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싫어합니다.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비판이 정치적 신념의 문제로 비추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러진 화살>에 대해서도 가급적 말을 삼갔고 <남영동>은 아예 보지도 않았습니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바로 말한다면, <변호인>은 그렇게 잘 만든 영화가 아닙니다. 내러티브는 지나치게 단선적이며, 캐릭터는 정형화되어 있고 편집은 마무리가 덜 된 것같이 거칩니다. 게다가 대사는 구호 같은 느낌이 납니다. 법정 장면에서 지미집을 이용한 카메라가 롱테이크로 한 바퀴 도는 장면은 너무 후져서 긴 한숨이 날 정도입니다. 몇몇 장면은 이미 우리가 봤던 다른 한국 영화의 것과 같습니다. 예컨대 도입부의 버스 안 장면은 <8월의 크리스마스>를 떠오르게 하며 단무지를 안 챙긴 자장면 배달원에게 면박을 주는 송변호사의 모습은 <살인의 추억>에서 영수증을 챙기는 박두만 형사의 그것입니다(물론 이것은 의도적인 오마주일 수 있습니다). 숨겨진 증인으로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내용은 법정 영화의 공식 그대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묘한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먼저, 자잘한 단점들을 뛰어넘는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입니다. 송강호의 연기는 압도적입니다. 법정에서 변호 도중 눈물을 머금고 목이 메여 잠시 말을 더듬을 때, 저는 이 배우가 의심할 것 없이 우리 시대 최고의 배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노력이나 계산으로 할 수 있는 연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밥집 아줌마 역할을 한 김영애씨의 연기는 어떤가요? 국밥 값을 갚으러 7년 만에 변호사가 되어 찾아온 송우석에게 그녀는 말합니다. ‘그게 뭐라꼬, 잘 묵었으면 됐지. 이래 얹혀있었노’. 카메라가 클로즈업으로 김영애씨의 얼굴을 잡았을 때,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표정이 보는 이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몇몇 장면은 대단히 암시적이고 훌륭합니다. 송우석이 출근하는 변호사 사무실 계단에 경찰에게 잡혀간 아들을 찾으러 국밥집 아줌마가 웅크리고 있던 장면이 그것입니다. 이 장면은 나중에 송우석이 국밥집 아줌마를 찾아와 달동네 집 앞에 웅크린 장면과 대구를 이룹니다.  ‘당신의 소중한 돈을 지켜드립니다’라는 명함을 파고 다니던 속물 변호사가 ‘서민의 소중한 인권을 지키는’ 인권 변호사로 탄생하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그 계단은 승승장구의 지위에서 서민으로 내려오는 하강의 계단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눈여겨 볼 것은 영화의 얼개입니다. <변호인>은 두 개의 얼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부림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에피소드이고 다른 하나는 자살로 비극적 생을 마감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변호’입니다.
보수 언론이 노무현 대통령이 소유하고 있던 ‘태평양을 건널 수 있는 호화 노트’에 대한 일화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것도 이런 ‘변호’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부림사건을 변호를 맡은 주체로서의 노무현의 과거 모습과 역사적 심판대에 오른 대상으로서의 현재 노무현의 모습이 같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박종철 열사의 추모 대회에 앞장섰다고 체포당한 송우석 변호사가 ‘원래 추모는 조용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을 강경 진압하는 것은 현 정권이 불안을 느끼기 때문인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대사는 바로 노무현 대통령 추모식과 그것을 방해한 보수 정권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사자가 자신의 추모식에 대해 언급하는 모습인 셈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묘합니다. 카메라는 방청석에서 피고 송우석의 뒷 모습을 보여주는데 죄수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수의를 입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디졸브를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죽은 자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나는 거죠. 그리고 판사가 호명을 하자 피고 송우석을 변호하기 위해 온 99인의 변호인이 하나 씩 일어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이 장면은 스탠리 큐브릭의 <스파르타쿠스>와 유사한 것이기에 저는 심드렁했습니다. 그런데 카메라가 송우석의 모습을 정면에서 다시 잡고 뒤에 변호사들이 하나 씩 일어나는 장면을 하나의 쇼트로 잡을 때, 가슴을 쿡하고 찌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때 스크린은 (영화 밖) 영화관과 (영화 속) 법정 사이에 막처럼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스크린은 송우석/노무현을 가운데 두고 질문의 거울로 바뀝니다.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영화관에 불이 켜지면, 180도 너머에 있는 당신들(관객)은 영화 속 변호인들처럼 일어날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영화관을 떠난 뒤 노무현을 잊을 것인가? 아니면 영화처럼 변호를 할 것인가?  

지금껏 영화를 보면서 단 한번도 영화의 흥행 성적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는 흥행과 무관한 영화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변호인>만큼은 흥행에 성공했으면 합니다. 영화의 대사처럼 ‘살아있는 계란이 죽은 바위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모두가 안녕하지 못하면 아무도 안녕할 수 없는 시대에 이 영화를 적극 추천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