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영화를 제법 보고 영화 글을 꽤나 읽은 사람이면 영화평론가 J선생에 대해 아실 겁니다.
저 역시 이 분을 한때 추종까지 했지만 지금은 그저 하나의 견해로만 받아들입니다.
가끔 영화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 J선생의 글이나 강연을 들으면서 시네필의 기본에 대해 생각하며 제 맘을 추스리고 하지요.

개인적으로 J선생을 몇번 만났습니다. 오랜 시간을 걸쳐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고 스쳐가듯이 만났는데 제 느낌은 인품과 허세가 반반씩 보였습니다.
한번은 제가 쓴 글에 대해 코멘트를 해주셨는데 '송구스럽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찬을 해주셨습니다. 내심 담담한 척하면서도 그 날 밤을 제대로 못 이루었습니다. 시네필이라는게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는 좋아서 하는 것이지만 곁에서 보면 혼자 영화관 들락거리면서 이상한 영화를 진지하게 대하는 오타쿠 같은 인간들.
사람들이 다들 손가락질 할 때 한때 가장 존경했던 오타쿠 형님한테 위로의 말을 들은 기분이었거던요.

각설하고 요즘 시네필들은 J선생의 글을 많이 보지 않고 강연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팬시점 문구 같이 반짝 반짝한 단어로 영화에 대한 감상을 포장할 줄 아는 대중적 평론가도 많고, 인문학과 예술, 각종 외국어에 능통한 아카데믹한 평론가도 차고 넘치니까요.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영화 평론가들을 가끔 만나면 J선생을 흘러간 옛노래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그런 부류 중에 하나고요.

한번은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J선생이 사석에서 류승완의 영화는 '숏이 붙지 않는다'라고 지적한 것에 대해 영화평론가 한 분이 '말도 안되는 소리'하고 냉소를 보이더군요. '그러면 나는 눈이 없는 줄 아나'하면서 씩씩거리더군요. 다른 자리에서 꽤나 유명한 중견 평론가와 술자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분도 흥분해하면서 '개소리'라고 말하더군요. '안 붙는 숏이 어딨냐? 그런 식이라면 장 뤽 고다르의 영화를 봐라! 숏이 하나도 안 붙는데 그건 왜 지적을 못하는가?'라며 지나치게 거품을 무는 바람에 제가 다 민망하더군요.

그런데 제 생각은 어떤 줄 아십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J선생의 말에 동의한다는 겁니다. <베를린>을 모니터로 보다가 도저리 못 봐줄 것 같아서 그냥 꺼버렸습니다. 불필요한 숏도 많고 그러다보니 리듬감이 엉망이더군요. 이 영화는 고다르의 영화와 비교할게 아닙니다. 고다르는 의도적으로 영화 보기를 방해하는 편집을 합니다. 그것은 그의 서명과 같은 것이거던요. <베를린>과 비교해야 할 것은 폴 그린그래스의 두 편의 '본 시리즈'입니다. 숏을 잘게 나누면서도 액션과 음악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맞물려 가는지를 알 수 있죠.

숏이 붙는다/안 붙는다는 책으로 배우는게 아닙니다. 그건 어떤 영화 책에도 나와있지 않습니다(제가 한국어, 일어, 영어로 된 편집 관련 책만 30여종이 있는데 눈을 씻고 봐도 없어요). 영화는 눈으로 배워야 하고 그것도 기본부터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숏이 원래 붙지 않는 영화를 가지고 영화를 배우는 사람이나 숏을 붙이지 못하는 감독의 영화로 배우면 말짱도루묵입니다. 주변에 영화 편집일을 하는 후배들이 있는데 그 애들도 그냥 막 붙이더군요.

덴마크의 위대한 감독 칼 테어도어 드레이어의 <오데트>(1955)의 장례식 장면이 있습니다. 죽었던 아내가 살아나고 그 숏에 대한 반응 숏들이 이어집니다. 이때  감독이 일부러 숏 하나를 비워버립니다. 일종의 사라진 숏의 문제가 발생하는 거지요. 이것은 숏을 보는 눈이 없는 사람은 쉽게 깨닫지 못합니다. 그 사라진 숏이 <오데트>의 주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볼 때 '이야기'에만 집중하지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영화의 기본 단위인 숏에는 무관심합니다.

영화평론가 J선생의 이야기를 하다가 숏의 문제를 꺼낸 것은 영화의 기본으로 되돌아가자는 것 때문입니다. 병상에 누워 있다가 최근에 상찬을 받고 있는 영화(<도희야>, <군도>)를 보고 실망을 했습니다. 세상엔 훌륭한 영화들이 많습니다. 그 많은 영화들을 놔두고 별스럽지 않은 영화까지 봐야할 영화로 칭찬을 하면. 저 많은 영화들은 언제 다 볼련지요.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