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오랜 만에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제가 고른 것은 윤종빈 감독의 신작이었습니다.
그 느낌을 글로 옮겨봤습니다. 한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제 블로그에 쓴 글을 옮긴 거라 말투는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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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김혜리는 윤종빈의 영화 세계를 '인정받는 아버지, 인정받는 아들이 되려는 남자들의 무리함이 비극을 부르는 이야기'라고 요약하고 전작인 <범죄와의 전쟁>에 나쁜 아버지가 있다면 <군도>에는 나쁜 아들이 있다고 영화를 비교한다. 김혜리의 견해에 수긍이 간다. 하지만 <군도>는 감독이 처음부터 '전작들과 완전히 다른 15세 관람가 오락영화'를 의도한 것이기에 이 영화에서 '조선 말기 사회 드라마' 보다는 '오락적 재미'로 평가하여야 하며, 그런 면으로 보면 영화가 올 여름 '최적화된 의적 희비극'이라는 말에  나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감독이 방점을 두지 않은 역사적 드라마에서도, 감독이 강조한 재미면에서도 뭔가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윤종빈의 영화가 수컷으로 인정받고 싶은 남자의 이야기라는 영화 내용보다도 내게 더 주목을 끄는 것은 윤종빈이 영화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다. 윤종빈이 마틴 스콜시즈를 영화적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다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스콜시즈 영화에 대한 오마주가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로 이어진다. 이후 윤종빈은 주제성 강한 상업영화를 프로덕션까지 성사시키는 과정의 힘겨움에 지쳐 있었고 나아가 “세상이 이렇습니다”라고 제시하는 영화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한동안 회의에 빠졌다고 한다. 그가 찾아낸 또 다른 아버지는 각종 B급 영화를 맛있게 버무려내는 달인 쿠엔틴 타란티노였다.

<군도>가 스파게티 웨스턴에 기원을 두고 있다거나, 혹은 그 장르를 오마주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와 닮아 있다는 지적들은 이미 있다. 하지만 나는 윤종빈이 스파게티 웨스턴보다는 그것을 오마주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다시 오마주하고 있고, 그것이 영화를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다고 본다. <군도 : 민란의 시대>에도 스파게티 웨스턴의 형식적 특징이 한눈에 들어온다. 익스트림 줌인, 인물을 중앙에 놓고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 급격한 플래시 백, 프리즈 프레임으로 인물을 소개하는 방식, 바로크적 복수극.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모니카, 팬플루트, 죠하프, 일렉트릭 기타를 사용한 스파게티 웨스턴식 음악이 그렇다.

하지만 이것이 스파게티 웨스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소화해내는 것이 아니라 쿠엔틴 타란티노의 것을 빼끼기에 급급하다. 예컨대 테마 곡은 영화 토니노 발레리 감독의 1967년작 <황야의 분노>인데 이 곡 역시 타란티노의 <장고>에 삽입되었다. 마치 김지운의 <놈놈놈>(2008)이 타란티노의 <킬빌 – 1부>(2003)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처럼 윤종빈도 같은 짓을 되풀이 한다. 조윤(강동원)의 행적에 대한 묘사도 <킬빌>에서 오렌 이시이의 그것과 닮아 있다. 도치가 양반들의 상투를 자르는 장면은 <바스터즈>에서의 머리 가죽 벗끼기를 모방하고 있고 조윤이 그토록 죽이려고 했던 이복 동생을 지키려 하는 황당한 설정도 사실은 <킬빌2>에서 브라이드(우마 서먼)이 아이를 지키려 했던 것을 변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스파게티 웨스턴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 같았으면 이런 장면은 있을 수 없다. 그의 걸작 <옛날 옛적 서부에서>(68)를 보면, 학살의 와중에 살아남아 울고 있는 아이를 보고 악당은 침을 뱉을 뿐이다.

