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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림을 이루고 상당(?) 기간을 백면서생(白面書生), 포의한사(布衣寒士)로 지내와 신고할 소득세도 없었고, 때로는 세금을 환급받기도 한 삶을 살았던지라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러서 겨우 2, 3년 전부터 명목상으로는 소속이 생기고 적으나마 정기 소득도 있어서 소득세를 신고하고 세금을 추가로 납부하는, 이런 일이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명실상부하게 소득이 있어서 추가로 세금을 신고하고 납부를 하고도 먹고살 만하다면야 세금을 내는 일은 당연한 일일 터이다. 곡물이든 돈이든, 인민은 요순시절부터 조세를 바쳤고 나라는 인민이 바친 돈으로 운영되었으니 사람이 땅에서 무리 지어 살면서는 세금이 없이는 나라가 하루도 지탱할 수 없다. 그러므로 생산 활동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얻은 소득에서 일정 부분을 떼어서 세금을 내야 한다. 

  그리고 나라에서는 국민이 납부한 세금으로 나라 살림을 운영한다. 이런 구조는 우리가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서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세금 납부를 국민의 의무 가운데 하나로 정해두고 있다. 그런데 왜 세금을 납부할 때면 마음이 편치 않을까? 내가 낼 돈을 당연히 내는 것이니까 마음에 아무런 의혹도 없어야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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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일이든 그 일이 의무라면 내가 그 일을 함으로써 얻는 결과가 유리하건 불리하건 상관없이 실천해야만 한다. 또한, 나에게 의무로 주어진 일이라면 실천했다고 해서 자랑할 거리도 아니다. 내가 그 일을 하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의무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 일을 하는 것이 설령 나에게 불편하거나 불리하더라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는 현실에서 이런 불편하고 불리한 의무를 누구나 당연히 져야만 하는가? 의무라면서 왜 그 일을 수행하는 것을 불편해하고 부담스럽게 여기는가? 국민의 의무를 국민이 부담으로 여기고 불편해하는 까닭은 의무가 보편적으로 예외 없이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다시 말해, 의무의 적용이 불공평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남자는 병역의 의무를 지기로 되어 있으면 병역 의무에서 빠져나가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가가 병역의 의무를 대체하는 조항을 마련해두었으면 누가 보더라도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도록 엄격하게 적용하여서 병역의 의무를 지는 것이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게 해서는 안 된다. 납세를 의무로 정해 두었으면 누구나 소득을 성실하게 신고하고 거기에 맞게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의무를 벗어나는 일이 도리어 특권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리하여 남자로서 성인이 되어 소집 영장이 나오면 군대에 가고, 생산 활동을 한 뒤 나라에서 징수하는 대로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일이 오히려 무능하고 어리석은 일로 비치기까지 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30여 나라 가운데 고용안정, 남녀 간 임금격차, 국민의 빈부격차, 소득불균등, 노동시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등 경제정의와 관련한 지표가 아주 낮은 나라에 속한다. 사실 우리네 보통사람은 의료, 교육, 주거, 직업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생존요건만 충족되면 삶을 즐기며 살 수 있다. 그런데 사회가 보장해주어야 할 이런 생존요건을 철저히 개인의 능력에만 맡겨놓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생명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생존의 권리가 무한 경쟁의 체제에 갇혀 버렸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서는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으며, 삶을 누릴 수 없다. 삶이란 누리는 것이 아니라 쓰러지기 직전까지 안간힘을 써서 버텨나가는 연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런 삶에서 어찌 시민사회의 의식을 가질 수 있으며, 공동체 의식을 찾을 수 있겠는가! 

  고등교육을 받지 않아도 사회생활을 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으며, 고등교육을 받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관심과 적성을 살펴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할 수 있고, 오로지 학비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있을 수 없는 사회, 돈이 있건 없건 최소한의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고 건강한 삶에 대한 배려를 받을 수 있는 사회, 하루 일과를 마치면 식구가 모여서 저녁을 먹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을 가질 수 있는 사회, 일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일자리를 가질 수 있고, 남자와 여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업의 종류와 학력에 따라, 그리고 임원과 생산직 근로자 사이에 임금격차가 극심하지 않으며,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재취업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편의와 배려를 받을 수 있는 사회, 이런 사회라면 살 만한 사회가 아닌가! 

  물론 이런 사회를 이루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그리고 그 비용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충당된다. 사회보장이 잘 되어 있는 북유럽 복지국가에서는 소득의 거의 절반 가까이, 심지어는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낸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서 국민이 자기 소득의 반을 세금으로 내면서도 그다지 불만이 없는 까닭은 무엇인가? 소득의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납세를 의무로 여겨 기꺼이 의무를 이행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누구나 소득이 생기면 객관적 기준에 의해 공평하게 세금을 내고, 자기가 낸 세금이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환원되고 궁극적으로는 자기가 구체적 혜택을 받으며, 세금을 매기고 거두는 공무원과 세금을 사용하는 정부는 투명하게 세금을 운용하고, 시민사회는 사회활동에 적극적,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권력을 감시하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여 번 돈을 세금으로 냈기 때문에 세금은 내가 낸 돈이며, 따라서 나는 내가 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나는 당연히 능력껏 세금을 내고 또한 나는 세금을 냄으로써 나와 이웃과 우리 사회가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처럼 세금을 공평하고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납부하고 사용한다면 세금을 내면서도 뭔가 빼앗기는 듯하고, 억울하고, 부당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면서 억울하고, 부당하고, 빼앗긴다는 느낌을 진하게 받았다. 내 한 달치 급여보다 더 많은 세금을 추가로 납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낸 세금으로 내가 어떤 혜택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없으며, 또한 내가 낸 세금을 운용하는 공무원과 관료와 정치인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글쓴이 : 김태완

(사)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 소장

주요저서

-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소나무, 2004

- 『중국철학우화393』 소나무, 2007

- 『율곡문답, 조선 최고 지식인의 17가지 질문』, 역사비평사, 2008

- 『경연, 왕의 공부』, 역사비평사, 2011

- 『맹자, 살기 좋은 세상을 향한 꿈』, 아이세움,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