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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상청(黃尙淸)은 저명한 역학자(易學者) 조양래(趙陽來,1752~ 1801)에게 점치는 법을 배워 용한 점쟁이로 소문이 났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황상청을 찾아와 하소연하였다.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황상청이 점을 쳐 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너는 네 아비의 머리를 자르고서 감히 내게 와서 묻는 것이냐? 속히 물러가라!”

  마침 조양래가 옆에 있다가 황상청을 타일렀다.

  “자네는 아직 한 단계를 도달하지 못했네. 이 사람은 분명 신주(神主)의 머리 부분을 짧게 잘랐을 것이네.”

  그러자 점치러 온 사람이 변명하였다.

  “형편없는 장인이 선친의 신주를 만들었는데 너무 길어서 규격에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잘라서 줄였습니다.”

  이극성(李克誠)의 『형설기문(螢雪記問)』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신주는 죽은 이의 이름을 적은 나무토막이다. 번듯한 집에서는 집 한편에 가묘(家廟)를 마련하고 그곳에 신주를 모셨으며,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 집에서는 작은 항아리에 신주를 보관하여 소중히 간직하였다. 이것이 바로 신줏단지이다.

  ‘신줏단지 모시듯 한다’는 말이 있다. 어떤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비유한 말이다. 신줏단지를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신주가 죽은 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황상청이 어이없는 오해를 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신주의 머리 부분을 자르는 행위와 망자(亡者)의 머리를 자르는 행위는 점괘 상으로는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한 행위였던 것이다. 황상청의 일화는 신주와 망자를 동일시하는 당시의 관념을 반영한다.

  

  관찰사가 신주를 훼손한 자에게 장 90대라는 처벌을 내린 근거는 『대명률(大明律)』이다. 『대명률』「호율(戶律)」 전택조(田宅條)에 ‘남의 신주를 훼손한 자는 장 90대[毁人神主者杖九十]’라는 조문이 있다. 따라서 관찰사의 판결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배용길은 이 글에서 법과 사회통념 간의 괴리를 지적하였다.

  당시 사람들에게 죽은 부모의 신주는 살아 있는 부모나 마찬가지였다. 명절마다 음식을 올리고 아침마다 문안 인사를 드리며, 집안에 중요한 일이 생기면 고하였다. 전쟁이라도 일어나 집을 떠나게 되면 제일 먼저 챙기는 것도 신주이다. 부모를 버리고 도망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종묘의 신주부터 챙기는 나라에서 신주를 훼손한 죄에 대해 장 90대라는 처벌은 너무 가볍다는 것이 배용길의 견해이다. 

  신주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이 법률로 정해져 있었다는 것은 신주를 훼손하는 행위가 만연하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배용길이 거론한 사례처럼 상대방이 모시는 신주를 훼손함으로써 원한을 갚는 일도 드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신주를 훼손하는 행위 역시 신주를 떠받드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신주를 망자와 동일시하는 관념에 입각한 행위이다. 신주가 한낱 나무토막에 불과하다면 신주를 훼손한들 무슨 보복이 되겠는가.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복수를 위해 신주를 훼손하는 행위는 당시의 사회 통념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신주의 종교적 의미를 근본적으로 부정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790년, 전라도 진산(珍山)의 선비 윤지충(尹持忠)과 그의 외사촌 권상연(權尙然)이 집안에 모시고 있던 부모의 신주를 불태웠다.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천주교의 교리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의 윤리 의식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다. 죽은 부모의 신주를 불태우는 행위는 살아 있는 부모를 불태워 죽이는 행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천주교에 대해 비교적 온건한 입장이었던 정조(正祖)로서도 묵과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결국, 정조는 두 사람을 사형에 처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박해 사건으로 알려진 진산 사건(珍山事件)이다. 

  죽음을 불사하고 종교적 신념을 지킨 두 사람의 용기와 신앙은 가상하지만 천주교의 교리를 따른 두 사람이 반드시 옳고, 전통 윤리를 따른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르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진산 사건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상이한 문명의 충돌이 빚어낸 비극이다. 십자가를 받드는 이에게는 신주가 나무토막이고, 신주를 모시는 이에게는 십자가가 나무토막이다. 십자가를 받드는 문명과 신주를 모시는 문명이 만나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그 충돌의 희생자였던 셈이다.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은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냉전 이후 문화와 종교의 차이로 인한 문명 간의 충돌이 격화되고 있으며, 이것이 향후 세계 평화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는 문명의 조화에 바탕을 둔 국제 질서만이 충돌을 막는 방법이라고 주장하였는데, 한편으로는 은연중 서구 문명을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사실상 문명 간의 충돌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겉으로는 전통적 가치와 서구적 가치의 조화를 말하지만, 서구 중심주의를 철저히 내재화하고 있는 우리로서도 주의할 부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앞두고 나라가 떠들썩하다. 진산 사건으로 순교한 윤지충을 성인의 아래 단계인 복자(福者)의 반열에 올리는 시복식도 집전한다고 한다. 그것도 조선 왕조를 상징하는 광화문 앞에서 말이다. 파격적인 행보로 세계인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교황의 방문은 환영할 일이며,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를 기리는 것도 의미가 크다.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굴종(屈從)이 아닌, 서로 다른 문명 간의 화해와 포용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쓴이 : 장유승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주요저역서

- 『일일공부』, 민음사, 2014

- 『동아시아의 문헌교류 - 16~18세기 한중일 서적의 전파와 수용』, 소명출판, 2014(공저)

-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 글항아리, 2013(단독)

- 『정조어찰첩』, 성균관대 출판부, 2009(공역)

- 『소문사설 -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 휴머니스트, 2011(공역)

- 『승정원일기』(공역), 『월정집』(공역) 등 번역