타란티노의 영화 방식을 흉내를 내는 것과 그것과 같은 수준의 영화를 만드는 것은 다르다. 골치 아픈 사회 고발성 영화가 아니라 오락 영화이기에 따라하기 쉬울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타란티노의 강점은 여러 영화의 장면을 훔쳐와서 그것을 자기 영화로 개성있게 만들어 내는데 있다. 방점은 훔치는데 있는게 아니라 자기화 시키는데 있는 것이다. 윤종빈은 찍어야 할 방점이 어디 있는지 아직 모른다. 그가 설정한 철종 13년(1862)년이라는 역사적 시점이 ‘임술민란’이 일어난 해라서 중요한게 아니라 마지막에 도치에게 기관총을 쥐어 줄 만큼 서구 문물이 들어 와 있는 시점이라는 영화적 개연성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스파게티 웨스턴 <장고>(66)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오마주라는 점에서 중요했던 것이다. 타란티노가 <장고 : 분노의 추격자>에서 남겨 두었던 오마주를 그는 마저 채우고 싶었던 것일까?(김지운은 <놈놈놈>의 마지막 삼각 결투 장면을 <석양의 무법자>에서 가져와 <황야의 무법자>의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데 졸렬함에 있어서 겨룰 자가 없다).
   
사회적, 역사적 부채 의식에서 벗어나 맘놓고 오락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타란티노 식으로 <바스타즈>나 <장고 – 분노한 추격자>를 만들면 된다. 하지만 윤종빈은 그게 찝찝했나 보다.
조윤이 소작농을 시켜 황무지를 개간하는 것을 보고 땡추가 ‘때론 그대로 놔두는 것이 좋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명박 정부의 토목 사업에 대한 비판이다. 게다가 <군도>는 5부로 장을 나누고 4부를 전지적 시점의 보이스 오버 나레이션을 사용하면서 역사적 평가를 감행 한다. 조윤과 나주 목사의 담합을 보이스 오버로 ‘역사학자들은 최초의 민관합작’ 운운하는 장면이 그렇다(사실 역사적으로도 이게 맞지 않다. 고려 말에도 권문세족의 농장 형성 과정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있기에 ‘최초’라고 역사학자들이 말할거리가 안된다).

영화 속에서 누군가 ‘뭉치면 도적, 흩어지면 백성”라고 말한 것을 슬쩍 뒤집어서 5부의 제목을 “뭉치면 백성, 흩어지면 도적”이라고 붙이고 있는데, 이건 지배층 중심의 사고에서 탈피해서 민중 중심의 혁명의 당위성을 내세운 것이다. 주인공의 이름이 무지랭이 돌머리인 ‘돌무치’에서 사고의 전환을 의미하는 ‘도치(倒置)’로 바뀌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군도>의 소제목인 ‘민란의 시대’는 농민이 궐기하는 것을 ‘난동’으로 보는 지배층의 프레임이다. 이게 거슬렸는지 조윤의 집으로 침입한 도치가 조윤과 싸울 때 뜬금없이 벌집을 건드리는 장면이 나온다. 농민이 항쟁을 할 때 벌떼처럼 일어났다고 해서 ‘봉기(蜂起)’라고 말하는게 상례인데 윤종빈은 그래서 굳이 그 장면을 넣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것을 보면 오락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도 윤종빈은 사회적 역사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춤거린다. 그러면서 그런 프레임에 깊숙하게 개입을 하기는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그가 더 깊은 사회적 역사적 성찰을 하고 적극적 개입을 했다면, 서자로서의 조윤의 문제를 오늘날 젊은 우익 세대에 대한 풍자로 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전작에서 보여줬던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아들의 모습을 답습하는데 머문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조윤의 모습이 스콜시즈를 버리고 타란티노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구하려 한 윤종빈의 모습처럼 보인다. 아버지를 잘못 찾은 서자로서의 헐리우드 키드. 내가 이 영화에서 본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 올 초에 스파게티 웨스턴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을 다룬 크리스토퍼 스테일링의 ‘Sergio Leone : Something To Do With Death’를 구입해서 읽었다. 거기에 레오네 감독에 대한 재미난 일화가 있어 소개한다. <석양의 무법자>를 준비할 당시 레오네는 남북 전쟁 중 텍사스 금광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레오네는 워싱턴 국회도서관 사서에게 그 자료를 요구했고 사서는 ‘남북전쟁이 텍사스까지 번지지 않았고 금광을 둘러싼 전투라는 것도 금시초문’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며칠 뒤에 사서는 레오네에게 사과하면서 말했다. ‘실제 그런 일이 있었네요. 당신은 이탈리아인이면서 미국인도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죠?’

역사적 문제 의식을 포기하고 재미난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바보 같은 생각이다. 주제와 재미를 모두 껴안을 수 있는 모범적인 영화는 얼마든지 있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도 그런 영화 중 한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