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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과 최경환 노선 간에 또 하나의 차별성은 ‘내수 부양’ 정책이다. 최 부총리가 국내외 일부 중도좌파 세력의 ‘소득 주도 성장론(시민들의 소득 및 소비를 늘려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자는 주장)’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온다. 터무니없다. 소득 주도 성장론자들은 주로 노동자, 시민의 실질소득을 높이자고 주장한다. 이런 발상과 최 부총리의 의견 사이에는 넓고 깊은 강이 흐른다.

최 부총리의 ‘부동산대출 규제(LTV:주택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완화’는 시민들이 주택자금을 더 쉽게 더 많이 빌려 부동산에 투자토록 해서 내수를 부양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잘되면 주택 가격이 오르면서 부동산 경기가 어느 정도 살아날 것이고, 이에 따라 시민들은 부유해진 기분이 들어 소비를 늘릴지도 모른다. 이른바 자산 효과(wealth effect)다. 그러나 노령화에 따라 주택 수요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대출을 늘려 억지로 부동산 경기를 살리는 방식이 지속 가능할까? 대한민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1000조원) 규모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 부총리가 내수 부양 정책의 일환으로 제기한 ‘가계소득과 기업소득 간 선순환’론은 꽤 전향적이다. 그는 7월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기업의 성과가 가계소득으로 흘러가지 못하면서, 소비가 부진하고 다시 기업에게 투자기회 축소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박근혜 정권의 기본 경제 노선에 충실하려면 차라리 ‘규제 혁파로 공급자(기업)에게 유리한 사회·경제적 환경을 조성하기만 하면 선순환이 이루어져 가계소득까지 개선될 것’이라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효성은 별개의 문제다. 최 부총리는 비정규직의 임금을 높이고 각종 차별대우도 개선하겠다지만 구체적 방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최 부총리가 선보인 정책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단연 ‘사내 유보금 과세’였다. 대기업들이 회사 내부에 쌓아둔 사내 유보금을 “투자·임금·배당 등으로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 과세하겠다는 발상이다. 10대 그룹 상장사의 사내 유보금만 대한민국 1년 GDP의 절반 정도인 500조원을 웃돈다. 기업의 이런 저축(사내 유보금)에 벌금 성격의 세금을 매기면, 기업들이 저축하기보다는 ‘소비(투자·배당금·임금 등으로)’하게 되어 전체 경제에 도움을 주게 될지 모른다.

최 부총리는 7월24일 ‘새 경제정책 방향’에서 ‘사내 유보금 과세’를 ‘기업소득 환류 세금’이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바꾸고 비교적 구체적인 방안도 발표했다. 기업이 한 해 거두는 수익 중 ‘투자·임금증가·배당 등에 활용되어야 하는 비율’을 정하고, 이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과세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 비율이 60%인데, 특정 기업의 연 수익이 100억원이라면 60억원을 투자·임금·배당 등에 사용해야 한다. 만약 이 기업이 30억원만 활용했다면 나머지 30억원에 과세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처방들로 사내 유보금을 끌어낸다 해도 내수가 얼마나 부양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대기업 사내 유보금이 회사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 해도, 그 돈이 가난한 계층으로 향하지 않으면 내수가 부양될 수 없다. 한 달 100만원 받는 비정규 서비스 노동자의 임금이 50만원 인상되면 그중 상당 부분이 소비될 것이다. 그러나 월수입 10억원인 금융 자산가가 50만원 정도의 배당금을 추가로 받는다고 해서 특별히 소비를 더 늘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이 토해낸 사내 유보금은 노동자(임금)보다 주주(배당금)에게로 흘러갈 가능성이 훨씬 높다. 더욱이 대규모 사내 유보금을 축적한 기업의 주주와 노동자들은 이미 중산층 이상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